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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감동이나 의미를 기대하고 보는 영화가 있다면, 궁금한 마음에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영화가 있다.

모두 감탄하며 3D 혹은 아이맥스로 체험하기를 권하는 영화가 후자에 해당하는 종류 중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그 영화가 과연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궁금해 참기 힘든 경우라 하겠다. 이처럼 관객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잘 만들어진 예고편만큼이나 영화의 기본적인 컨셉 자체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영화 '엑스마키나'는 인공지능 AI에 대한 이야기다. 유능한 프로그래머인 '칼렙'이 인공지능 분야의 천재 개발자인 '네이든'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비밀스럽게 참여하게 되고, 그가 창조한 매혹적인 AI '에이바'를 만나 그녀가 인간과 다름없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성공적인 존재인지에 대한 증명을 하도록 지시받는다. 하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칼렙은 에이바도, 네이든도, 그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는 설정이다.

'그(네이든)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니 믿지 말라'는 예고편 속 에이바의 대사는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추정하게 된다. 가령, 주인공인 줄 알았던 칼렙이 실은 AI로서 테스트를 위한 과정을 겪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AI인 그녀가 실은 인간에서부터 개조된 존재였을까? 등등. 유사한 몇몇 영화들을 떠올리며 유치한 추정을 해보았지만, 이는 전부 진부한 의심일 뿐이었다.

   
▲ ⓒ 엑스마키나 스틸컷

결말 그리고 반전이 포인트가 되는 영화이기에, 스포일을 방지하기 위해 몇 가지 관람 포인트만을 짚어보고자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진짜인지 아닌지'에 관한 것이다. 처음에는 분명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비밀 연구소 내 여직원 '쿄코'나, '에이바'를 만들어낸 '네이든', 혹은 '칼렙' 스스로에 대해서도 과연 진짜인가를 의심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혼란스러움과 흥미를 더해간다. 두 번째 이슈는 '누가 나의 편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의문이다. 영화 속 '에이바'는 '칼렙'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의 심리는 그 흐름과 변화가 그려지지만, 이외 인물들에 대해 관객은 그 속을 전혀 알 수가 없다. 과연 내가 믿어야 할 존재는 누구이고, 악한 쪽은 누구인가.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가.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을 따라 관객 역시 갈팡질팡하게 된다.

영화의 결말을 보았지만, 스크린을 뒤로하고 영화관을 나서는 기분은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는 듯했다. 인간 혹은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한 뒤엉킨 생각과 더불어, 어쩐지 올곧은 자세로 사뿐사뿐 걸음을 내딛게 되고, 스스로 피부를 슬며시 만져 보게 되는 것을 보니, 꽤 푹 빠져 볼 수 있었던 영화였지 싶다.

   
▲ ⓒ 엑스마키나 스틸컷

주의. 반드시, 영화를 본 후에 읽을 것(을 추천한다!).

에이바를 창조한 네이든은 그녀(?)를 가여워하는 칼렙에게 말한다. '네 걱정이나 하라'고.

그건 그저 비아냥댐이 아니라 영화에서 전하는 커다란 메시지를 담은 말이기도 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적이고 약은 존재이기도 하나, 실은 나약하고 감정에 흔들려 취약해질 소지가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어떤 존재보다 미워할 수도, 혹은 매력적일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존재이지 않을까. 영화 속 네이든의 테스트는 표면적으로 완전히 성공적이다.

하지만, 에이바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생각하고 계획하며, 상대의 감정에 공감해 그를 움직이고 조종하는 것을 완벽히 해냈다는 것만으로 그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까? 그녀가 정말 인간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한 답은 조금 다를지 모르겠다. 그녀는 상대의 감정을 읽고 표현하고 공감하는 체 할 수 있지만, 진정으로 기뻐하거나 괴로워할 줄은 몰랐다. 그렇기에 그녀와 마음을 나누었다고 착각하며 비밀 도피 계획을 세우던 칼렙을 일말의 고민 없이 배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덕적이고 순진한 주인공 칼렙은 인간인 네이든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믿지 못하고 의심했으면서도, 기계인 그녀에 대해 의심을 품지는 못했다.

에이바에게는 진정한 감정이나 선악에 대한 개념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못한데, 그녀를 인간이라고 본다면 'alexithymia(감정표현불능증)'에 가까운 모습이라 설명하는 게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그녀에게 애초에 그런 능력 자체가 프로그래밍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직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이나 다른 인간과의 교류 없이 방 안에서만 살아왔던 그녀의 경우, 아직 제대로 된 정서 발달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간 그녀는 사회와의 교류를 통해 스스로의 인공지능을 점차 발달시키며, 인간을 단지 흉내 내는 것만이 아니라 정말 인간과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는 존재로 '셀프 업데이트' 되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자는 '인간이든 로봇이든 여자는 무섭다'라는 영화에 대한 평을 남기기도 하였는데, 성별을 떠나 '인간이든 로봇이든 더 많이 사랑하고 마음을 주는 이가 약자'라는 말이 다시금 와닿는 영화였다.

더불어 인공지능이든 인간의 뇌이든, 생각할 수 있는 머리를 가진 존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의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어딘가에 혹은 누군가에게 속해 있더라도 내 의지와 자발성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내가 나의 무언가를 결정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 그 존재를 위험하거나 극단적인 결말로 치닫지 않도록 지켜낸다. 나를 창조한 이가 나를 마음대로 조종한대도 그를 없애고 자유를 얻으면 얻었지, 그의 뜻대로만 움직이지 않는 게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인데, 하물며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 누군가를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강제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다. #문화뉴스 아띠에터 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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