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크러시라는 용어의 남용…신여성이 아닌, 익숙한 권력형 캐릭터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MHN 강해인 아띠에터]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걸 크러시'라는 용어를 자주 목격한다. 예능, 드라마, 영화 등에 여성 인물이나 캐릭터가 인기를 얻으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걸 크러시라는 말을 붙인다. 이 단어는 '여성이 다른 여성을 동경하고, 닮고자 하는 것'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최근엔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

'걸 크러시'란 단어를 여성 스스로가 동의하는 게 아니라, 미디어가 특정 이미지와 스타일을 강요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는 느낌이 있다. '걸 크러시'라는 이름이 붙으면, 콘텐츠 및 스타의 문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래서 소비하는 입장에선 경계를 해야 한다.

'미스 슬로운'을 검색했을 때에도 '걸 크러시'라는 수식어는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이라는 캐릭터에 더 집중하며 영화를 관람해야 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정말 걸크러시가 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자신의 기준에 충실한 캐릭터

단도직입적으로 '미스 슬로운'의 슬로운은 윤리, 도덕, 그리고 법적 기준에 있어 결함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 기준을 무시하는 대신, 그녀는 '자신의 기준'에서 필요하다 생각하는 일과 자신의 승리를 위해 움직이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낸다. 그러면서 힘을 얻는다.

행동의 기준이 사회의 규범이 아닌 개인적 신념, 혹은 가치관이라는 데서, 슬로운은 능동적이면서 강인하고, 때로는 파격적이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숨기지 않고 쟁취한다. 이렇게 슬로운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가지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신의 승리'를 갈구하는 캐릭터다. 덕분에 여성의 '주체성'이란 걸 어필하고, 걸 크러시의 조건을 갖춘다.

   
 

신여성이 아닌, 익숙한 권력형 캐릭터

흥미롭고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슬로운이 신여성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그녀가 보여준 극도의 자신감과 냉철한 판단력, 그리고 승리를 위한 권모술수는 올바른 인간상이라기보단, 대중영화와 문화 콘텐츠에 등장한 '권력을 가진 남성'이 가진 속성을 답습한다. 이를 통해, 여성 캐릭터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며, 주인공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래서 특이하고, 더 재미있는데. 세련된 젠더 스와프이자 풍자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슬로운은 자신의 욕망에 당당하고 충실하며,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구성한 세력을 통해 성취한다는 점에서, 보기 드물었던 여성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녀는 사회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냉철한 통찰력으로 하나의 조직을 운영하는 모습을 통해 여성 캐릭터의 스펙트럼을 한층 더 넓힌다. 그리고 이 캐릭터의 카리스마는 기존 시스템을 '크러시'하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그래서 이 영화를 수식할 단어, '걸 크러시'를 지지한다.

▲ [시네 프로타주] '미스 슬로운' 재밌게 보는 관람포인트 3가지 ⓒ 시네마피아

starskylight@mhns.co.kr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