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우스 ⓒ 예술의전당

[문화뉴스 MHN 김민경 기자] 낙서라는 것은 아름답다. 이번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위대한 낙서 展'을 보면서 느낀 점이다.

   
▲ 크래쉬 ⓒ 김민경 기자

우선 '낙서'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글자, 그림 따위를 장난으로 아무 데나 함부로 씀. 또는 그 글자나 그림. '장난 글씨'로 순화" 라고 써있다. 길거리에서 함부로 쓴 글씨들을 우리는 이제 박물관에서 만원을 주고 봐야 하는 예술작품으로 둔갑했다. 사실 '예술'이라는 것은 프랑스 동굴 원시인들의 낙서에서 시작했다. 큰 소를 소름끼치게 생동감있게 그린 것을 보고 우리는 인류 최초의 그림, 예술 작품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이러한 점을 보면, 굳이 현재 길거리에 있는 낙서들이 예술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도 우습다. 충분히 인간의 감정과 생동감을 표현하고 있다면, 어떤 우리 사회와 인류에 중요한 의미를 찾고 있고, 그러한 점을 이러한 위대한 낙서에서 발견했다면, 우리는 충분히 예술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 라틀라스 ⓒ 예술의 전당

'제우스, 제이알, 닉 워커, 크래쉬, 라틀라스, 존원, 셰퍼드 페어리' 7명의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들은 매우 재치있고, 의미있고, 전복스러운 작품을 보여준다. 제우스의 흘러내리는 로고들은, 정형화되고 위치를 가진 것이 조롱의 상대가 될 수 있고, 또 쉽게 지워지지 않는 우리의 사고와 사회를 비웃는 것 같다. '셰퍼드 페어리'의 정치와 전쟁에 대한 풍자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남긴다. 간단히 지나치는 사회적 사실들이 장난이라고 여겨지는 낙서로 다가왔을 때, 우리는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라틀라스'의 한자와 아랍어의 서체를 공부하고 이에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보면, 그림과 글씨의 하나됨을 다시 느낀다. 동양적인 문인화를 보는 듯하고 신비로운 마법 주문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듯한 미묘한 그의 그림을 보면서 정신과 회화의 합일점에 대해서 새겨 보았다. '존원'의 흩뿌리는 듯한 회화에서 잭슨폴록이 그래피티로 탄생했을 때, 이런 모습일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의도된 것 같은 그의 벽화는 회화에는 어떤 경계도 없음을 알게 된다.

   
▲ 셰퍼드 페어리 ⓒ 예술의 전당

밖에 있던 요소들이 어떤 정의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참으로 흥미롭다. 의미 없던 것들이 쌓여서 의미있는 것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그런 역사적 사실 속에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대견하기도 하다. 무심코 지나치고 있는 것 중 어쩌면 우리가 역사 속에 있다고 여겨지는 무언가가 될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어떤 것도 하찮게 생각하지 않고 매 순간 진지하게 대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랴.

   
▲ 닉 워커 ⓒ 김민경 기자

[글] 김민경 기자 avin@mhns.co.kr

[사진] 김민경 기자, 예술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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