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MHN 강해인 아띠에터] '미씽: 사라진 여자'는 지선이라는 아이의 엄마가 사라진 아이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영화의 제목은 사라진 '아이'가 아닌, 사라진 '여자' 한매에게 더 관심이 있죠. 유괴범인 한매에게 더 집중하고자 했던 '미씽'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미씽은 모성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를 본 뒤, 아이를 지키기 위한 지선과 한매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관객이 많았습니다. 두 엄마가 보여준 아이를 향한 사랑과 희생을 '모성'이라 표현하는 분들을 많이 봤던 거 같네요. 하지만 이 영화는 모성을 보여주고자 의도된 영화가 아닙니다.
 
'미씽'의 이언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매가 아이에게 집착하는 건 특별한 모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매 인생에서 지키고 싶은 것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한매의 모성을 찬양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성'이라는 족쇄
'모성'이라는 단어는 어머니의 헌신적이고 희생을 뜻하는 숭고한 단어로 됩니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자연스레 가지는 사랑. 이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사회는 이 모성이라는 단어를 악용해 여성에게 족쇄를 씌우기도 합니다. 이는 '미씽'에서 잘 드러나 있었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규범으로 변질한 모성은 여성에게 다양한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지선과 한매 모두가 겪었죠. 지선은 홀로 아이를 돌보는데, 직장에서는 워킹맘이라 차별받고, 가정에서는 아이에게 신경을 못 쓴다는 이유로 시어머니에게 시달립니다. 여기서 공통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선은 '애 있는 엄마로서 해내야 할 역할'이죠. 한매의 경우엔 상황이 더 나쁩니다. 한매의 시어머니와 남편은 그녀를 아이를 생산하는 도구로 생각하고, 많은 걸 강요하죠. 그 속엔 물리적 폭력도 있었습니다.
 
   
 
 
권리를 상실한 엄마
지선과 한매는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아이를 기르려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엄마는 아이의 양육권을 늘 위협받습니다. '모성'이란 단어가 준 책임 만큼의 권리를 얻지 못하는 거죠. 지선과 한매의 시어머니는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너무나 당당하게 아이를 데려가겠다 합니다. 이를 통해 그녀들이 '가문, 가족'을 위한 아기를 생산하고 길러내는 수단'처럼 여겨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씽'의 두 여자가 보여준 태도는 어머니의 아이를 향한 자발적 사랑, 본능과는 조금 달라 보입니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주입되고 강요된 가치관으로 보이죠. 강요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아이에게 부적합한 엄마가 되는 것이고, 비난을 받습니다. 그리고 사회는 '어머니'의 역할을 신성시하면서 사회적 규범으로 여기고, '모성'이라는 판타지가 되어 보호를 받죠.
 
   
 
'사라진 여자'의 의미
'미씽'은 사라진 아이를 찾는 이야기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면 사라진 두 여성을 볼 수 있는 여성입니다. 지선과 한매는 여성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에 큰 위협을 받는 인물이었죠. 아이를 양육해야한다는 의무감, 도구화된 모성에 의해 수많은 폭력과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부제는 사라진 아이보단 '여자'가 더 적합해 보이죠.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며, 이번 이야기를 끝내겠습니다. 지선은 마지막에 아이를 되찾고, '미씽'은 행복한 결말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정말 이 결말이 해피 엔딩일까요? 지선이 돌아온 세계는 지선을 반겨줄까요? 도구화된 모성 신화는 깨졌을까요? 시어머니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리고 그녀는 아이와 계속 함께할 수 있었을까요. 행복한 결말에 찬물을 끼얹으며, 이번 시네 프로타주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시네 프로타주'가 올려지는 '시네마피아'는 문화뉴스와 함께 하는 영화 MCN 채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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