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예술센터 우연 극장장 인터뷰

 

[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지난 1월 광화문에는 '공공극장'의 역할을 임시로 수행하고 있는 '블랙텐트'가 세워졌다. 연극인들의 주장과 사유를 담아내기에 현재의 공공극장들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거나,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2016년을 아주 뜨겁게 보낸 공공극장이 있다. 바로 남산예술센터다. 동시대성을 담아내는 창작극 위주의 공연을 선보인 남산예술센터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국립극단의 명동예술극장과는 현격히 다른 행보를 보였다. 창작극에 대한 상반되는 온도차뿐만 아니라, 핵심적 사회문제들을 깊이 있고 적나라하게 다뤘느냐에 대해서도 꽤 다른 평가를 받았다.

남산예술센터는 작년 라인업 발표 당시에도 논란이 됐던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로 월간한국연극 '2016 연극 베스트7',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3', 제53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시청각디자인상(박상봉)을 수상했으며, 'commercial, definitely'의 구자혜 연출가는 제53회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을 수상했다.

1962년 록펠러재단과 정부의 지원으로 세워진 한국 최초의 현대식 극장인 '드라마센터'는 남산예술센터의 전신이다. 한국연극의 꽃을 피우던 이곳은 90년대 들어 학교 중심의 운영으로 그 정체성을 잃어 존립 위기에 처했다가, 서울문화재단이 리모델링해 지금의 '남산예술센터'가 됐다. 이곳은 1962년에 건립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연극전용극장이자, 창작 초연 중심의 현대연극 제작에 힘쓰는 공공극장이다. 역사성과 동시대성이 공존하는 이 극장이 지난 한 해는 뜨거운 관심과 뭇매, 그리고 사랑을 동시에 받았다.

남산예술센터의 험난했던 2016년 이야기와 함께 2017년 라인업 구성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지난 달 23일 남산예술센터서 만난 우연극장장은 2016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2017년을 어떻게 바라볼까?

 

▲ 남산예술센터 2017년 시즌 프로그램 일정. ⓒ 남산예술센터

 

라인업 발표가 다소 늦었다.

ㄴ 이미 12월에 라인업은 마무리가 됐다. 그런데 1월에 많은 창작자들이 여행을 가더라. 다 같이 참여할 수 있는 2월에 간담회를 진행했다. 우리의 라인업 발표 및 간담회 자리는 참여 창작자들을 모두 소개하는 게 중요하는 자리다. 그래서 다 참여하는 걸 목적으로 해서 미뤄졌다.

 

라인업의 전체적인 주제가 있다면?

ㄴ 남산은 하나의 주제어를 두고 프로그래밍 하지 않는다. 프로듀서들이 기획하는 프로그램이 있고, 공모작으로 들어오는 프로그램이 있고, 공동제작으로 협업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일단 '동시대성'은 계속 끌고 가는 주제다. '창작 연극'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도 또 다른 목표다.

올해는 작년과 비슷하게 크게 두 가지로 구성했다. 기존 서사 구조에 기반한 연극, 그리고 그런 구조에서 벗어난 연극. 작년에는 기존 서사 구조에서 벗어난 작품들이 '아방가르드 신파극'과 '변칙판타지'였다. 올해는 그런 계열 작품으로 '10년만 부탁합니다', '천사' 등의 작품이 있다. 아직까지 예술가들이 사회에서 적극적인 발언이 필요한 때다. 작년 한 해를 보내보니, 사회적 발화에 준하는 작품들이 여전히 남산(남산예술센터)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더라.

 

프로그램 중 '국부'가 굉장히 흥미로워 보였다.

ㄴ '국부'는 정기 공모에 들어온 작품이다. 이미 '권리장전-검열각하'에서 전인철 연출가가 했던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전기와 각종 자료들에 나와 있는 '찬양의 언어'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전 연출가가 그 작업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더라. '어느 측면에서는 (이 내용들이) 대단히 감동적이다'라는 것이다. 진실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감동과 감화를 받게끔 쓰인 것이다. 그게 지금 우리 사회의 수십 년을 장악한 지배적 인식이 아닐까 한다. 이 인식이 환상인지, 진실인지는 크게 상관없다.

▲ 남산예술센터 기자간담회 당시 전인철 연출이 '국부'를 소개하고 있다.

 

대단히 씁쓸한 것은 남, 북한 모두 근대 이후로 역사의 장기간을 각각의 두 '국부' 지도 아래 있었다는 것이다. 한 지도자가 각 사회를 장기간 집권하다보니, 그들의 존재는 그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한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겠나. 전 연출은 그 영향력에 관해 탐구하기 위해 비판적 언어가 아니라 실제로 자서전과 각종 자료들에 존재하는 언어를 모아서 그대로 올리겠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갸우뚱해하며 '나는 이런 이데올로기 안에서 살아왔구나' 하며 깨달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감읍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비극적 구조다.

전 연출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시각'을 보여주지 않고, '실제'를 보여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었던 것들을 말이다. 그는 '박정희'를 주제로 하는 뮤지컬 올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런 걸 올려야 돼?'라는 생각 자체가 검열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찾아보니 의외로 찬양의 텍스트가 많다고 하더라. 그걸 쭉 찾아서 직조할 예정인 것 같다. 그동안 전인철 연출은 서사구조에 기반한 연극을 해온 사람이어서, 이번 작업이 형식적으로 도전이 되는 작업이다. 주제적으로 보면 우리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물론 작년 한 해, 일정의 신화는 깨졌다. 대통령이나 그 존재감이 갖는 일정한 신화가 공공연하게 깨졌다. 그러나 이후에도 그 잔재를 본다. 나이든 세대가 갖는 굳건한 믿음. 이번 작업을 통해 실질적으로 그게 얼마큼 존재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전 연출은 화제가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하겠다고 한다. 우리를 수십 년간 지배해왔던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가 연극으로 나온다는 것은 당연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세계에서 지도자를 주제로 연극을 만드는 건 정말 흔한 상황이다. 오히려 이게 특별한 일로 취급받는 게 이상한 사회이지 않을까 한다.

 

남산예술센터의 의자가 불편하다는 얘기가 많다. 객석 환경을 바꿀 계획은 없나?

ㄴ 편의시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꼭 극장 주변에 편의시설이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근본적으로는 현재 남산예술센터의 의자는 부분적으로 수정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전체를 뜯어고쳐야 한다. 그래서 공연 시작 전에 하우스매니저가 관객들에게 말한다. '다른 극장에 비해 너무 불편하다'고. 그러나 '이 극장을 유지하는 데 협력해주시길 바란다'고 말이다. 그게 실질적으로 필요하다.
 

 

규모가 크고 시설이 좋은 극장에서도 일한 적이 꽤 있다. 하지만 '이 극장에 이런 의자가 있을 수 있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 극장은 편하려면 기존 구조를 고쳐야 한다. 하지만 극장을 고치기보다는 유지하는 게 이 극장에 맞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오래된 것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100, 200년 된 극장의 사례를 남기려면 극장을 뜯어고치거나, 원형을 그대로 두며 당시의 환경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극장이어야 한다. 이 극장은 후자가 더 어울린다. 한편, 편의시설은 임대관계만 잘 조정되면 관객들에게 좋은 방식으로 변경 제공이 가능할 것 같다.

 

남산예술센터에 오랫동안 공석이었던 극장장직을 맡게 됐다. 꽤 오랜 기간 비어있던 자리였다 보니, 맡으면서 새로 겪어야 했던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ㄴ 이 극장만의 사회적 필요성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게 없으면 계약기간이 끝나고 철수해도 상관이 없는 극장이 될 것이다. 이 극장만의 역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뻔하다. 사회적 역할을 잘 해내지 못했던 것을 잘하는 것이다. 너무 쉬운 답이었다. 기본적인 극장의 역할을 해주면 되는 거다. 그게 바로 극장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극장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 작가와 중요한 화두를 잘 수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엄격하다 보니 그게 어려웠다. 그런 의미에서 이 극장을 필요로 하는 예술인들이 있는 거다. 사실 어르신들은 싫어하신다. 나중에는 그분들까지 꼭 수용하고자 한다.

 

지난 해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각종 연극상을 휩쓸고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후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작품 기획의 초반부터 공연의 완성까지, 과정이 결코 쉬운 작품이 아니었다.

ㄴ 박근형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2016년도 시즌을 위한 2015년 시즌 공모에 들어왔던 작품이다. 지금이야 사람들에게 화제작이라 불리지만, 이 작품을 올릴 때만 해도 '괜찮겠니?'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실질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 작년과 그 이전을 비교하면 극적인 반전이 있다.

 

▲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 남산예술센터

사실 극장 내부에서도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이 작품의 공연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하고 있었다. 한 해 지내고 보니 다른 어느 때보다 극장 식구들과 함께 난관을 헤쳐 나온 느낌을 받았다. 사실 연극은 그런 게 힘이다. 극장과 극단이 맺는 관계도 함께 역경을 견뎌온 '하나'의 팀이 됐을 때 다른 지점이 생기더라.

20대부터 지금까지 수백 편의 공연을 올렸다. 작년은 한 편의 연극이 올라가기까지 그 과정이 정말 극적인 해였다. '관객이 많이 와야 한다', '마케팅은 이렇게 하자' 식의 계산이 가능하던 때가 아니었다. 극장 내부에서도 이런 기능적 토론은 거의 없었다. 작품을 어떻게 올릴 것인가를 많이 얘기했다. 그런데도 작년 공연들의 객석점유율은 모두 공평하게 많은 편이다.

작품이 제시하는 사회적 문제제기를 극장에서 만나고 싶어 하는 관객들이 모였다. 올해도 그런 측면에서 유지된다. 상황 자체가 반전은 있더라도 크게 변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이번 작품들도 지금의 문제를 다루는 주제들이 많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유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의 연극들을 찾아보니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와 '파란나라'로 좁혀지더라.

검열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거니와(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이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일상의 시간에서 우리 안의 민주주의를 고뇌(파란나라)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두 작품의 반경이 넓어졌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페스티벌 도쿄'에 방문한 이후, 올해도 해외 쪽에서 초청을 기다리는 게 있고, 국내에서는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이 확정됐고, 인천문화예술회관 공연은 추진 중에 있다. 작품이 재공연될 때는 이전보다 액션이 커져야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다.

'파란나라'는 작품의 모태가 됐던 미국의 '파도(토드 스트라써 저)'라는 책의 번역자 김재희가 작년에 관객으로 왔다. 독일이나 이스라엘에서는 '파도'를 전체주의나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할 때 학생들에게 읽히는 좋은 교재라고 한다. 우리 식으로 해독된 '파란나라'라는 작품도 교육 현장에서 유효한 작품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재공연을 결정했다. 현재 서울시의 '세계도시문화포럼'에서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자리를 추진하고 있다. 이 포럼에서는 각 도시들이 고민하는 주제, 즉 시민이 문화의 주체가 되는 '문화민주주의'를 화두로 삼고 있다. '파란나라'는 청소년 시민들이 자기 발언을 내며 토론하다가 연극으로 올리게 된 케이스다. 우리의 사례를 그 포럼에 소개할 수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아 포럼 진행 일정에 공연기간을 맞췄다.

 

▲ 연극 '파란나라' ⓒ 남산예술센터

 

레퍼토리 작품 선정에 고민이 많을 것 같다.

ㄴ 원래 남산이 5년 동안 연극 '푸르른 날에'를 계속 해왔다. 이후 또 다른 레퍼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재연을 마친 '햇빛샤워'를 또 하는 게 좋을까, 지금 한 작품들 중에 다시 레퍼토리 만드는 게 좋을까 고민했다. 생명력 갖는 작품이 있어야 한다. 작품에도 인생이 부여돼야 한다. 대체로 공연은 한 번 무대에 오르고 작품이 끝난다. 그 생명력의 가능성이 보이는 것을 찾아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와 '파란나라'를 택했다.

 

올해도 이연주, 구자혜, 전윤환 등 신진 연출가들의 작업이 눈에 띤다.

ㄴ 앞서 언급한 '생명력 있는 공연'이 반드시 여기(남산예술센터)서 출생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실제로 '창조경제_공공극장편'은 혜화동 1번지에서 출생됐다. '우리의 창조활동이 경제활동에 도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문장으로 8명의 배우들이 출연해 서바이벌 게임하는 공연이다.

이번에는 8명이 아니라 4팀이 등장한다. 이전 공연에 비해 극장, 배우, 관객 수용력이 팽창됐다. 투여되는 돈도 10배 이상이 된다. 이것이 그들의 생활에 도움 되겠는가 묻는다. 정말 도움이 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윤환은 패기 있는 연출가다. 공연이 양적으로 팽창됐을 때도 이 실험이 유효한지 도전해보고 싶다 하더라. 그래서 '창조경제'가 '창조경제_공공극장편'으로 발전됐다.

구자혜 연출가와 이연주 연출가도 각각 '혜화동 1번지'와 '권리장전-검열각하' 공연으로 올렸던 작품들을 남산으로 가지고 왔다. 이야기가 더 확대되고 구조 자체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세 작품 모두 다른 곳에서 시작했지만, 남산에서 새롭게 키워지게 됐다. 여기서 꼭 산고를 겪지 않아도, 성장의 과정으로 새 작품들이 나올 수 있다. 그런 경우는 보통 젊은 창작자들의 작품에 해당된다. 작년에는 '귀.국.전'이 그런 의미가 있었다. 이번에는 기획전의 형태보다 각자 창작자들의 작품을 독자적으로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싶었다.

▲ 구자혜 연출이 남산예술센터 기자간담회 당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구자혜 연출가는 작년에 이어 남산 무대에 다시 한 번 오르는데. '맨스플레인'에서 '예술계 성폭력'으로까지 주제가 진행됐다.

ㄴ 구자혜 연출가는 작년에 남산 들어온 작가 중에 젊은 작가 쪽에 속한다. 개인적으로 남산에 와서 꽃을 핀 작가라 생각한다. 혜화동 동인으로도 꾸준히 활동해왔다. 2016년 제53회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 제7회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한 그는 가해자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가령 여느 범죄의 가해자의 입장, 정치인의 뻔뻔한 청문회 모습 등을 말이다.

블랙텐트 공연 '킬링타임'도 세월호 사건에 대해 말하는 국회의원들의 말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다. 계속해서 가해자들의 언어, 텍스트에 집중한다. 가해자 본인들은 그 텍스트들의 의미를 모르고 뻔뻔한 태도로 일관된다. 구 연출가는 그 입장을 탐구하고 글 쓰고 싶어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여성 문제, 특히 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 얘기한다고 한다.

그 동안 이 문제들은 국내 정치적 큰 이슈에 의해 많이 묻혔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문제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거사를 앞두고 그런 일들을 얘기하는 게 맞냐'고 물을 수 있지만, 세상의 문제는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데, 그 동안 우리 주변에는 문제의 경중을 따지다가 해결하지 못하고 묻힌 문제들이 너무 많을 거라 생각했다. 그럴 때 구 연출가가 다루는 이 주제가 유의미한 작업이라 생각하게 됐다.

 

▲ 연극 '변칙 판타지' ⓒ 남산예술센터

 

지난 해 '남산아고라'를 통해 '페미그라운드-여기도 저기도 히익 거기도?'라는 공연을 올리며 여성혐오를 주제로 다룬 바 있다. 또한 '변칙판타지'를 통해 성소수자들의 발언을 무대 위로 과감히 내놓은 바 있다. 젠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진 극장이 드문데, 참 반가운 일이었다.

ㄴ 요약적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일반인들이 공연을 만들어냈다는 건 의미가 있다. 젊은 친구들이 모여 연극을 만들었는데, 공연 뒷부분이 다소 지루했지만 사례를 직접 모집하는 것, 객석에서 낭독을 한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공연을 올리는 것만으로 끝내는 차원이 아니라, 남산 제작진, 창작진들과 함께 교육으로 논의를 더 진행시킬 예정이다. 영화계에서는 이미 그 작업들을 했다고 한다. 올해 함께 작업하는 극단들과 3~4차례에 걸쳐 여성문제, 성적 문제들을 가지고 제작 전에 교육시간을 갖고자 한다. 공공극장 중 처음이 아닐까 한다. 여성예술인연대에서 제안했고, 김민영 PD의 기획 하에 진행된다. 우선 이번 3월에는 남산 라인업 앞의 세 단체들이 참석한다. 강의는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와서 해주신다.

 

실제로 '상부'의 눈치가 보이는지. 작년 한 해 박근형 연출가 뿐 아니라, 세월호 관련 공연(연극 '그녀를 말해요')도 가감 없이 올렸다. 그로 인한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는가?

ㄴ 단 하나도 없었다. 남산예술센터는 서울문화재단 소속기관이자, 서울시 위탁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서울시에서 예산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쓰는지 관리는 하지만, 프로그래밍에 대해서는 터치를 안 한다. 물론 어떤 작품을 할 지 보고는 한다. 그러나 큰 제재는 없다. 대신 극장 운영이 합리적으로 진행되는지는 관리 받는다. 재단 측도 프로그래밍은 전문가에게 맡기겠다고 한다. 작년 라인업에 대해 주변에서들 '괜찮니?'라고 묻곤 했는데, 이곳은 자율성이 보장됐다.

 

▲ 세월호 관련 연극인 '그녀를 말해요' ⓒ 남산예술센터

 

타 공공극장 및 단체들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ㄴ 비껴갔으니까 그렇다. 사실 작년 같은 상황에서는 알아서 축소하거나, 아예 안하는 경우도 많을 거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우리 극장이 조직적으로 독립된 다음에 내가 오게 됐다. 재단에서 체계적인 부분에서 독립성을 인정받고 있고, 서울시도 위탁사업으로서 자기 의무는 하지만 작품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해준다. 오히려 '관심을 부탁드린다'고까지 한다.

또한 '꼭 이 사람들의 작품을 해야 한다'는 식의 압력도 없었다. (그런 압력이 있었다 해도) 우리도 그걸 이행할 마음이 없다. 아무도 제재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이런 작품 올려도 되나?' 하는 자기검열들이 충분히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반대가 있었어도 작품들을 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극장장이나 예술감독이 모든 걸 결정하는 줄 아는데, 극장은 그리 단순한 조직이 아니다. 한 사람만의 목소리로 진행되지 않는다. 첫 번째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나 '그녀를 말해요' 등과 같은 창작자들의 작품 제안을 수용해야 하지만, 두 번째는 극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점에서 모두 합의가 이뤄져 공연들을 무사히 올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라인업의 처음과 마지막 작품의 설명을 못 들었다. 첫 프로그램은 새로 시작하는 '2017 서치 라이트'다.

ㄴ 3월에 공연하는 게 힘들다. 엔진을 밟는 시기다. 여러 프로그램을 고민하다가, 아직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준비 중인 공연, 공연으로 올릴지 말지 구상 중인 아이디어, 토론과 스터디, 공연은 올라가지 않았지만 완성된 텍스트 등 도래하지 않은 공연작들을 올리는 프로그램을 첫 프로그램으로 선정했다. 작품 기획, 제작 과정 등 어떤 과정이든 상관없다. 그런데 상당수는 낭독 공연이 될 것 같다.

 

 

보통 정기공모가 30여 개 들어온다. 근데 이번에는 100여 개 들어왔다. 이건 지원금도 딱히 없고 하루 공연할 타임과 준비할 시간, 50~150만원의 준비금 정도만 지원하는데도 뜨거운 반응이었다. 공연되지 않은 모든 것들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이 될 것이다. 미정의 과정을 관객들에게 공연한다는 것이 흥미로운 부분이다.

시즌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예술 검열 사태, 블랙텐트 등의 사건으로 '민주주의'나 '공공극장'의 본질을 극장 식구들이 고민했다. 이 극장이 그런 얘기들을 공론화하고 마음껏 토론할 수 있는 장으로 쓰이길 원한다. '2017 서치 라이트'도 그런 내용을 수용하고자 했다.

그래서 사방팔방 여러 극장들을 조사했다. 웨일즈 국립극단(National Theatre Wales)의 '빅데모크라시 프로젝트(THE BIG DEMOCRACY PROJECT)'를 알게 됐다. 웨일즈 국립극단은 전용 극장이 없는 국립극단이다. '우리가 바라는 가장 민주적인 웨일즈는 어떤 나라야?'를 주제로 공연을 통해 자신들의 의제를 발표한다. 3년 프로젝트고, 최종적으로 국회의사당에서 공연한다. 이걸 보고 우리가 다 꽂혔다.

지난 2월에 공연창작집단 뛰다와 공동작업 때문에 웨일즈 국립극단의 프로듀서가 내한했다. 연락해서 '2017 서치 라이트'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여기서 당신들의 프로젝트를 알리는 자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한 스터디를 공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는 15일에 나를 비롯해, 평론가 방혜진, 노이정 등이 참여해 공개 토론 시간을 가진다.

 

 

 

마지막 작품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는 권여선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ㄴ 우리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작년에도 마지막 작품이 제일 힘들었다. 올해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이 급변하니 숨 막히는 주제들을 주로 다루게 됐다. 피로도가 높은 건 당연한 수순이다.

올해를 마감할 작품으로는, 어떤 싸움이나 폭풍우가 지나갔을 때 지나고 나서 자기를 돌아보게 할 수 있는 희곡을 찾았다. 그런데 우리 연극쟁이들은 모두 목소리가 높다. 그래서 그런 작품을 찾기가 힘들었다. '안녕 주정뱅이'로 유명한 권여선 작가의 소설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를 창비 여름호에서 보게 됐다. 아직 단행본으로는 출판되지 않고 계간지에만 실린 작품이다.

권여선 작가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인생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에 통감하고 있을 것 같다. '이게 옳고 저게 그르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다는 것. 사람의 고통이나 비극을 입체적으로 다루는 게 중요한 건데. 여기 그런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도할 시간을 안 줬다. 세월호도, 지금까지의 여러 죽음들도. 피해에 대해 애도하거나, 우리 스스로 달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고 분노하는 시간이 많았다. 사람들에게는 내상이 남는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치유'가 아니다. 본질들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누군가가 연극으로 잘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박해성 연출가가 맡게 됐다. 박 연출가가 보자마자 가슴이 뛴다며 이 소설을 정말 좋아했다. 권 작가도 정말 흔쾌하게 아직 발간되지 않은 소설을 연극화하게 허락해줬다. 박 연출, 권 작가와 얼마 전에 얘기했는데 '구상은 하나도 안했는데 잘 나올 것 같다'더라(웃음). 권 작가님이 주당으로 유명하다. 아직까지는 주정뱅이 작가와 연출가가 의기투합해 술 마신 것밖에 없다.

 

▲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이 남산예술센터 기자간담회 당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을 것 같은 작품이다. 한 여고생이 살해되고, 그 죽음에 여동생과 엄마가 미쳐간다. 엄마는 죽은 딸의 이름을 바꾸겠다고 동사무소를 찾아가고, 여동생은 언니 얼굴 그대로 성형을 한다. 모녀는 그때 용의자로 지목됐던 사람을 찾아 복수를 하러 간다. 지목받은 사람은 약자였다. 강자는 법의 망에 피해있었기 때문에. 약자 하나를 지목해 평생을 고통스럽게 하고 스스로도 고통에 처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다. 하나의 죽음을 둔 복수. 이것은 희생자와 희생자, 약자와 약자 간의 구도로 얽히고설켰다. 신은 저기서 바라본다.

[글]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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