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우수신작 뮤지컬 4 작품 비교

[문화뉴스] '뮤지컬'을 통해 '시대'를 말했다.

지난 2월 26일 뮤지컬 '광염소나타'가 공연을 종료하며 201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우수신작 뮤지컬 4 작품이 모두 끝났다.

'공연예술 창작산실 지원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08년부터 실행해오던 공연예술 창작산실 지원사업(구, 창작팩토리)을 2014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으로 제작부터 유통까지 공연예술분야(연극, 무용, 음악, 오페라, 전통예술, 창작 뮤지컬)의 단계별 지원(시범공연 지원-우수작품 제작지원-우수작품 재공연 지원)을 통해 우수 창작 레퍼토리를 창작부터 유통까지 지원하는 사업이다.

2016년에 선정된 4 작품은 다음과 같다. ▲ 1월 7일부터 2월 5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된 '경성특사' ▲ 1월 10일부터 22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레드북' ▲ 1월 17일부터 2월 5일까지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된 '청춘, 18대 1' ▲ 2월 14일부터 26일까지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된 '광염소나타'.

저마다의 색깔로 관객에게 다가간 4작품들이 어떻게 실제 무대에서 공연됐는지 살펴본다.

   
 

뮤지컬 '경성특사'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비밀결사'를 원작으로 해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 배경으로 옮겨온 작품이다. 보기 드문 '추리활극' 뮤지컬인 데다 통상적으로 어디서든 많이 활용됐지만, 주역은 아니었던 재즈 음악을 기반으로 '동물원'의 박기영이 음악을 맡아 독특함을 더했다.

추리 활극이지만 '추리'보단 '활극'에 더 방점이 찍힌 모양새다. 화려하고 전문적인 모양새는 아니지만, 청년모험가회사의 두 주인공은 쉴새 없이 액션에 몸을 맡겼다. 영화나 소설과 달리 무대 공연의 특성상 관객들이 정확하게 연출의 의도를 따라가며 추리하기란 쉽지 않기에, 단서를 제공하는 인물들의 행동이 극에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성천모 연출, 정준 작가가 힘을 합친 뮤지컬 '경성특사'는 정민, 강성욱, 김다혜, 민경아, 전재홍, 박정표, 원종환, 김호섭, 홍륜희 등이 출연했다. 특히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밝고 활기찬 소녀 줄리엣을 맡았던 김다혜는 '고래고래' 등에 이어 털털하고 예쁜척하지 않음으로 예뻐 보이는 본인만의 여성 캐릭터를 확실히 보여줬다.

   
 

뮤지컬 '레드북'은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한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작품이다. 슬플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하는 당찬 여주인공 '안나'가 시대적 금기였던 여성의 육체적 욕망에 기반을 둔 소설을 쓰며 벌어진 사건을 다뤘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로 스타덤에 오른 한정석 작가, 이선영 작곡가가 4년 만에 만든 신작으로 원 캐스트인 배우들이 자기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듯한 열연을 펼쳤다. 특히 박은석은 전작 '페스트'에서 지나치게 분노하는 모습을 선보였던 것과 달리 로맨틱 코미디의 일반적인 여주인공 캐릭터를 미러링한 느낌의 브라운 변호사를 통해 남자도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음을 증명했다. '키다리 아저씨'를 통해 2인극에서도 충분히 극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유리아 역시 시대의 금기에 도전하는 당찬 안나 역을 훌륭히 해냈다.

뮤지컬 '레드북'은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비롯한 여성의 욕망 등을 '남성과 동등한 위치'로 그려내는 모습에서 21세기에 벌어지는 페미니즘 운동을 연상케 했다. 이에 대해 페미니즘을 남성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너무 가볍게 희화했다는 비판 역시 존재했지만, 여성 인물이 대부분 사랑에 목숨을 걸거나, 그럴 기회조차 없이 남성들 사이에서 휘둘려왔던 대부분의 기성 작품을 뒤집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며 흥행에 성공했다. 또 소극장 규모를 벗어나 쇼 비지니스 장르이자 대중성을 고려해야 하는 작품의 볼륨에도 어울리게끔 메시지, 볼거리, 음악 등이 적절히 조화된 작품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동경시청장 암살 작전에 뛰어든 청소년들을 다룬 뮤지컬 '청춘, 18대 1'은 다른 세 작품과 달리 '청소년극'이자 뮤지컬 제작사가 아닌 극단에서 제작해 눈길을 끌었다. '주홍글씨'와 '왕세자실종사건' 등을 만든 극단 죽도록달린다에서 만든 '청춘, 18대 1'은 또 연극이었던 원작을 뮤지컬로 새롭게 만든 작품이다.

여러 작품을 함께한 서재형 연출, 한아름 작가, 황호준 작곡 트리오가 만든 뮤지컬 '청춘, 18대 1'은 청소년 극답게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기대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청소년 극인데도 무조건적인 희망이나 긍정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극장을 나선 뒤 한 번쯤 극의 메시지를 곱씹게 하는 연출이 눈에 띄었다. 그러한 구성이 다소 명확하지 못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소박하게 동네에서 동생과 가게 하나 여는 것이 꿈이라는 극 중 윤철의 대사에서 드러나듯 오히려 불확실한 삶을 사는 현실의 청년들과 맞닿은 작품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뮤지컬 '광염소나타'는 김동인의 소설 '광염소나타'에서 모티브를 얻은 창작 작품이다. 강한 매력을 지닌 남성 캐릭터들로 이뤄진 3인극, 라이브로 공연되는 현악 3중주 등 관객의 기대를 끌어올린 요소가 많은 작품이었지만, 극이 공개된 후 다소 밋밋한 스토리로 인해 오히려 아쉬운 평을 받았다.

살인으로 영감을 얻어 죽음의 소나타를 작곡해가는 천재 작곡가 J와 그의 범죄를 부추기는 교수 K, J의 오랜 친구이자 진짜 천재 작곡가 S, 셋의 만남을 통해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를 뮤지컬 '광염소나타'는 채워주지 못했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광염소나타'는 힐링물이 대세를 이룬 요즘 극단적인 유미주의를 통해 예술과 삶의 가치를 묻는 독특한 작품이 될 것으로 보였으나, 극의 흐름을 이끄는 중심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각 인물들 동기가 약해 빛이 바랬다.

하지만 전체적인 모양새를 세련되게 만드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는 평이었다.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는 배우들의 감각적인 연기와 폭발적인 넘버는 향후 보강된 스토리와 만나 큰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2016 창작산실 우수신작 뮤지컬 4작품은 저마다의 색을 지녔지만, 큰 줄기에서 공통점이 엿보였다. 바로 극을 통해 현실을 이야기하는 시대성이 강한 작품들이란 점이다. 뮤지컬 '레드북'은 19세기 영국이라는 필터를 덧씌웠을 뿐 보수적이고 성에 대한 이중성을 꼬집는 모습이 21세기 대한민국이나 다름없었다. 일제 치하에서 더 나아지리란 희망 없이 고된 삶을 견디는 청소년들이 등장한 '청춘, 18대 1'도, 아예 돈이 중요해서 택시 운전까지 했다며 남자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신여성 윤이옥이 등장하는 '경성특사'도 마찬가지였다. '광염소나타' 역시 성공을 위해선 너무도 당연히 인간성을 버린 채 사는 시대의 모습이 반영된 결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연계에선 최근 몇 년간, 어딘가 일그러진 우리들의 시대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진행됐다. 100만 촛불과 함께 '빛'을 외치고, 불의한 권력에 맞서며 땅에 떨어진 예술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가운데, 더 나은 모습으로 관객에게 다시 나타날 '창작산실' 뮤지컬들의 행보가 기대된다.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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