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해랑 rang@mhns.co.kr 대중문화칼럼 팀블로그 '제로'의 필자. 서울대에서 소비자정보유통을 연구하고 현재 '운동을 좋아하는 연기자 지망생의 여의도 입성기'를 새로이 쓰고 있다.
[문화뉴스] 좋은 평을 받는 다수의 영화는 주제가 비슷하다.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 '너의 꿈을 좇아가렴.', '네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아.', '너 자신답게 살아.'
 
2016년 나에게 큰 감동을 안겨준 '라라랜드'도 그랬고, 2017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문라이트'도 그렇다. '라라랜드'가 청춘의 꿈을 사랑과 버무려 화려하고 활기차게 그 메시지를 전했다면, '문라이트'는 아주 담담하고, 현실적이고, 지나치지 않게 그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그 어떤 군더더기 없이 하나의 메시지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배리 젠킨스 감독은 '문라이트'의 후안(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의 대사 "언젠가는 네가 무엇을 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마"로 관객에게 영화의 중심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주인공 리틀-동시에 샤이런이자 블랙(이하 블랙)-은 그 대사를 온몸으로, 그리고 그의 삶으로 보여준다.
 
   
 
 
영화에는 곳곳에서 흑인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부정적인 현실이 배치되어 있다. 주인공 블랙은 그 어떤 부정적인 현실도 피해 가지 못했다. 블랙은 작은 체구 때문에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받았고, 이는 약자 집단 내에서도 다시 약자가 양산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괴롭힘을 당하는 리틀(블랙의 어린시절)을 괴롭히는 친구들도 미국 내 인종차별의 희생자이며, 리틀(알렉스 R. 히버트)은 희생자들 사이에서의 희생자이다. 게다가 게이라는 놀림까지 받는 리틀은 사회에서 약자로 분리되어 차별받는 약자의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영화가 단지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혹은 차별받는 흑인 소년의, 성장 과정이라고만 이해하기보다는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가 처한 부정적인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블랙은 그러한 자신의 환경을 마치 자신의 잘못이기라도 한 듯 불평 한번 없이 스스로 감내해나간다. 어쩌면 그는 그가 약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케빈(안드레 홀랜드), 자신을 마음으로 보듬고 자신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후안과 테레사(자넬 모네), 법적인 보호자인 엄마만으로도 자신의 삶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블랙에게 보여주는 현실이 블랙의 세상이다. 블랙은 그 이상의 세상을 생각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모든 어린아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세계가 부모이고, 새로운 경험 없이 사고의 폭이 넓어지기 어려운 것과 같이, 블랙에게는 후안과 테레사, 엄마(나오미 해리스), 그리고 케빈이 생각할 수 있는 전부였을 것이다.
 
블랙은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를 응징한 것이 처음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이었다. 케빈으로 인해 블랙은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겼으나 그 결과는 부정적이었고, 그 순간에서 블랙의 삶은 좌절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금 스스로 삶을 선택하지 못하고, 남에게 삶의 결정권을 맡겨버린 것이다. 그 남은 바로 블랙이 처한 부정적인 환경이다. 이것이 안타까운 부분이다.
 
   
 
 
관객들은 블랙의 감정 표출에 안도감을 느끼며, 그 사건이 블랙의 인생에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했겠지만, 관객들의 바람과는 달리 블랙은 마약거래상이 되어있다. 블랙에게는 후안이라는 모델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안은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이 공존하는 모델이다. 후안은 블랙에게 더 큰 세상을 알려주고 싶었고, 자신과는 다른 삶을 알려주고 싶었겠지만, 감옥에서 나온 블랙에게는 마약거래상이라는 것이 더 현실적인 삶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처하는 현실이다.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도 더 나은 세상이 그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늘 세상은 사회적 약자에게 벽일 뿐이다. 그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러나 블랙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후안은 블랙에게 인생의 지침이 될만한 이야기를 남겼고, 테레사는 그에게 자존감과 사랑을 가르쳤으며, 케빈은 블랙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동시에 그에게 애정을 주었다. 그리고 블랙의 엄마는 블랙의 불우한 환경을 만들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동시에 블랙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만이 블랙에게 '넌 원래 따뜻한 사람이잖니.'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변해버린 블랙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사람은 케빈이지만, 그런 블랙을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은 엄마일 것이다.
 
대부분이 이 영화를 주인공의 성장 과정이자 성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성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라는 말을 부인한다. 블랙은 그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어떻게 결정해가는지를 온몸으로 고민하고 부딪혀가며 보여주고 있다. 성 정체성은 우리의 정체성의 일부이고, 정체성과 분리될 수 없으며, 그 역시 우리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문라이트'는 우리가 어떤 태도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블랙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블랙의 성장을 통해서, 그리고 그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후안, 케빈, 테레사, 그리고 블랙의 엄마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커다란 몸으로 변해버린 블랙(트레반테 로데스)에게서 나오는 17살 소년 같은 수줍음과 망설임. 케빈에게 보내는 눈빛과 말에서 느껴지는 고민과 따뜻함. 그리고 아직도 세상을 겁내고 있는 듯한 블랙의 눈빛. 방황하고 겁내는 샤이런(에쉬튼 샌더스)의 눈빛과 세상에 문을 닫은 듯한 리틀의 눈빛. 연기자들은 훌륭했다.
 
불안한 선율을 타고 안정감을 찾아가는 음악, 때로는 블랙의 시선에서 회전하는 카메라와 때로는 주요 인물을 가운데 두고 회전하는 카메라, 바닷물과 리틀(주인공)을 넘나드는 화면구도. 그리고 달빛 속에 파랗게 빛나는 블랙을 느끼게 해주는 색감.

각본, 연출, 카메라 워킹, 화면구도, 연기…. 그 모든 것들이 오로지 블랙이 삶을 찾아가는 그 과정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관객은 그러한 감독의 연출을 따라가며 블랙이 느끼는 불안감, 안정감, 도전 등의 감정선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라라랜드'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용기 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문라이트' 꿈을 꾸기 이전에 그 꿈을 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삶은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당신이 어떤 피부색을 가졌건, 당신이 어떤 성 정체성을 가졌건, 당신이 어떤 성별을 가졌건 중요하지 않다. 당신의 체구가 크건 작건, 당신의 몸이 불편하건 불편하지 않건 중요하지 않다.
 
달빛 속에 서면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인다. 
모든 사람은 달빛 속에 서면 푸른색으로 보인다.
달빛 속에 서 있는 블랙이 파랗게 빛나듯이….
당신도 달빛 속에 서면 파랗게 빛날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할 지 스스로 정하라. 남에게 그 결정을 넘겨주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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