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남자충동' 리뷰

   
 

[문화뉴스] "존경받는 가장! 고거이 내 꿈이여."

이 한 문장 안에 '장정'이라는 인물의 삶의 지향성이 드러난다. 가부장의 전형을 드러내는 이 대사 뿐 아니라, 남성미 강한 제목, 거친 포스터, 게다가 극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은 단 2명밖에 없는 남성 위주의 인물구도. 연극을 둘러싼 모든 요소들이 '나(연극)의 성별은 남성이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심지어 작가이자 연출을 맡은 조광화는 "이 극에는 여자가 없다. 모두 상징적 인물"이라고까지 말한다.

작년 한 해 여성관객들은 연극 '보도지침' 프로듀서의 기획의도에 크게 데이고, 시대가 변함에도 남성 위주의 관점이 변하지 않은 연극계를 상징하는 듯한 '청춘예찬'에 지쳤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연극도 변해야 한다. 동시대성은 언제, 어디서나 연극이라는 장르가 안고 가야 하는 필수적 특징이다. 여성들의 관점,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해야 하고, 실제로 변하고 있는 시점, 연극은 그것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페미니스트들은 말한다. 페미니즘은 여성들만을 사회적 억압에서 구제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고 말이다. 강제된 성(性) 역할로 생기는 모든 억압을 반(反)하는 사상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여성주의 정치학의 목표는 몇몇 '여성 정체성'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적 구속을 문제화하고 전복하는 것이 된다"고 말한다.

조광화 작가의 말을 이어가보자. 여자가 없다는 연극 '남자충동', 그는 극 속에 "가부장 수컷이 인식하는 여자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말을 덧붙인다. "(극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라, 어머니라는 신화적 역할을 수행할 의무적 존재고, '달래'는 오빠(장정)의 여동생이자 성을 의식 못 하는 자폐아고, '단단'은 여성적 속성으로 달아난 남자"라는 것이다.

 

   
 

수많은 연극들은 여성을 부수적, 비주체적,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왔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해도 여성들이 남성들 혹은 권위적 존재로부터 박해받는 장면을 관습적으로 삽입하곤 하는데, 이것이 논란이 되면 여성의 현실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반영하기 위함이었다고들 에둘러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현실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많이 목격한 것이기도 하고, 심지어 그 현실을 우리 스스로 당하는 중이기도 하다. 어쩌면 여성 관객들은, 사실주의 연극을 표방하면서 여성을 주체적 인물로 다루지 못하는 숱한 연극들에 질려버렸는지도 모른다.

연극 '남자충동'은 다소 특별하다. 장정의 어머니가 억압 받아온 세월을 직접적으로 그려내지 않고, 장애를 가진 여성(달래)이라는 최약체가 학대받는 모습을 그리지도 않는다. 더불어 남성성의 허위를 고발한다. 남성들의 거친 언어와 행동, 폭력이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과장된 남성성을 통해 이것이 얼마나 텅 비어 있는 기호인지를 말해준다.

 

   
 

'존경받는 가장'이 되고자 하는 장정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폭력을 일삼는다. 가정을 파탄 내려는 아버지의 두 손을 자르고, 남성적이지 못한 남동생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이혼 선언은 그동안 어머니가 겪어온 지긋지긋한 고통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아버지의 폭력성을 잠재우면 가능한 것으로만 단순하게 인식한다. 또한 자폐증을 앓고 있는 달래는 보호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로 여긴다.

그러나 그가 '보호'하려면 할수록, 가족들은 그의 곁을 떠나간다. 그의 보호에는 '폭력'이 반드시 수반되기 때문이다. 한 가정을 지키기 위한 가장에게는, 안팎의 가부장적 질서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폭력이 묵인됐다. 이혼 이후 자신만의 삶을 찾아간 어머니, 장정을 찌르는 달래, 여성으로 살아가길 택한 남성 단단. 이 세 존재는 장정의 남성성에 균열을 일으킨다.

작가는 단단이 남성임이 밝혀지는 순간, 남성들의 과시적 언어를 빌려와 남성이었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고통을 고백한다. 교복을 입은 네 명의 남성들은 자신이 어떻게 남성의 세계, 즉 힘의 논리가 가득한 그 세계에 편입하게 됐는지 고백한다. 이 고백의 언어는 과시 혹은 과장으로 포장됐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폭력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아님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 고백의 순간들은 남성성이 어떻게 폭력성과 결부되어 유기적 관계가 되었는지 그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장정(壯丁)'은 이름부터 젊은 남성, 즉 힘의 기운을 내포한다. 배우 박해수는 '남성미'라고 포장되어온 남성들의 판타지를 제대로 실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배우다. 그러나 무게감 가득하고 거친 남성의 표본인 것 같은 '장정'은 순간순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남성적인 면모를 방백으로써 발화해내곤 한다. 거칠고 단호한 언행 뒤에는 혼란스럽고 약해지려고 하는 비남성적인 내면이 무대 위에 공존한다. 배우 박해수는 장정이라는 캐릭터를 성별을 떠나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한다. 자칫 강인함의 대명사로 표현되기 쉬운 장정의 캐릭터 구축에 '나약함'을 추가시켰기 때문이다.

연극 '남자충동'은 박해수 뿐 아니라, 류승범, 손병호, 김뢰하, 황정민, 황영희 등 굵직한 연기력으로 무장된 노련한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돼 눈길을 끌었다. 조광화의 연출 데뷔 20주년 공연 조광화展의 장정시리즈 첫 번째 공연인 '남자충동'은 다음 달 26일까지 대학로 TOM 1관에서 진행된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프로스랩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