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또 베토벤이라고 물어보신다면, 또 베토벤이라고 할 수밖에 없네요."

 
2006년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대회 4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이자, 첫 아시아 출신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말은 뼈가 담겨 있었다. 나이답지 않은 원숙함과 학구적인 행보를 보여 온 김선욱은 국내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와 첼로 소나타 전곡을 완주해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라는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올해로 30대에 접어든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연주인생 2막의 출발점에 섰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2017년을 알리고자, 지난 21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금호아트홀 내 문호아트홀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그는 이달 베토벤 3대 피아노 소나타인 '비창', '월광', '열정'을 수록한 앨범을 독일 클래식 명가 악첸투스 레이블을 통해 전 세계 발매했다. 이어 앨범 발매 기념 독주회가 3월 16일 과천시민문화회관 대극장, 17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1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앨범에 수록한 3대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며, 앨범과 다른 또 다른 묘미의 접근과 깊이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1시간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된 기자간담회를 통해 그의 포부를 살펴본다.
 
   
 
음반을 낸 소감을 전해 달라.
ㄴ 몇 년 전만 나는 공식 음반이 없었다. 독일 페스티벌을 통해 여러 연주자들의 컴플레이션 음반에는 들어갔지만, 공식적인 음반은 없었다. 2013년 서울시향 연주 음반이 처음 나왔고,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앨범이 나왔다. 베토벤을 한 번 내면, 다른 작곡가의 앨범을 진행했다. 매우 균형 있게 진행했는데, 이번에 다시 베토벤 텀이 온 것 같다. 솔로 앨범을 다시 내게 될 텐데, 그때는 베토벤이 아닌 게 확실하다.
 
베토벤은 피아노 문헌사에서 수많은 의미를 담은 곡을 만들었다.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 전부를 내고 싶은 욕심은 없다. 하지만 소나타 앨범을 내고 나니, 그래도 많은 대중분이 좋아하시는 음반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태까지 내가 하고 싶은 곡을 관객 취향과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많이 연주했다면, 이번엔 많은 분이 사랑하는 곡을 만들고 싶었다.

2006년 영국 리즈 콩쿠르 우승 후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연주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평을 들었다.
ㄴ 어느덧 한국 나이로 30살, 만으로 28살이다. 이 나이에 '연주 완성도를 높아졌다'라는 말은 자만이고, 용납할 수 없다. 지난 10년간 베토벤의 곡을 많이 쳤다. 소나타뿐만 아니라, 협주곡, 첼로곡까지 다 했다.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하나의 결을 쌓았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베토벤관'에 하나의 껍질이 생긴 것이다. 연륜이 들어간다는 게, 그런 결을 늘려나간다고 생각한다. 
 
그 겹들이 스며들어 빛난다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지난 10년의 과정 동안 결을 늘렸다고 본다. 옛날엔 곡을 숙달한다는 성취감, 어떤 곡을 처음 배워서 청중에게 연주했다는 성취감이 있다면, 지금은 좀 더 농축된 깊이를 찾아가는 과정이 앞으로 30~40년 동안 해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똑같은 소리를 내더라도 훨씬 더 깊이 있고, 무게 있는 소리를 낼 수 있고, 음악 해석도 더 단순해질 수도 있다. 힘도 들어가고, 욕심도 들어가기도 할 건데, 그런 부분은 스며들어 갔고, 이제는 음악 자체로 진실하게 전달하려 한다. 또 10년이 지나면 겹이 쌓일 것이다.
 
   
 
"'비창' 소나타 등 대중적 레퍼토리는 꾸미고 과장된 게 많다"고 말한 바 있다. 해석할 때, 텍스트의 본질에 충실하며 전통적인 연주를 추구한 건가?
ㄴ 아마존 등 CD를 파는 장소에 가서 '비창' 소나타, '월광' 소나타 등을 사고 싶은데 추천해달라고 하면 수십 명 연주자의 음반을 보여준다. 베토벤 전곡 앨범만 해도 수십 곡이고, 너무나 많은 피아니스트가 녹음했고, 브렌델, 슈나벨 등 기본적으로 공부하려면 참조해야 하는 음반을 어릴 때부터 들어봤다. 그들도 다양한 해석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고전 소설 중 좋아하는 게 있다.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가 있는데, 번역본도 번역가의 번역에 따라 어감이 달라진다. 이처럼 베토벤의 원본 텍스트에 따른 번역자도 다르고 해석이 많다.
 
레퍼런스가 많으니 '똑같이 치면 재미없을 것 같아'라며, 특별한 사람들의 귀에 확 끌릴 수 있고, 악보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무시한 채 이런 느낌이 좋으니 이렇게 칠래, 그냥 끌리는 대로 감정이 가는 대로 하는 연주들도 많이 있다. 요즘 들어 그런 연주가 많아지는 것 같다. 그래야 튀고, 레퍼런스에 대한 차별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거나, 좋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나 역시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과연 내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하고자 하는 해석이 뭘까? 결국, 답은 텍스트를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달린 문제였다. 악보를 더 많이 보게 되고, 악보의 메시지가 뭔지 고민했다. 나라는 연주자에 필터 되어 나오는 음악을 이번 음반에 담았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언어로 베토벤의 음악을 번역했다고 생각한다.
 
   
 
성악가와 같이 작업한 사례가 거의 없는데, 가곡 작업을 하면서 직접 독일어까지 배웠다고 들었다. 어떤 계기였나?
ㄴ 이 작업은 내가 원했다. 피아노 소나타나 교향곡은 언어를 담고 있지 않다. 음악 자체로 순수예술적인 것이 있는데, 가곡은 언어가 있다 보니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음악 작업하기 어렵다. 독일어는 내 모국어가 아니니, 텍스트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소나타를 하는 것과 다르게 성악은 그날 성악가의 컨디션에 따라 템포가 달라질 수 있다. 성악가가 조금 지쳐있다면, 옆에 있는 내가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기분을 전달해야지 곡을 이끌어나가게 된다.
 
같은 무대에서 상생하면서 작업하는데, 혼자 연주를 하는 것보다 다른 기쁨과 매력을 준다. 학교 다닐 때, 성악 하는 선배들과 작업하며 굉장히 다른 세계를 본 것 같다. 오페라, 아리아는 반주하기도 까다롭다. 템포도 변형된다. 성악가가 컨디션이 좋은 날엔 고음 부분을 길게 끌기도 한다. 언제 끝날지 몰라서, 눈치도 많이 보는 그런 즉흥적인 요소가 많다. 브람스,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등 작품의 가곡들 할 것 같다. 피아노 역할이 가곡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미지의 세계이기도 한데,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도 한다. 배우는 자세로 임하려고 하고 있다.

민병훈 감독의 영화 다큐멘터리 작품에도 출연한 것으로 들었다.
ㄴ 민병훈 감독님이 찍고 계신 영화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감독님이 연주를 한 번 보러오시고, 아이디어에 착안하셔서 찍으신 것 같다. 스크립트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만 했다. 영화가 나온다고 했는데, 언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출연 배우분들도 계신데, 이탈리아에서 연주할 때도 따라오셔서 촬영하고 있다. 촬영을 너무나 하고 싶었고, 이런 영광이 주어져서 감사했다.

"연주인생 2막이 시작됐다"는 카피가 있다. 신동에서 거장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이번 앨범의 의의는 무엇인가?
ㄴ 신동과 거장이라는 말은 너무나 낯뜨거운 단어다. 11년 전, 어렸을 때 콩쿠르 우승 이후부터 연주자가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많은 피아니스트와 콩쿠르 우승자가 있고, 매년 뉴커머(새내기) 연주자들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재능이 있는 연주자의 출연에 나 역시 놀라고, 고맙고, 흥미롭고, 관심이 많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평생 커리어를 쌓지 못한다. 60~70대까지 음악 활동하는 분들은 거의 드물다. 천재나 신동이 1년에 1,000명 나오면, 60~70대까지 활동하는 분들은 거의 드물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젊은 거장'이라는 말이 기획사에서 붙인 낯뜨거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신동의 출연에 많은 관심을 둬 주는건 당연하다. 옛날에도 그랬고, 어느 분야에도 다 똑같은 것 같다. 올림픽이나 수학 올림피아드를 예로 들 수 있다. 과연 그 사람들의 30~50대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고 묻는다면 회의적이다. 그 사람이 60~70대까지 끊임없이 작업하고, 꾸준히 활동하고, 그 사람만의 세계를 세운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본다. 세월이 축적된 가치와 경험이 모여, 그 사람들에게 명예로운 대우를 해주고, 거기에 대해 감사를 표하면, 그게 거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60~70대 음악가가 한국에 와서 연주하면 팬들이 감사하며 듣는 것이 느껴진다. 그럼 30~40대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음악가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신입사원이 들어와서 중간에 얼마나 많은 일이 있고, 고충이 있고, 승진하는 일련의 과정이 있고, 혼란도 온다. 복합적인 마음이 들던데,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더는 사람들이 신동으로 보지도 않는다. 30~40대가 애매한 나이이긴 하다. 그래서 매일 꾸준히 연습할 수밖에 없다. 음악을 하면서 나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에 초점을 보다 보면 세월이 흐른다.
 
나 역시 고민이 많다. 갈 길도 많고, 해야 할 레퍼토리도 많다. 음악가는 직장 생활처럼 안정적인 수입과 고정적인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도 없다. 간혹 다시 태어나면 음악 하기 싫다는 이야기도 할 정도다. 그래도 스스로 더 돌아볼 시간이 많고, 여행도 하면서 느껴지는 것이 많다. 머릿속엔 '꾸준히 살아남자'만 생각한다.
 
특히 동양인으로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면, 동양인 연주자들이 어쩔 수 없이 지워질 수 없는 편견을 이겨내야 하는 게 많다. 우리나라도 클래식 공연을 보면 "러시아나 독일 사람이 연주하는 그 나라 음악이 저 사람의 나라와 언어니까 남는 거겠지"하고 본다. 당연하다. 그 나라 사람들이 동양인이 연주하는 거 보면, 그런 느낌 받는 게 당연하다. 그건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컴플레인을 하면 자기 자신에 손해가 된다고 본다.
 
어찌 되었던 30~40대를 잘 이겨내는 게 지금 화두다. 음악가는 불확실성의 연속에서 잘 이겨내야만 한다. 2~3년 정도는 계약이 되어있다면, 4~5년 후의 미래는 예측이 전혀 되지 않는다. 계속 활동하려면 2~3년간 꾸준히 연주해서 재초청받아야 한다. 70세까지 공연을 하면 그때는 거장이라고 불러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은데, 2006년 콩쿠르 우승한 후 서바이벌처럼 지금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온 것에 대해 감사히 생각한다. 콩쿠르를 우승하고 사라지는 연주자들이 엄청 많다. 한국, 외국 모두 마찬가지다.
 
   
 
후학 양성 계획은 없나?
ㄴ 내가 재능이 있으면 할 것 같은데, 가르치는 일이 되게 어렵다. 책임감과 참을성이 나 자신에게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세월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가르치는 자체가 부끄럽고, 그럴만한 경험도 쌓아야 한다. 아직은 없다.

'조성진 열풍'이 '클래식 열풍'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의견이 있다.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본인이 기여하고 싶은 것은?
ㄴ 클래식의 대중화에서 조심스럽지만, 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지도 않고, 현재도 하지 않고 있다. 되게 어려운 부분이다. 조성진 씨가 친한 동생이기도 한데, 그런 뉴커머는 10년, 20년 후에 계속 나올 것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건 고마운 일이다. 많은 분이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에 대해 폄하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응원한다.
 
하지만 나는 베토벤 소나타를 내가 하고 싶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이 소나타를 나만의 아이디어로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연주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해도 삶은 길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청중들이 듣고 싶은 곡만 연주한다는 것에서는 회의적이다. 연주자가 확신 있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의 음악을 연주할 때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다고 본다.
 
"음악 공연장은 쇼를 보러 가는 게 아니다. 관객들이 연주자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들으러 와주셨으면 좋겠다"고 최근 출연한 방송에서 말한 적이 있다. 사람마다 전시장, 박물관, 영화관, 음악 공연장에서 방문하는 이유가 다르다.
 
심심해서, 할 것이 없어서 가는 분도 있겠지만, 나는 뭔가 의미를 찾고 싶어 해서 간다. '의미주의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저걸 만들었는지에 대해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 욕구나 호기심이 계속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연주자가 너무나 많아서, 내 색깔 보여주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런 거 좋아하시죠, 연주해 드릴게요"가 아니라 내 색깔을 내서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많다.
 
   
 
앞으로 어떤 곡을 연주하고 싶나?
ㄴ 32개 베토벤 소나타 중 5개밖에 하지 않았다. 27개를 언제까지 완수하겠다는 생각은 없고 천천히 할 생각이다. 다음은 독일, 오스트리아 계열 작곡가가 아닌 나라의 작곡가 곡을 할 생각이다. 쇼스타코비치, 드비쉬를 할 수도 있다. 여기에 메시앙도 연주할 계획인데, '아기 예수'와 관련한 작품을 1시간 20분 동안 하고 싶다. 헝가리의 바르톡 작품도 관심 대상에 있다.
 
최근에 리스트의 작품에 많이 빠졌다. 리스트 전기도 찾아 읽고, 음악도 듣고 있다. 피아노를 어렸을 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리스트는 공포의 대상이다. 음표도 많고, 테크닉도 훌륭하다. 여기에 수많은 여성분이 당시 리스트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테크닉에 홀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리스트는 호기심이 많았다. 단테나 괴테가 쓴 작품에 영감을 받았고, '메피스토'와 같은 여러 캐릭터를 음악으로 구현했다. 계곡을 여행하면서 얻은 영감을 작품으로 구현해 대중의 클래식과는 거리가 있다. 어느 순간 연주가 되지 않았는데, 청중들에게 긴장을 주는 곡들이다. 그게 개인적으로 매료가 되었다.
 
사실 '자기모순적'으로 반반이다. 하고 싶은 게 늘 많다. "또 베토벤이냐"고 할 수 있지만, 그런 비판도 좋다. 앞으로 아직 나는 만 28살이고, 갈 길이 멀다. 그런 건 있다. 많은 청중이 좋아하는 곡이 클래식의 대중화로 향한 길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이해가 되어 청중에게 새로운 세계를 전달하는 게 오히려 중요하다고 본다. 이게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것 같다.
ㄴ 나만 베토벤을 치는 연주자가 아니다. 최근에 체코의 야나체크, 영국의 브리튼 협주곡도 했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연주한다. 그런데 많은 분이 '김선욱 하면 베토벤'이라고 이미지를 주신다면, 싫어하면서도 좋아한다. 쇼팽도 좋아하는데, 최근엔 쇼팽 왈츠를 많이 쳤다. 몇 년 전까지 계속해왔다. 콩쿠르도 쇼팽 콘체르토 1번으로 참가한 적이 있다. 피아니스트라면 당연히 탐구해야 하는 작곡가가 쇼팽이어서 아직 할 기회가 많다고 본다. 조만간 할 것 같기도 하다.
 
   
 
지휘를 배운 것으로 알고 있다. 지휘자 계획은 없나?
ㄴ 지휘는 배우긴 했다. 피아노로 커리어를 계속하다 보니 두 개를 동시에 진행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결론 끝에 계속 피아노 활동을 하고 있다. 지휘는 기회가 생기면 할 것 같다. 원해서 하는 것보다 2015년 당시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주 연주자 시절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었다. 이후에 지휘자가 앙코르로 지휘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재미있게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중 2인무 장면인 '그랑 파드되'를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지휘했다. 그 이후로 오케스트라를 반 시즌 정도 지휘 협연을 해볼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전업 지휘자로 하기엔 피아니스트로 하고 싶은 게 많다. 피아노는 혼자 연습하거나 몰두하면 되는데, 지휘는 많은 연주자와 같이 해야 한다. 문제들이 생길 때, 조율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 많은 부분이 다르다. 현재는 지휘할 생각이 전혀 없다.

정명훈 등 다양한 피아니스트 출신 지휘자가 있다.
ㄴ 피아니스트로 커리어를 콩쿠르 이후 11년 정도 했다. 지휘는 학교에서 배우긴 했지만, 지휘자와 피아니스트 경험을 나눠보면 당연히 지휘자 경험이 없다. 지금 시장에 지휘자로 나를 던지고 싶지 않다. 물론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하고 싶다. 그게 아니면, 피아노를 계속 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다.
 
만약에 한다면 프로그램은 "뭘 할래?"라고 물을 텐데, "또 베토벤이냐"라고 하시겠지만, 베토벤의 교향곡은 지휘 테크닉의 기본기를 다지는 곡들이다. 운동선수들이 기본체조를 하는 것과 같다. 지휘를 처음 하는데 말러나 부르크너를 하라는 것은 아이한테 괴테 작품을 읽으라는 것과 비슷하다. 시작은 베토벤이 될 것 같다. 9번 '합창'은 규모가 커서, 9번을 제외한 모든 교향곡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 김선욱 피아노 리사이틀은 3월 1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앞서 "주말이 없다"고 말을 했는데, 연습 시간은 어떻게 되나?
ㄴ 연습은 규칙적으로 매일 3~4시간 정도 하고 있다.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분은 하루 7~8시간 해야지 적성에 맞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2시간만 하는 분도 있다. 자신만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고충이 있는데, 휴가를 못 간다. 7박 8일은 불가능하다. 악기를 들고 다닐 수 없는데, 정신적으로 매일 연습 안 하면 불안해진다. 만 3살 때부터 25년간 매일 했는데, 며칠만 안 하면 얼마나 불안하겠나. 밥 먹는 것처럼 일상화가 됐다. 장단점이 있다. 하루에 피아노에 앉아 있고 그 외에는 철저히 다른 걸 한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장을 보러 가는 등 일상생활을 한다. 출퇴근 시간은 없지만,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연습을 주로 한다. 그 대신 나는 주말이 없다. 일요일이나 수요일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1주일 이상 여행을 한다면, 그곳에서 피아노 연습실을 꼭 찾는다.
 
지난 연말에 하와이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하와이 음대 교수를 연락해 연습한 적도 있다. 연습이 일반화되니 연습 없는 삶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거기에 대해 불만도 없고, 힘들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루틴의 일상이다. 오늘도 이 간담회를 끝내고 오후에 3시간 연습하는데,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 당연히 해야 한다고 본다. 스포츠 선수의 일상과 비슷하다. 

평소 연습을 할 때, 피아노 뚜껑을 열고 연습을 하는지, 닫고 연습하는지 궁금하다.
ㄴ 이상적으로 열고 하는 게 맞다. 왜냐하면, 피아노 뚜껑을 닫으면, 소리의 진폭이나 다양한 음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집에서 뚜껑을 열고 연습하면 좋겠지만, 주위 사람들이 시끄러워 할 것이다. 그래서 집에선 닫고 한다. 열린 공간에선 무조건 피아노를 열고 연습한다. 그러면서 다른 음색을 찾는다. 상상 속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하면 달라질까 생각한다.
 
음악 한다는 사람이 필수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요소다. 문제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최대한 진심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청중분들한테 내가 원하는 소리를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10대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불필요한 힘이 더 많이 들어간 것 같다. 풍부한 소리를 내려면, 온몸을 무게를 이용해서 쳐야 한다. 때리는 소리가 나오는데, 몸의 힘을 덜 들이고도 열린 음색을 갖게 된 것 같다. 이것도 연륜이 지속해서 쌓이게 되면, 더 내공 있는 소리를 낼 수 있다고 본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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