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누비는 허지욱 아나운서, 내년에는 잠실에서 못 만나

▲ 지난 2009년에 농구 경기장에서 만났던 허지욱 前 LG 장내 아나운서. 오랜기간 LG와 인연을 맺었지만, 올해는 그의 목소리를 잠실에서 들을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 프로야구가 출범했던 1982년부터 야구장에서 장내 아나운서를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선수 소개와 더불어서 장내 방송을 담당했던 여성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는 미 프로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장내 아나운서의 존재는 경기를 조금이나마 유연하게 만들 수 있는, 소금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야구장을 찾는 팬들에게 또 하나의 재미를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장내방송을 하는 인원은 대부분 '여성'으로 한정되는 것으로 알던 시대가 있었다. 적어도 2003년 이전까지는 그랬다. 그런 '장내방송'의 고정관념을 깬 구단이 있었으니, 바로 LG 트윈스였다. LG는 잠실야구장 홈경기에서 장내 아나운서로 레크레이션 강사를 내세우면서 식전 이벤트 행사와 장내 방송을 모두 담당하게 했는데, 이는 상당히 이색적인 시도였다. 그러나 이는 홈 팬들에게 또 하나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그 한가운데 있었던 이가 바로 전임 LG 트윈스 장내 아나운서 허지욱씨 였다.

재치 있는 입담으로 야구팬 마음 사로잡은
그라운드의 엔터테이너, 허지욱의 야구 사랑 이야기

장내 아나운서로서의 그의 이력은 정말 화려하다. LG 트윈스(야구), 안양 KT&G(농구), 구미 LIG(KB 손해보험 스타즈 배구단 전신)를 포함해서 FC서울(축구) 등지에서 장내 아나운서를 맡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각종 기업체/학교 행사 제의가 들어오면, 이를 준비하는 것 또한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춘천 MBC '신나군'에도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상당히 괜찮은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 '대한민국 프로야구 최초의 남성 장내 아나운서'라는 자부심을 잃지 않기도 했다.

그랬던 그는 한때 잠시 LG 트윈스 장내 아나운서 자리를 내놓은 바 있다. 2009 시즌을 앞둔 시점이었다. 계약 만료 이후 구단 측에서 재계약에 소극적이었고, 이에 허지욱도 내키지 않은 마음가짐을 안은 채 잠시 그라운드를 떠나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복귀 시점이 생각보다 길었던 것은 아니었다. 응원단을 재편하면서 다시 마이크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LG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지켜보며, 누구보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허지욱이 마이크를 처음 잡았을 때 LG는 길고 긴 암흑기를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암흑기를 거쳐 LG가 가을 잔치에 진출했으니, 오랜 기간 한 구단을 지켜 본 허지욱의 마음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개인 SNS를 통하여 누구보다 LG 사랑을 표현했던 그는 천상 'LG맨'이었다.

▲ 이승호(사진 우) 現 SK 스카우트의 현역 시절 생일파티 장소에서 함께 했던 허지욱 아니운서(사진 좌). 허 아나운서는 이렇게 선수들과의 폭넓은 관계를 맺으며, 대소사를 챙기기도 했다. 사진ⓒ김현희 기자

또한 그는 천상 '마이크를 잡기 위해 태어난 이'였다. 이렇다 할 목 관리를 하지 않아도 왕성한 성량을 자랑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딱히 목을 별도로 관리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하루 8시간 잘 자면 자동적으로 목 관리가 된다. 다만, 조금 무리하는구나 싶은 날에는 장내 아나운서 할 때 스스로 조절을 한다."라며, 마이크를 잡는 일이 '천성'임을 자랑슬워 하기도 했다.

LG와 함께 한 시간이 많다 보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다. 권용관과 최동수가 같이 LG 유니폼을 입었을 당시의 일이다. 하루는 최동수 선수와 저녁을 먹는 도중 "동수형! 내일 꼭 만루 홈런 쳐 주라."라고 한마디 했더니, 다음날 잠실경기에서 정말로 만루홈런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권용관 선수와도 식사 후에 "용관이 형! 내일 잘하게 될 거야!"라고 한마디 했더니 바로 다음날 경기 수훈 MVP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식사를 했던 선수들마다 '일'을 내다 보니, "올 시즌에도 선수들과 저녁밥 많이 드셔야겠다."라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자 그는 "그렇게 된다면 (LG가) 매년 4강 오르지 않을까요?"라고 답하여 서로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그것이 벌써 8년 전 오프시즌의 일이었다.

"울릉도와 독도 빼고는 다 가 봤다"는 그는 "전국 어디에서나, 저 허지욱을 불러 주시기만 하면 어느 행사든지 100% 소화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축구, 배구, 농구 장내 아나운서를 하면서 서울을 비롯한 구미, 안양 등지를 전전한 바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라운드 밖에서도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줬던 '진짜 프로'였다.

그러한 그의 모습을 적어도 내년에는 잠실구장에서 볼 수 없을 전망이다. SNS를 통하여 허지욱 본인이 LG 장내 아나운서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털어놨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한편, 올해에는 '팬'으로서 관중석에 나타날 것이며, 향후 다시 잠실에서 마이크를 잡게 된다면, 다시 즐겁고 힘찬 목소리로 등장할 것임을 약속했다. 물론 팬들 입장에서는 안타까움 일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이 내려지게 된 데에는 분명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야구장을 찾는 팬들이 그를 찾는 목소리가 커진다면, 2009 시즌 이후 다시 복귀했던 이전의 전례를 밟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 본다.

어디에 있건, 늘 프로다운 모습을 보이는 그의 앞날에 좋은 일만 생기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렇게 그라운드 밖에서도 최선을 다 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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