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푸드컬쳐 디렉터 / 서울시스터즈 CEO 안태양 ansun1206@mhns.co.kr. 필리핀 야시장 떡볶이 장사를 시작으로 한국 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기획하는 푸드컬쳐디렉터다.

[문화뉴스] 오늘은 브랜드 기획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B.I.'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마 사업을 하거나 하려고 준비 중인 분들이라면 B.I. 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 같다.

B.I.는 Bussiness identity의 줄임말이다. 한 마디로 '브랜드 정체성'이다. 이것이 왜 이렇게 중요한지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보겠다.

해외에 브랜드를 가지고 나가는 큰 외식업체들도 해외 진출 1~2년 차에 여러 개의 브랜치를 여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아직 현지 시장과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현지화 전략을 세우려면 우선 1~2개 매장을 오픈해서 고객들의 소비 패턴이나 구매 니즈(needs) 등을 파악해야 하고, 한국과 완전 다른 페이퍼 워크부터 퍼밋, 부동산, 인테리어, 직원을 고용과 교육, 집기류 구매까지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사리 매장을 오픈해도 금방 1~2년 사이에 브랜드의 존폐 위기에 처하거나, 브랜드가 브랜드로서 안착하지 못하고 동네 음식점으로 조용하게 자리 잡는 경우들이 상당수이다.

한국에서 잘 나가는 브랜드들이 해외에 나가면 왜 그렇게 힘을 쓰지 못할까? 그건 바로 그 브랜드의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치킨 브랜드 20개만 나열해 주세요'라고 물어보면 10개 이상의 브랜드를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작년 한 해에만 새로 생긴 치킨 브랜드는 100개가 넘는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남는 브랜드는 10개가 채 안 된다

BBQ치킨-건강한 치킨 (올리브 오일)
교촌치킨-간장 치킨
네네치킨-스노윙 치킨
굽네치킨-구운 치킨
깐부치킨-패밀리 레스토랑 분위기의 치킨집
페리카나-양념치킨
호식이 두 마리-두 마리 치킨
또봉이 치킨-저렴한 치킨
노랑 치킨-건강한 치킨

그런데 아직도 한국의 많은 브랜드들은 "우리 집 치킨이 가장 맛있다", "우리 집 치킨은 다른 치킨들과 다르다"라고 우기듯이 광고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치킨이 맛있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다면 외국인들은 어떤 이유와 생각으로 한국 치킨을 주문할까?

외국인들도 한국 사람들처럼 교촌/본촌/비비큐/굽네/네네/페리카나/멕시칸/호식이 두 마리 등 브랜드 치킨의 맛을 구별하면서 먹을까? 아니면 "한국 스타일의 치킨" 이어서 먹을까?

한국 고객들에겐 '올리브 오일에 튀기고, 건강한 맛이고, 패스트푸드가 아닌 요리고,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튀김 껍질이 다르고, 마리네이션(marination)이 다르다' 이런 것들이 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아버지가 집에서 치킨을 시켜주셨기에 치킨 냄새만 맡아서 '어디 치킨이겠구나', '여긴 이게 맛있지'라고 단박에 말할 수 있다. 이건 몇십 년에 걸쳐서 쌓인 경험이자 노하우이다.

하지만 외국 고객들은 그런 경험이 없다. 그들은 여전히 KFC나 맥도날드 치킨이 후라이드 치킨의 전부이고, 튀긴 음식이니 건강하다고 느끼지 않고, 버팔로 윙이 아니고선 맥주와 함께 야구게임을 보면서 먹지 않고, 짭조름한 버터향이 많이 나는 튀김옷 두껍고 바삭한 치킨에 어렸을 때부터 익숙해져 있다.

우리와 살아온 문화와 경험이 다르다.

'한국 치킨은 맛있다 건강하다 다르다' 강조해봤자 자신들이 지금까지 먹어왔던 치킨이 더 맛있고 익숙할 수밖에 없기에 그런 식의 광고들은 외국 손님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지 못한다. 그래서 '맛있다'라는 이야기에서 벗어나서 내가 만들고 싶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잡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것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지화를 섣부르게 시도하면 한국에 있는 본사 브랜드와 아예 다른 브랜드로 재탄생돼, 고객들이 해외에서 온 인터내셔널 브랜드가 아닌 로컬브랜드 혹은 동네 음식점으로 인식해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정체성이 확실하게 확립되면 그 다음인 메뉴 구성, 현지화 전략, 광고, 마케팅, 타겟팅, 들어가는 문구, 태그라인(tag line), 어떤 직원들과 일을 할 지, 어느 장소에 매장을 오픈할 지, 매장 오픈 마감 시간, 고객들을 대할 때 쓰는 서비스 문구나 대화체 등이 본질에 맞춰 아주 자연스럽게 결합된다.

그래서 나는 브랜드를 기획할 때 정체성을 잡고 그것을 한 문장 혹은 한 단어로 정리하는데 짧게는 1개월, 길게는 6개월의 시간을 두고 고민의 고민을 한다. 정체성을 찾는 방법으로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1.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아예 새로운 형태의 포맷이 나온다 해도 지금 이 브랜드에서 절대 버릴 수 없는 한 가지가 무엇인가?
2. 내가 만들려는 브랜드와 매장이 다른 브랜드나 회사에서 카피할 수 없는 고유의 정신이 무엇인지?
3. 팔려는 메뉴가 브랜드 정체성과 얼라인(aline)되어 있는가?
4. 내가 만드는 회사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5. 그리고 마지막으로 '왜?' 를 끊임없이 한다.
왜 우리 회사여야 하는가? 왜 옆집이 아니라 우리 가게를 오는가? 손님들은 우리 가게에 왜 오는가? 맛 말고 무엇이 손님들이 우리를 기억하게 만드는가?

그렇게 수도 없이 질문하고 고민하면서 우리 회사만이 가질 수 있는 단 하나의 정확한 정체성을 찾으면 그 다음은 그것에 맞는 '꼭 지키고 싶은' 리스트가 생긴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민하게 되고, 그 위에 현지화를 입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라도 뒤바뀌거나 현지화가 먼저 되었을 때 작은 문제라고 하면 한국에서 온 인터내셔널 브랜드가 아닌 로컬 브랜드로 인식돼서 다른 나라 진출이나 전국적으로 브랜드를 키우는데 한계가 생길 수도 있고, 더 큰 문제는 그나라 로컬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밀린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_

만약 처음 오픈한 매장이 잘 된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그 주위에 작은 카피 매장부터 (아주 대놓고 베끼거나 세컨드 매장 같은 느낌) 자본력과 현지화를 잘 아는 로컬 회사들까지 그 시장에 뛰어들어 한 마디로 아직 매장이 여러 개 생기기도 전에 비슷한 메뉴들을 가지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특히 그 나라 로컬회사들이 비슷한 콘셉트의 매장을 오픈하기 시작하면 정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되어 버린다. 로컬회사들은 이미 그 나라의 문화나 소비 형태를 완벽하게 알고있으며, 법적 인면 자본력 미디어 인맥면에서 상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먼저 시작한 메뉴라 하더라도 1년만 지나면 내가 졸지에 카피캣(copycat)이 돼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그런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서 경쟁이 되려면 아무리 카피 브랜드들이 나와도 고객의 기억에서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나의 브랜드 '정체성'이 필요한 것이다.

당신의 회사는 한마디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요?

…(다음 편에 계속)

※ 본 칼럼은 아띠에터의 기고로 이뤄져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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