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물리의 김민정 작 한태숙 연출의 하나코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하나코>는 일제 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간 자매의 이야기다.

김민정(1974~)은 충남 당진 출생으로.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전문사 극작을 전공했다. 작품으로는 <가족의 왈츠> <십년 후> <나, 여기 있어> <해무> <길삼봉뎐> <그 길에서 너를 만나다> <미리내> <너의 왼손>. 각색은 국립극단 <오이디푸스>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 <인형의 집(家)>.

수상경력은 '04 제7회 국립극장 신작희곡 페스티벌 당선 <가족 왈츠> '05 제5회 작은 신화 우리연극 만들기 희곡 공모 당선 <십년 후> '07 한국연극 베스트 7선정 <해무>08 서울 아트마켓 선정<해무> 09창작팩토리 우수작 선정 <해무> 12 김민정 희곡집 우수문학도서 선정 14 창작산실 대본공모 당선 등 앞날이 발전적으로 예측되는 여성극작가다.

한태숙은 <하나코> <단테의 신곡> <레이디 맥베스> <안티고네> <장화홍련> <아워 타운> <오이디푸스> <있었다> <유리동물원> <서안화차> <꼽추 리차드 3세> <배장화 배홍련> <우당탕탕 할머니의 방> <고양이 늪> <광해유감> <네바다로 간다> <짐> <도살장의 시간> <맹목>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그 외의 다수 작품을 연출하고, 동아연극상, 김상열 연극상, 영희 연극상, 이해랑 연극상 등을 수상한 작가 겸 연출가로 극단 물리의 대표다.

<하나코>는 일제치하 캄보디아로 끌려간 군 위안부 피해자의 실화를 극으로 만들었다. 실화를 소개하면 1997년 여름 언론에서는 '훈 할머니'라는 군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캄보디아에서 약재상을 하는 황기연 씨가 1996년 약초를 구입하기 위하여 캄보디아 프놈펜의 작은 마을인 스쿤에 들렸다가 '훈 할머니'의 손녀로부터 할머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1년 동안 수차례 훈 할머니를 만나면서 2차 대전 말기에 일본에 의해 위안부로 낯선 땅 캄보디아로 끌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97년 6월 언론에 알렸다. 한국인임을 숨기고 살아온 캄보디아에서의 50여년 세월은 할머니에게서 한국말과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거의 모두 앗아갔다. 때문에 훈 할머니는 다른 군위안부 피해자보다 세간의 주목을 더 받았다.

처음 훈 할머니의 이야기가 연합통신에 띄워졌을 때 대부분의 신문은 크게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일보에서 바로 캄보디아로 기자를 파견하여 집중적인 취재를 시작하면서 훈 할머니의 이야기는 고향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잊어버린 한 군위안부 피해자의 고향과 가족 찾기에 집중되어 세간의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당시 훈 할머니가 자신의 한국이름과 부모의 이름마저 제대로 기억을 못했지만 고향은 진동이라고 분명하게 말했고, 황기연 씨는 마산시 진동이라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있던 상태였다. 훈 할머니 이야기가 알려진 후 마산시 진동면사무소에는 '훈 할머니 가족 찾기 대책본부'가 설치되었고, 곧이어 일제 때 행방불명된 누나가 '훈 할머니'인 것 같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언론에서는 가족을 찾았다고 보도했고 한국과 캄보디아를 연결하여 화상으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통화를 하였다.

그러나 훈 할머니는 그들이 가족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였고, 보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유전자 감식까지 하게 되었다. 결과는 가족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이즈음에 불교 조계종의 후원으로 나눔의 집 원장인 혜진 스님과 싱가포르에서 군위안부 생활을 했던 김복동 할머니 그리고 기자가 캄보디아로 가게 되었다. 3명이 캄보디아로 간 표면적인 목적은 그렇게 고향에 오고 싶어 하는 훈 할머니를 한국에 모시고 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캄보디아에 도착하자마자 그 목적은 일단 멀어지고 훈 할머니가 진짜 한국 사람이고 군위안부 경험을 했던 것이 맞느냐는 것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유는 캄보디아에 도착한 날 찾았다는 가족과 훈 할머니의 유전자 감식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발표가 나왔고, 이에 주변의 모든 분위기는 그동안의 가족 찾기가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해 씁쓸해 하는 상태였다.

그럴 때 1997년 8월 경남 합천에 사는 이순이씨가 훈 할머니가 바로 자신의 언니 같다는 연락을 해 왔고, 언론사에서는 미심적기는 했어도 두 분을 상봉을 마련하기로 하고, 인천 길 병원에서 두 분의 극적인 상봉이 이루어졌다. 두 분의 얼굴이 너무도 닮아 가족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유전자 감식의 과정까지 거쳐 가족임이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전 국민의 가슴에 전율이 일고 뜨거운 눈시울, 뭉클한 가슴과 함께 세간의 관심이 집중됨은 물론 일제치하의 군 위안부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향후 한 일 간의 중요 사안으로 부각되었고, 그럴 때마다 이미 유신정권시절에 청구권문제와 함께 해결된 일이라는 일본정부의 일관된 주장이 되풀이되기를 20년 가까이 계속되자, 유엔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비난여론이 비등하고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협상,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관여라는 표현으로 책임을 인정했으며, 아베 총리도 총리대신으로써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와 반성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일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함으로써 이 문제는 극적인 타결을 보게 되었다.

무대는 배경에 캄보디아의 위안부의 숙소로 설정된 장치 이외에는 사각의 입체 조형물을 이동 배치해 의자로 사용한다. 영상을 투사해 역사적인 장면이 소개되고, 카메라, 단검, 피스톨이 소도구로 사용되고, 조명강약으로 장면변화가 연출된다.

연극은 여성학 교수 1인이 방송사 직원과 함께 캄보디아에 현재 거주하고 있는 군 위안부였다는 할머니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 사연을 제공한 또 한명의 군 위안부 할머니, 바로 현재 캄보디아 거주 위안부 노인과 자매지간이며 함께 캄보디아로 끌려가 위안부 노릇을 했다는 노인과 함께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을 방문한다. 드디어 자매의 상봉이 이루어지지만, 자매라고 보기에는 외모라든가 모국어를 기억하지 못하는 캄보디아 거주 여인의 모습에서 좀처럼 공통점을 찾기 힘들어 방송사 부장은 상여금을 노려 위안부였다는 행세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캄보디아 거주 노인의 기억이 차츰 되살아나기 시작하고, 간단한 모국어를 내뱉기도 하면서 드디어 위안부시절의 과거가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쓰라린 과거를 비록 자신의 언니가 왔다고 하드라도 밝히거나 재현해 내고 싶지 않음을 누가 알랴?

캄보디아 거주 노인은 귀국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의 손녀딸의 손을 굳게 잡고 과거를 영원히 잊는 듯 숨긴 채 그저 거주지로 되돌아간다. 대단원에서 홀로 의자에 앉아 역사적 비극을 되씹듯 뇌까리는 한 위안부 노인의 방백장면과 객석의 숙연한 분위기가 한동안 계속되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예수정과 전국향이 위안부 노인 역으로 출연해 관객의 가슴에 서글픈 그림자를 드려놓는다. 우미화가 여교수로 출연해 절제된 내면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신안진과 신현종, 김귀선이 출연해 나름대로의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주목을 받는다. 박종태, 이지혜 역시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강다윤, 류용수, 권겸민 등 출연자 성격창출과 호연도 기억에 남는다. 민경은, 박수진의 호연도 갈채를 받는다.

무대디자인 이태섭, 조명디자인 김창기, 의상디자인 김우성 전요나, 분장디자인 백지영, 음향디자인 지미세르, 영상디자인 김나래, 협력무대디자인 박은혜, 무대어시스턴트 이윤미, 조명크루 정유석 홍주희 김병희, 사진 장제훈, 캘리그라피 장사익, 캄보디아어 번역 지도 초웁찬피런, 일본어 번역지도 손지형, 조연출 강소희 근종천 류예슬 기획 홍보 림에이멤시, 총괄 서정림, 제작PD 정영희, 기획 장성은, 홍보 박지영, 홍보물디자인 디자인소통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제대로 드러나, 극단 물리의 김민정 작, 한태숙 연출의 <하나코>를 한편의 문제작이자 기억에 길이 남을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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