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와의 조우', 그리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앞에서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작년에 관람한 영화 중, 지금도 여러 가지 화제로 떠들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영화다. 영화의 묵직한 무게감에 압도되어 끝까지 끌려다녔고, 영화관을 나오고서도 그 충격을 잊지 못해, 기억하던 모든 이미지를 토해내듯 글을 썼던 기억이 있다.
 
"압도적인 긴장감". 그렇게 드니 빌뇌브 감독은 지독히 주관적인 나의 영화 사전에 굵직한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1년 뒤, 그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Arrival'(미국), '메시지'(일본), '컨택트'(한국). 그 어떤 제목으로 번역해도 어울리는, 번역에 관한 신비한 영화로 말이다.
 
   
 
 
'미지와의 조우', 그리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사회를 통해 미리 관람했던 이들이 많이 언급했던 건, ('캥거루'도 있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미지와의 조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 등의 영화였다. 이를 통해 추측할 수 있듯, '컨택트'는 SF 영화고, 외계인과의 만남을 다뤘다. 직접 관람을 해보니, '컨택트'는 소재 면에서 '미지와의 조우'를 분명 연상하게 하고, 영화가 준비한 주제를 집약하는 장면의 연출에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떠올리게 했다.
 
이 두 영화, 이미 고전 명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 앞에 선다는 건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들 앞에서 전혀 기죽지 않아도 될 만큼 힘 있고, 매력적인 영화를 내놓았다. '시카리오'에서 느낀 압도적인 느낌은 소재와 장르가 바뀜에도 여전히 유효했다. 그는 결코 서두르는 법 없이 관객을 영화의 무드에 물들이고, 질식하게 한다. 그가 세팅한 조명, 미장센, 그리고 음악은 영화에 눈을 못 떼게 하며, '컨택트'가 감춰둔 비밀은 관객의 주의를 이탈하지 못하게 붙잡아둔다.
 
   
 
 
문과생이 해내다
'컨택트'를 두고 일부 관객은 "SF 영화에서 드디어 문과생이 해냈다!"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부단히 글을 써온 입장에선 이런 찬사가 왠지 반가웠다) 근래 우주를 무대로 한 명작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마션' 등은 모두 과학, 기술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졌고, 동시에 과학적 이론의 탄탄함을 통해 영화의 리얼리티와 재미를 추구했다. 이들 영화에서 비과학자, 그러니까 문과생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 보였다. 문과생이라 죄송하고, 생존할 능력이 없어 보여 자괴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컨택트'의 주인공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언어학자이며, 그녀는 문자를 해독하고 번역하는데 특화된 인물이다. 타 영화들처럼 미지의 존재와 그들의 세계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SF 영화들과 다르다. 과학이 우주의 물리 법칙을 해석하고, 인류의 가능성을 보여주려 했다면, 루이스는 미지의 존재와 '대화'하는 데 몰두한다.
 
우주를 정복하고 수학적 도식으로 이해하던 관점에서 벗어나, 소통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컨택트'의 시선은 참신하고 진보적이다. 언어 번역이 따분하지 않겠냐는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된다. 루이스의 연구 과정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언어의 습득이 정교한 과정으로 이뤄졌고, 나름의 공식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컨택트'는 언어의 공식에 도전하는 퍼즐 맞추기의 과정이고, 드니 빌뇌브 감독은 화려한 액션 없이도 이 과정을 스릴넘치게 표현했다.
 
   
 
 
모든 요소가 주제로 수렴하는 영화
영화의 새로움, 강렬함과 함께 개인적으로 '컨택트'를 뛰어나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 영화의 모든 요소가 주제로 수렴하고, 그 지점에서 공명한다는 데 있다. '컨택트'의 이미지, 카메라 워킹, 대사, 음악, 이야기의 전개 등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메시지와 세계관을 돋보이게 한다. 영화를 관람할 땐, 묵직한 무드에 눌려 신경 못쓰던 것들이 영화관 밖에서 영화에 관해 곱씹을수록 눈에 띄고, 결국 '컨택트'라는 큰 그림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영화를 이루는 모든 요소 각각이 드니 빌뇌브의 결과물을 초월하지 않는다는 점도 놀랍다. 단적인 예로 '요한 요한슨'이 맡은 '컨택트'의 음악은 영화를 극도의 긴장 상태로 밀어붙이지만, 저 혼자 관객을 흔들지 않는다. 부주의한 관람 탓일 수 있으나, 관람 후에 '컨택트'의 음악은 어떤 멜로디로 기억되는 대신, 강렬한 느낌을 줬었다는 느낌으로 기억된다.
 
음악 감독으로서 거대한 업적을 쌓은 '한스 짐머'의 음악이 영화를 초월해 각인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런 점들 때문일까. 올 10월 개봉 예정인 드니 빌뇌브의 차기작이자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벌써 기대된다. 올해는 드니 빌뇌브의 영화로 시작하고, 끝나고, 기억되는 해가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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