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갈매기', '하녀들' 리뷰

   
(왼쪽부터) 연극 '갈매기' 중 트레블레프 역을 맡은 윤정섭 배우, 연극 '하녀들' 중 끌레르 역을 맡은 서혜주 배우, 쏠랑쥬 역을 맡은 김아라나 배우

[문화뉴스] 연희단거리패의 미래가 매우 밝다는 것을 보여주는 두 편의 연극이 있다.

게릴라극장의 '갈매기'와 30스튜디오의 '하녀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매년 초, 연희단거리패는 공공극장과 다를 바 없이 한 해의 공연 라인업을 발표하곤 한다. 그러나 급하게 결정된 게릴라극장의 1년 연장운영에도, 흔들리거나 궁색함 없이 두 편의 웰메이드 연극은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꾸준히 탄탄한 레퍼토리들을 구축하고 있던 탓이다.

젊은 배우들의 호기는 실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김소희, 윤정섭 등 선배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는 그 실력을 성장 가능한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연극 '갈매기'

특히 '갈매기'는 연희단거리패 특유의 페이소스를 느끼기에 부족함 없는 작품이었다. 개개의 인물들을 갈매기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캐릭터 구축은 동시대 관객들에게도 설득력이 높은 모습으로 묘사됐다. 연희단거리패 대표이자 배우로 익히 알려진 김소희가 본 공연의 연출을 맡았다. 그는 '고전은 고상하고 고루하다'는 기존의 인식을 전복시키고 적극적인 해석을 과감히 시도한다.

연희단거리패의 '갈매기'는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나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낸다. 각 인물들의 현실과 이상 세계는 시선, 제스처, 음성 등을 통해 극명하게 표현된다. 더구나 가장 흥미로운 것은 무대 동선. 그중 아르까디나(황혜림)와 트리고린(이원희)이 고향을 떠나는 순간, 서로가 서로를 향해 무대를 사선으로 가로질러 뛰어가는 장면은, 그들의 관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어긋난 이들의 관계는,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과 애타게 바라는 이상 세계 간의 괴리에 기인한다.

 

   
연극 '하녀들'

한편, '하녀들'은 연희단거리패의 여배우진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자랑하는 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김소희 배우와 故 이윤주 배우의 '하녀들'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 2009년 황혜림, 배보람, 2017년 김아라나, 서혜주 배우로 이어졌다. 알다시피, 무대에서 여배우들이 주체적인 캐릭터로 존재하거나, 철학적인 대사를 내뱉을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다.

연극은 여배우들에게 그 어떤 아름다움도, 애처롭거나 감미로운 감성도 요구하지 않는다. 기존 극에서 여배우가 존재하던 관습과 많이 벗어나 있는 이 작품은 여배우들의 '도전'의 작품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젊은 여배우들의 옹색한 연기력을 낱낱이 드러낼 극이 될 수도 있는 어려운 극임에도, 김아라나, 서혜주 이 젊은 두 배우는 김소희 배우의 응원과 지도 아래서 눈에 띠는 부족함 없이 역할을 소화해낸다.

김소희 배우는 "하녀들은 존재론적이고 관념적인 대사들을 폭포처럼 쏟아낸다. 그런 언어들을 배우가 뱉어내려면 많은 걸 생각해야 한다"며 "배우들은 그 숙제를 통해 성장한다"고 전했다. 더불어 "무대 뒤에서 김아라나 배우와 서혜주 배우의 연기를 들으며, 이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놀이로서, 삶으로서, 삶을 지탱하는 동력으로서 '연극'을 해왔던 쏠랑쥬와 끌레르. 비천한 입에서 고상한 언어들이 나열될 때, 이들의 존재 의미는 하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각자 삶의 사정과 사연을 가진 한 '개인'이 된다. 극에서 파생되는 기괴한 부조화들은 이미 깊이 박혀 고정되어 버린, 어쩌면 허구일지도 모르는 우리의 기존 관념을 헤집어놓는다.

연극은 약 7년 간 하인으로 일하던 한 자매가 주인을 살해하고 그 집에서 동성애를 즐기다 발각됐다는 프랑스의 '빠뺑자매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불편한 사건을 불편하게 그려내며 연극은 '내 안의 나'를 발견하게 만든다. 상상한다는 사실조차 부끄럽고 두려웠던 내 속의 은밀한 허구. 하녀들이 연극을 통해 묘사하는 포악한 마담은, 우리 내면이 실재를 부정하고 있는 여러 괴물 중 하나다. 장 주네는 말한다. 쏠랑쥬와 끌레르는 우리가 은밀한 내면 어딘가에 꼭꼭 숨겨둔 또 다른 '나'라고 말이다.

두 편의 연극은 1월 공연을 큰 관심 속에서 끝마치고 앵콜 공연을 마련했다. '하녀들'의 앵콜 공연은 오는 19일까지 30스튜디오서, '갈매기'의 앵콜 공연은 9일부터 26일까지 게릴라극장서 진행된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연희단거리패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