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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친척집에서 사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자기로 했던 날, 사촌오빠와 논쟁을 벌이느라 거의 밤을 샜던 적이 있었다. 주제는 '남녀가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없는가'였고, 나는 될 수 있다고 말하였지만 그는 절대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논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의 주장은 이 세상 모든 케이스를 살펴야만 검증 가능한 것인 반면, 나의 주장은 단 한 쌍이라도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입증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나의 '남자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샘플을 꺼내어 주장했지만 그는 단칼에 잘라냈으니. "너는 친구인지 몰라도 상대방의 마음은 아닐 것"이라고.

   
 

영화 '오늘의 연애'의 준수(이승기)와 현우(문채원)는 18년간 가장 가까이서 서로 지켜보고 기대온 친구 사이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우가 준수에게서 일방적으로 보살핌과 애정을 받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 그녀의 곁을 '친구의 모습으로라도' 지켜온 준수가 그녀와 연인이라는 새로운 관계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를 보며 누군가는 오랜 친구에서 연인으로의 발전을 꿈꾸며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일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런 관계는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그보다도 당사자들이 지금의 우정과 친구관계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남녀 친구관계에 대해 잠정적인 연인으로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지나치게 단정적이라는 이야기이다.

혹 연인으로 발전한 경우라 하더라도, 그들이 함께 한 시간이 결국 서로 인연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이지 않을까. 영화 속 준수와 현우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18년은 친구 관계였다. 다만, 애정의 크기가 한쪽으로 많이 기운, 좋아하고 사랑하기에 한쪽이 상대의 모든 것을 감당해 내었던 친구 관계였기에, 이 관계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틈이 있었던 것이다.

남녀 간의 친구 관계란 어쩌면 상대에 대한 '이성으로서의 매력'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특히 여성보다도 남성의 경우, 이성으로 매력적이지 않은 상대와 굳이 단둘이 만나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 주변의 남성 지인들이 하는 공통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마음이 결국 드러나, 두 사람이 연인이 되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관계의 양상은 나뉜다. '연인밖에 될 수 없는 관계'라면 이 둘은 더 이상 볼 일이 없게 되겠지만, 그런 가능성을 접은 채 새로운 형태로의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들은 '남자 사람과 여자 사람 간의 친구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순수한 친구 관계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위해 중요한 것은 '상대의 연애를 인정하고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연인이 생겼다는 변화를 인정해 조금 거리를 두어주는 배려와는 다르게, 상대에게 생긴 연인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거나, 자신과 비교해 질투하는 감정이 들거나, 그가 연인과의 관계에서 겪는 에피소드들을 '친구로서' 객관적으로 듣고 조언해줄 수 없다면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이 친구라는 경계를 넘어선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살펴볼 때, 준수는 현우의 연애 대상과의 관계를 신경 쓰며 일희일비하지만, 현우는 준수에 대해 꽤나 무덤덤하다.

이들의 결말을 이해하는 데 있어, 나는 현우가 여태껏 스스로도 몰랐지만 실은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보다는, 그녀의 '준수에 대한 감정' 자체가 변화되었다는 것이 더 적절한 설명일 거라 생각한다. 유부남과의 힘든 사랑으로 '열정만이 사랑이 아니다'는 것을 배운 그녀이기에, 또 대중과 남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었지만 스캔들이 터지며 모두에게 비난받는 처지에 놓이는 과정 속에서 '그가 나에게 주었던 마음이 얼마나 깊고 가치있는 것이었는가'를 깨달은 그녀였기에, 이런 계기가 되어 준 상황들을 겪어내며 18년 지기 친구였던 준수를 달리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겪고 서로 마음을 확인해 연인이라는 새로운 관계로 접어든 두 사람에게는 그동안의 시간 또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이 재해석될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영화 속 현우는 준수에게 말한다. 너는 나쁘지 않고, 충분히 좋은 점들이 있지만, '결정적으로 흥분이 되지 않는다'고. 다소 자극적인 느낌이어서인지 예고편부터 등장하는 현우의 이 대사는 '인간으로서의 매력과 이성으로서의 매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 둘은 유사한 부분이 크나 같지는 않다. 인간으로서의 매력이 없는 사람에게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느끼기는 쉽지 않고, 만약 그렇다 한들 그런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어렵고 또한 불행한 일일 수 있다. 관계가 오래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갈수록 남성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상대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본연의 모습을 보고 알아가는 것이,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연애만으로 관계를 마무리 짓고 싶은 것이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짜릿하게 흥분시키는 매력을 지녔지만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 그리고 나와 맞는 사람'이 아닌 그와의 결혼을 생각한다면 한 번은 만류하고 싶다. 그가 내 가족이 되고, 내 아이의 부모로서 나와 함께 나아가는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조금은 답이 명확해질 문제이다. '인간으로서의 매력'이 '이성으로서의 매력'의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이 되는 편이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복잡한 생각들을 진행시켜 보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유쾌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와 애인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친구 아닌 친구'를 곁에 둔 이라면 함께 영화를 보러 가 서로 마음은 어떤지 들여다보는 것도 도움되겠다. 하지만 '인연은 가까이 있는 법'이라며 애먼 친구를 연애 상대로 굳이 재조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대부분의 픽션이 그러하듯, 이건 영화일 뿐 우리의 현실에 자주 발생하는 일은 아닐 확률이 높으니까. #문화뉴스 아띠에터 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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