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1963년 11월 22일,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와 영부인 제클린 케네디는 자신들의 지지율이 낮은 댈러스를 방문했다. 그들은 준비된 차를 타고 댈러스 시내인 플라자 인근으로 향했다. 갑자기 세 번의 총성이 울리면서 미국 최대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가 일어났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직후, 34살의 재클린 케네디(이하 재키)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케네디 부부와 동행했던 부통령 린든 B. 존슨이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였고, 그 옆에서 듣고 있던 재키는 취임선서가 끝나는 순간부터 '퍼스트레이디'의 신분도 희미해져 갔다. 아직 그녀의 분홍색 투피스에는, 그녀의 남편이 흘린 붉은 피가 선명하게 남아있는데도.

미국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슬픔에 잠겨있었지만, 재키는 남편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을 수 없었다. 백악관 참모들은 재키에게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면 좋을지 압박하고 있었다. 게다가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자신들의 임기도 짧고, 이룬 업적도 적었기에 미국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도 느꼈다.

밤잠까지 설쳐가며 고민하던 재키는, 다시 한 번 퍼스트레이디의 면모를 보였다. 자신의 남편인 존 F. 케네디를 미국의 훌륭한 대통령인 링컨처럼 만들려는 것. 그녀는 앞장서서 장례식 절차를 진두지휘했고, 기존 장례 관례를 깨는 동시에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백악관의 '카멜롯' 여왕은 남편의 장례식을 통해 신화를 완성했다. 그렇게 케네디 부부는 미국 자유주의의 상징이자 오늘날까지 가장 인기 많은 대통령과 영부인으로 자리 잡게 된다.

사실 전반적인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과 똑같기에, 영화를 보지 않고 케네디 대통령이나 재클린 케네디의 일대기를 찾아봐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키'가 주목받는 이유는 '20세기의 영원한 퍼스트레이디'로 평가받는 재클린 케네디의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비춘 최초의 일대기 영화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태껏 알지 못했던 재클린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던 건 나탈리 포트만의 공이 가장 컸다.

전작인 '블랙 스완'을 통해 압박감과 불안한 심리, 광기를 실감 나게 선보이면서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나탈리 포트만은 '재키'에서 재클린 케네디의 양면성(퍼스트레이디와 여자 재키)을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특히 '퍼스트레이디'에 가려져 있는 나약하고 연약한 '여자 재키'의 모습을 연기하는 나탈리 포트만이 비칠 때마다 '당시 재클린도 저러한 감정이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가슴 한 곳이 짠했다. 또한 장례식 이후, 기자와 1대1 인터뷰에서도 퍼스트레이디와 일반적인 재키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면서 언론을 신경쓰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부담스러운 시대의 아이콘을 자신만의 색깔로 소화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니, 파블로 라라인 감독이 '재키'역에 오직 그녀만을 고집한 이유가 다 있었던 셈.

퍼스트레이디에서 물러난 재키는 이후 여성으로서 삶을 택했고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그녀를 퍼스트레이디로 남겨두길 원했고, 재키가 사망한 후 케네디 대통령이 잠든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어주면서 카멜롯 신화를 계승했다. 카멜롯 신화의 구절처럼, 두 사람은 빛나는 순간이 짧았음에도 영원히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잊혀지지 않고 있다. 여자로서 재클린 케네디는 잊혀진 채로.

   
 

문화뉴스 석재현 인턴기자 syrano@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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