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설계한 영화…몇 겹의 이야기가 주는 혼란, 그리고 재미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녹터널 애니멀스'의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쯤, 익숙한 글자를 볼 수 있었다. 프라X, 구X, X스로이스, 카르티X 등 고급 브랜드 이름들이다. 영화가 사용하거나 협찬을 받은 목록일 것이다.
 
유독, 에이미 아담스가 있던 공간이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느껴졌던 건, 연출의 힘이 크겠지만, 언급된 명품 덕도 본 게 아니었을까.
 
디자이너이자 감독인 톰 포드
'녹터널 애니멀스'에 패션 및 명품에 관심 있는 이들이 반가워할 브랜드가 다수 등장할 수 있었던 건, 톰 포드 감독의 독특한 경력 덕분이다. 그에 대해 검색한 결과, 연출한 작품은 '싱글맨'과 '녹터널 애니멀스' 두 편으로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조금 더 조사하니, 재미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일단, 수상 내역이 인상적이다. 톰 포드 감독은 '녹터널 애니멀스'로 제73회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고, 이는 그가 주요 시상식에서 받은 '유일한' 상이다.
 
   
 
 
그런데 이 상 외에도, 톰 포드는 아주 큰 상을 여러 번 수상한 적이 있다. 영화 분야는 아니지만,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 상을, 무려 여섯 번이나 받았다. (그 외에도 디자이너 분야에서 다수의 상을 받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구찌'의 핵심 디자이너로 활약했다는 정보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정보만으로 톰 포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정보를 통해 그의 강점을 추측해볼 수는 있다.
 
'녹터널 애니멀스'의 색감은 차가우면서 강렬하고, 화면 속 소도구들은 세련되면서 고풍스럽다. 감독이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정서는 영상에 드러나는 차가운 톤만으로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그는 (수많은 명품의 이름이 등장했듯) 화면 및 소품의 디자인에 공들였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다. 덕분에 그가 만들어낸 영상은 매혹적이고, 또 치명적이었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톰 포드라는 디자이너, 비주얼리스트의 장기가 다량 발휘된 영상을 '감상'하는 재미가 널려있는 영화다. 
 
   
 
 
영화엔 크게 두 개의 무대가 색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다. 현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수잔의 집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느낌보다는, 모던한 디자인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처럼 보인다. 더불어, 톰 포드가 선택하고 배치한 미술품 역시 예사롭지 않은 무드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그리고 소설 속 이야기의 무대 텍사스는 광활한 사막과 인간을 압도하는 하늘 등 거대한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톰 포드가 설계한 수잔의 집과는 전혀 다른 야생적인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소설의 주인공 토니가 처한 상황 및 감정과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복합적 플롯의 난해함
'녹터널 애니멀스'는 하고자 하는 메시지(포스터를 인용하자면 '지키지 못한 사랑에는 대가가 따른다')가 톰 포드의 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느껴지기는 하지만, 쉽게 다가오는 편은 아니다. 영화는 수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애드워드(제이크 질렌할)의 소설이 몇 겹으로 겹쳐져있다. 이중·삼중의 서사를 가진 이야기이고, 그래서 복합적이고, 난해하다.
 
한 번의 관람으로는, 그리고 이마저도 집중해서 볼 수 없다면, '녹터널 애니멀스'는 매혹적인 이미지만 빛나는 빈 깡통이 될 수도 있다. 원작(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Tony and Susan'이다)의 스토리는 밀려나고, 연출자의 스타일만 남은 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치명적인 분위기에 반하여, 영화를 뜯어보고자 기꺼이 노력할 자세가 되어있다면, '녹터널 애니멀스'는 수수께끼를 풀 듯 하나씩 음미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현실의 '수잔'과 소설의 '토니'가 이끌어 나가는 이중 플롯에서, 둘은 어떤 관계인가. 즉, 소설 속 주인공 토니와 그 소설의 독자이자 어쩌면, 모티브일 수 있는 수잔은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가. 소설이 수잔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제3자인 스크린 밖의 우리(관객)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녹터널 애니멀스'는 몰입할 준비를 하고, 즐기려고 하는 관객에게 더 매력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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