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흔히 우리는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고 한다. [문화 人]에선 흔히 말하는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음에도 새로운 일을 향해 과감히 자신의 '집'을 포기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을 만나 지금의 '삶'에 관해 물어보고자 한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 대신 소셜미디어(이하 SNS) 작가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 정성열 작가를 만났다.
 
필명 '시선'으로도 유명한 정성열 작가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으며, 현재 그의 영역은 캘리그라피 뿐만 아니라 음악, 라디오 DJ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이 재밌어하던 일을 선택해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정성열 크리에이터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 ⓒ 정성열 작가 페이스북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ㄴ SNS 작가이다. 나는 캘리그라피, 음악 작사 등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글을 표현한다. 내 작업을 보고 많은 분이 '캘리그라피 작가'라고 했고, 어떤 분들은 너무 다양한 것을 해서 '잡가'라고도 부른다.
 
SNS 작가로 시작해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ㄴ 캘리그라피로 SNS에서 작업 활동을 하다가 기회를 얻어 '힐링 페스티벌'에서 캘리그라피 작가로 참여하여 작품전시를 했고, 언론사와 협업을 했다. 음악 활동도 하는데 가끔 작사와 버스킹을 한다. 또, '이우람의 트렌드픽업쇼'에서 라디오 패널 활동을 한 지 1년 되었고, 2017년 1월부터 마포 FM에서 '오색오감' 월요일 DJ로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많은 일을 하는데 비중을 두는 일은 어떤 일인가?
ㄴ 비중을 두는 것도 여러 갈래가 있다. 노력을 가장 많이 들이는 작업은 글귀도 직접 다 쓰는 캘리그라피이다. 정서적으로 재미있는 작업은 라디오 DJ가 크다. 패널이 아닌 DJ로서 진행하는 방송은 처음이라 심적으로 부담되었는데 막상 방송을 하니 재밌었다. '처음'이란 주제로 음악, 사연 등의 구성을 직접 다 준비한 뒤, 청취자들의 사연을 받고 음악을 틀어주며 소통하는 것이 즐거웠다. 방송이 끝난 뒤 감성이 올라 술을 마셨다. (웃음)
 
   
 
SNS 작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ㄴ 대학을 다닐 때 영문학을 전공했고, 군 휴학을 했을 때 말고는 휴학 없이 졸업했다. 졸업 후 바로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필기시험, 체력검증 등에 합격하고 마지막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 기회에 부모님께 다시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는 대신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2015년에 호텔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SK 인턴도 하며 SNS 작가 활동도 시작했었다. 나중에 인턴과 SNS 작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사람들과 소통하며 행복감을 주는 SNS 작가를 골랐다.
 
라디오 DJ는 어떻게 맡게 되었나?
ㄴ 모든 일이 연쇄적으로 연결이 되어 갔다. 처음 SNS 작가로 활동할 때 글을 표현하기 위해 캘리그라피를 쓰게 되었고 캘리그라피가 유명해져 라디오 패널로 출연했고 패널 활동하며 라디오 DJ 제의를 받아 시작하게 되었다.
 
   
▲ ⓒ 정성열 작가
시대상이 반영된 작업을 많이 하는데 위로와 소통을 위해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인가?
ㄴ 요즘 시대는 외로운 시대라고 생각한다. 소통할 때 위로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이 '외로운 날에는 안부를 묻는군요. 즐거운 날에는 안 부를 거면서.' 라고 쓴 캘리그라프 작업에 공감했다고 한다. 내 작업을 본 뒤 '저 사람도 나와 같구나'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상황을 말해준다. 위로라는 것이 좋은 말, 따뜻한 말을 해주는 것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얘기하고 공감받는 것이 위로가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화자고 독자는 청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작품을 보고 독자가 화자가 되어 말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SNS에서 만난 기억에 남는 인연이 있다면.
ㄴ 얼마 전에 한 작업이 있다. 중·고등학생쯤의 학생들이었는데 직접 촬영대본부터 촬영까지 영상작업을 하는 친구들이었다. 대사를 보내주면 내가 녹음을 해주는 내레이션 작업을 부탁했는데 어린 학생들의 열정이 기특하고 응원하고 싶어서 함께 작업했다. SNS 작가를 하다 보면 감사한 인연들이 많은데 올해 중순쯤 결혼할 예정인 여자친구도 사실 내 오랜 팬이었다. (웃음)
 
위기의 순간이나 후회되는 선택이 있었나?
ㄴ 일로 외부적인 위기의 순간은 없었다. 다만, 후회되는 선택은 있었다. 인스타로 처음 SNS 활동을 시작했고 매일 2~4개의 작업을 올렸다. 반응이 좋아 팔로워가 10,000명까지 올라갔었다. 근데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극성인 팬이 있었고, 적절한 대처를 하는 대신 인스타 계정을 지워버렸다. 계정과 함께 열정을, 팬들과의 소통의 기록이 사라져버린 것 같아 아쉽다.
 
   
▲ ⓒ 정성열 작가 페이스북
만약 그때로 되돌린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지.
ㄴ 그때 의연한 대처를 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때의 계정이 남아있었어도 그 정도의 열정을 유지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웃음) 그때는 시간도 많았으니까.

그런데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ㄴ 나는 많은 분의 사랑을 받았는데 소통을 내가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기가 생겼다. 왜 내가 이런 일에 좌지우지되며 영향을 받아야 하지 생각이 들었다. 그 뒤 죄송하다는 말을 했을 때 많은 분이 괜찮다, 고생했다며 응원을 많이 해주셨고 그 응원 덕분에 일어설 수 있었다.

올 한 해의 계획과 조금 먼 미래 2020년의 계획은?
ㄴ 2017년 상반기에는 캘리그라피와 글을 담은 작품집을 출판할 것이며 '오색오감' 라디오 DJ를 열심히 해볼 것이다. 3년 뒤에는 '정성열'의 이름을 건 라디오를 진행하고 싶고, 장편 웹툰의 스토리 작업도 하며 많은 분과 계속해서 소통하고 싶다.
 
문화뉴스 권내영 인턴기자 leon@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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