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띠에터 강해인의 2016년 영화 결산 ④ 다양성의 지표, 여성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2016년 결산의 마지막 이야기는 '여성 영화'다. 개별 영화별로 초점을 맞춰 논하기보다는 최근에 목격한 경향성을 보여주는, 일종의 감상문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왜 이렇게 이 주제에 민감한지 말하는 글이 될 예정이다. 개별 영화에 관한 깊은 이야기는 최근 작성한 '미씽'을 통해 볼 수 있으며, 더 이전으로 올라간다면 '차이나타운'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영화 '아가씨'
 
글을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를 정리해야겠다. 하나는 이 글에서 논하는 여성 영화의 범주다. 여성이 주인공이거나 여성 감독의 영화라고 다 '여성 영화'라 말하지 않았다. 대신, 여성이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좀 더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활약한 영화를 골랐다. 관습적 여성상을 탈피한 영화로 볼 수 있겠다. 첫 범주엔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 이언희 감독의 '미씽: 사라진 여자' 등이 있고, 두 번째 범주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김태곤 감독의 '굿바이 싱글' 등을 말할 수 있겠다.
 
다른 하나는 글을 쓰고 있는 사람에 관한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페미니즘에 관한 지식이 여전히 부족하며, 이해를 위해 노력하고 늘 관습적 시선을 경계하고 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의 다양한 방향성, 개념 아래 혼란을 느끼는 중이기에,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성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못한 소극적인 소시민이다. 소심한 사람으로 여성 영화에 대해 글을 토해내는 건 관객으로서의 사적인 이유이며, 이는 글의 마지막에 이야기할 것이다.
 
   
▲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펠리시티 존스는 '스타워즈' 영화 사상 처음으로 엔드크레딧의 이름을 올린 '여성 배우'가 됐다.
 
여성 영화의 장이 확장되기까지
2016년의 다양한 여성영화가 등장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먼저 외국에서 불어온 바람부터 봐야겠다. 할리우드에 여성 영화, 페미니즘적 비평이 활발했던 영화가 이전에도 없던 것은 아니지만, 유독 최근에 그 논의는 뜨거워졌다. '스파이' 멜리사 메카시가 독특한 스파이로 활약하며 여성의 영역을 확장했고, 젠더 스와프로 주목받았던 '고스트 버스터즈'도 있었다. 엄청난 영화 팬을 가진 '스타워즈' 역시, 에피소드7에서 여성 주인공 레이(데이지 리들리)를 앞세우며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보였다. 이런 경향은 최근 개봉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진 어소(펠리시티 존스)의 활약으로 '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영화 중 가장 빛났던 영화는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 맥스'였는데, 샤를리즈 테론은 정말 강인한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굵은 목소리를 가진 강렬한 성격파 배우 톰 하디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활약은 뛰어났다. 그리고 조지 밀러 감독은 페미니즘적 조언을 구해가며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을 정도로, 이 영화에서 여성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 여성의 권리를 말하는 배우도 있다. 집요정들의 해방에 앞장섰던 헤르미온느처럼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엠마 왓슨은 UN 양성평등 홍보대사로 활약하며, 할리우드 스타로서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꾸준히 애썼다. 그녀는 영화 선택 시에도 자신의 캐릭터가 표현되는 방식이 중요함을 자주 말해왔다.
 
   
▲ '패신저스'의 홍보를 위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제니퍼 로렌스. ⓒ 문화뉴스 DB
 
젊은 나이에 오스카상을 수상한 제니퍼 로렌스는 소니의 해킹 사태로 알려진 남녀 배우의 개런티 수준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의견을 말했고, 이러한 현실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했다. 현실의 모습처럼 그녀는 작품에서도 늘 강인하고, 능동적이며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줘 왔다. '헝거게임'으로 여성 영웅의 이상향을 완성,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고, '조이'에서 여성 CEO '조이'의 일대기에 출연하는 등 선택하는 작품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런 외국의 분위기와 함께 국내 영화계에서 여성 영화가 중요해질 몇몇 사건이 있었다. 그중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 및 위기에 관한 문제가 터져 나온 도화선이 되었다. 충격적 사건의 영향으로, 여태 외면화하지 못했던 다양한 일들이 곪아 터져 세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 문제는 '여혐'에 관한 논의로 더 확장되기도 했다.
 
여성 영화의 장을 넓힌 한 해
멀티플렉스의 영화계 점유 이후, 국내엔 돈 되는 영화에 관대했고, 돈이 안 되는 영화는 제작, 혹은 배급이 어려웠다. 이런 돈 되는 영화엔 공식(감동, 신파, 코미디)이 있었고, 주된 장르가 있었으며, 그 장르의 중심은 대부분 남성 캐릭터의 몫이었다. 국내 천만 영화 중 여성의 비중이 높던 영화를 찾아보면 현실을 더 명확히 인지할 수 있다. 총 14편의 천만 영화 중 여성 비중 있던 영화로 말할 수 있는 건, 최동훈 감독의 '암살'과 '도둑들' 정도다. 비율로 보면 14%다.
 
그리고 이 시대의 인지도 높은 여배우들이 상당수 90~2000년대 멜로 영화의 덕을 본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점을 굳이 언급하는 건, 그 당시 한국 주류 장르는 멜로였고, 이는 여성이 (적어도) 활약할 여지가 있던 장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인기를 얻은 배우가 여전히 주연이라는 건, 그녀들의 연기도 한몫을 했겠지만, 새로운 여성 배우를 만날 장이 많이 부족했음을 뜻하기도 한다. TV 드라마와 비교하면, 유독 한국 영화엔 여성 배우가 활약할 공간이 적었다.
 
   
▲ 영화 '굿바이 싱글'
 
이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 2016년엔 여성을 중심에 둔, 여성에 관한 영화가 많이 있었다. '굿바이 싱글'은 40대 중반 여성과 10대 미혼모를 중심에 두며, 독특하고 흥미로운 갈등 양상을 보여줬다. 세상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두 여성은 서로 의지하고, 기대면서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했고, 연대를 통해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제안했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감독 본인이 직접 말했듯, 페미니즘 논의가 활발했던 시기의 덕을 본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는 시대적 억압, 그리고 남성의 권위 아래에 있던 두 여성 히데코(김민희)와 숙희(김태리)가 등장한다. 두 여성은 주인과 하녀라는 권력관계에서 평등한 관계로 발전하고, 서로 모의해 세상으로 탈주하는 혁명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여기에 더해 박찬욱 감독은 여성 간의 사랑을 카메라에 담아, 정말 '여성만의 이야기'를 빗어내기도 했다.
 
'해어화'와 '귀향'은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간을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시대극으로, 평소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여성의 '사적 역사'에 다가갈 기회를 줬다. 일제강점기라는, 남성 영웅의 서사시가 있을 법한 자리에 여성이 그 순간을 버텨낸 시간이 있었고, 이는 암울한 역사를 여성이 어떻게 통과했는지 말한다. ('덕혜옹주'는 이 영화들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오기에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를 꼽으라면,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와 이언희 감독의 '미씽: 사라진 여자를' 고르고 싶다. 이 두 영화는 한국 상업 영화계 내에서 남성의 자리라고 불리는 감독의 자리에 여성이 앉아, 남서의 장르라고 불렸던 스릴러에 도전했고, 저마다 성과를 보여줬다. 두 이야기 모두 아이 잃은 엄마가 아이의 행방을 쫓으며, 마주하게 되는 사건을 중심에 두고 있다. 그런데 두 엄마는 아이를 찾고 있지만, 관객이 목격하는 건 엄마라는 여성이 처한 사회적 위치와 많이 망가진 우리의 현실이었다.
 
   
▲ 영화 '비밀은 없다'
 
여성 영화를 기다리는 이기적 이유
언급했듯, 2016년엔 여성을 중심으로 한 영화가 많이 등장했고, 여성 감독의 활약도 돋보였다. 개인적으로 선택했던 '비밀은 없다'와 '미씽: 사라진 여자'는 모두 기이한 분위기와 힘을 보였는데, 이 기이함은 한국 영화에서 못 느껴본 생소한 것이었다. 추측하기에, 이는 남성 추격자의 자리에 여성이 배치되면서 오는 낯섦과 독특한 분위기가 많은 영향을 끼친 듯하다.
 
이처럼 남성 캐릭터가 점유하던 자리에 여성이 활약함으로써 느꼈던 건, 이제껏 한국 영화가 절반의 표현력을 오랜 시간 배제했었다는 아쉬움이었다. 같은 영화임에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 주인공이 되었을 때, 영화의 분위기와 결, 그리고 주제가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는 걸 '비밀은 없다', '미씽: 사라진 여자' 등을 통해 확인했고, 흥미로웠다.
 
개별 영화에 대한 분석이 아닌, 이런 개괄적인 글을 쓴 것은 여성 영화가 보여준 가능성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여성 영화라고 모두 우수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며, 무조건 지지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여태 볼 수 없었던 이야기를, 우리가 느낄 수 없던 분위기를, 더 새로운 영화를 폭넓게 관람하기 위해서, 여성 캐릭터에게 자리를 더 많이 열어둬야 하지 않을까 말하고 싶었다.
 
   
▲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언젠가부터 한국 영화계엔 비슷한 캐릭터, 비슷한 장르의 이야기가 양산되기 시작했고, 이는 관객으로서 싫증을 느끼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뻔한 이야기와 전개를 영화관에서 보는 것은 참기 힘든 일이다. 심지어 어떤 영화는, 그 영화를 관람하는 것보다, 그에 관한 댓글이 더 신선하고 재미있는 지점까지 왔다. 이렇게 투자되는 자본이 더 커질수록 더 유사한 이야기가 복제되는 이 최악의 양상을 깰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라 믿는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대단한 페미니스트도 여성운동가도 아니다. 그런데도 여성 영화를 기다리고 지지하는 것은 정말 이기적인 이유, '더 재미있는 영화를 만나고 싶다'는 관객으로서의 이기적 욕심 때문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으로서 영화가 더 많은 이야기를, 더 즐거운 이야기를, 더 새로운 것을 스크린에서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영화라는 다양성의 장이 확대되기를 바라며, 당분간(어쩌면 꽤 오래) 여성 영화를 기다릴 것이다. 2017년은 2016년보다 얼마나 새로운 영화적 순간을 목격할 수 있을까. 어떤 여성 캐릭터를 만날 수 있을까. 더 즐거운 만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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