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하는 소녀 민서, '제2의 박민서' 나오게 하는 것이 나의 꿈!

▲ 응봉 체육공원에서 만난 성동구 리틀야구단의 박민서 양. 리틀야구 여자 선수 최연소 홈런포, 100km에 이르는 속구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사진ⓒ김현희 기자

프로야구 시즌 누적 관중 숫자 800만 명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기록이 아니다. 그라운드안에서는 현재 프로야구를 이끌고 있는 선배들이 야구의 중흥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고, 그라운드 밖에서는 이에 고무된 기업들이 야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는 신생 구단 창단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도 했다. 신생 구단 창단이 이어지면서, 구단마다 뛸 수 있는 선수들의 절대 숫자를 확보해야 하는 수요가 증가했고, 이에 스포츠 유망주들이 야구에 눈을 돌린 것은 또 다른 성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잠깐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이러한 프로야구의 양적/질적인 팽창이 남성 선수들에 한정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국내에도 김라경(16)과 같은 여성 야구 선수들이 있고, 실제로 부산 기장에서는 여자 야구 월드컵이 열리기도 했다. 이는 그동안 '하는 야구'보다 '보는 야구'로서의 주체로 여성들을 봐왔던 기존의 시각을 많이 달리해 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야구(doing baseball)를 하는' 여성들의 존재는 그 숫자도 적고, 아직 야구계에서 마이너로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로 이러한 시각을 깨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여성 인재들도 있다. 성동구 리틀야구단에 소속된 박민서(13)도 그 중 한 명이다.

저는 '야구 선수 박민서' 입니다.
알아 봐 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난 8월, 서울 장충 리틀 야구장에서는 리틀야구의 역사를 새로 쓰는 진귀한 기록이 나온 바 있다. 성동 리틀야구단의 박민서가 좌측 담장을 훌쩍 넘기는 투런 홈런을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리틀야구 최초의 여성 선수 홈런 기록은 국가대표 경력도 있는 김라경(계룡고교 1학년)이 지난 2015년 3월에 기록한 바 있지만, 당시 그녀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아직 중학교에도 진학하지 않은 어린 선수가 큼지막한 타구를 날린 것은 그야말로 보기 드문 일이었다. '최연소 여성 선수 리틀리그 홈런 기록'을 갈아치운 셈이었다. 이에 공중파 방송을 통한 각종 언론사에서 그녀를 주목하는 것은 그래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투수로서도 속초에서 열린 리틀리그 대회에서 빠른 볼 최고 구속 100km를 기록하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야구 신동', '야구 천재'가 나왔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기도 했다. 필자가 고민하고, 걱정했던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한 순간의 관심에서 끝나 단순한 이슈 거리로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기특한 점은 박민서 본인 스스로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공중파로 방송 나가고 나서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간혹 유니폼 입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방송 나오지 않았냐고 먼저 물어 와 주시기도 하시죠. 학교에서도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방송 잘 봤다면서 잘 해 주기도 하고요. 이러한 점이 좋을 때도 있지만, 가끔은 부담이 되거나 부끄러울 때도 있어요(웃음)."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매스 미디어를 비롯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는 순기능 못지 않게 '역(易)기능' 또한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역기능은 어린 선수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일부 누리꾼들은 너무 모르고 있다.

"SNS나 기사에 달린 댓글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래도 보게 되거든요. 잘하라는 격려 메시지에는 '좋아요'가 별로 없고, 악플에는 '좋아요'가 많은 걸 보면, 저도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이게 돼요. 특히, 야구는 그만 두고, 나중에 결혼해서 남편이나 신경 쓰라는 글을 본 일이 있었는데, 애써 모른 척 하려고 해요."

그래서 참 안타깝다. '근거 없는 험담과 관심'은 웬만한 성인 남성들도 견디기 힘들어 하기 때문이다. 여자 야구 선수에 대해 '단순한 가십(gossip)거리'나 일시적인 이슈로만 치부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도 바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 긴 머리를 휘날리며 호쾌한 스윙을 선보이고 있는 박민서. 민서의 꿈은 40세에 선수 은퇴를 한 이후 '제2의 박민서'를 키워내는 일이다. 사진ⓒ김현희 기자

남자 선수들과의 한계는 인정. 꿈은 계속.
'제2의 박민서' 나오게끔 만들고 싶어.

리틀야구는 남성 선수들의 경우 중학교 1학년까지, 여성 선수들의 경우 중학교 3학년까지 할 수 있다. 국가대표 경력이 있는 김라경 역시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리틀야구를 했다. 바로 여기에서 민서의 꿈과 고민도 함께 시작된다. 올해 3월이면 민서도 중학교에 진학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소속되어 있는 성동구 리틀야구단과 가까운 행당중학교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 아무래도 남자 선수들과 신체 조건 자체가 달라져서 학교 야구부에는 들어갈 수가 없죠. 그래서 중학 3학년 때까지 리틀야구에서 야구를 해야 하는데, 그때면 힘도 좋아지고, 기량도 괜찮아질 것으로 보고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또 자만해지지 않을까 걱정이예요.

여자 야구선수라는, 누구나 쉽게 가기 어려운 길을 가다 보니 중학교 이후가 걱정이기도 해요. 또 중학교에 가면, 평일에는 야구를 못 할 수도 있다는 걱정도 들고요. 부모님, 특히 아버지께서 야구한다고 공부 게을리 하면 안 된다고 하셔서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거든요. 사실 공부를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야구하기 위해서 공부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생과 중학교 1학년생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차이가 크다. 30년 이상 성동 리틀야구단을 이끈 정경하 감독은 "공부에 있어서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의 차이는 별로 없을 지 모른다. 그러나 운동 선수라면 다르다. 확실히 남자애들이 중학교에 입학하면, 키고 커 지면서 힘도 좋아진다. 민서도 이러한 체격 조건의 차이를 인정하고, 또 극복해야 한다."라며,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면, 남자 선수들과 신체 조건 자체가 달라진다.'라는 민서의 이야기는 바로 이를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목표는 '중학 3학년 때에는 빠른 볼 최고 구속 120km까지 올리는 것'으로 잡은 지 오래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경하 감독도 "충분히 가능성 있다."라며 민서의 발전 가능성을 높게 보기도 했다.

이쯤 되면, 올해 중학생이 되는 민서가 한 가지 꿈을 꿀 수 있다. 바로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국가대표가 그러하다. 2014년, 2016년 월드시리즈 진출 당시 주축 선수들이 중학교 1학년이었음을 감안해 본다면, 같은 나이대의 민서 역시 대표팀에 뽑힐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일리노이주를 비롯한 미국의 일부 리틀리그 대표팀 선수들 중에는 여자 선수도 포함되어 있다. 민서 역시 이러한 꿈을 애써 숨기지는 않았다.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 꿈이긴 해요. 하지만, 힘은 제가 아무래도 남자 선수들에 비해서는 한 수 아래일 수밖에 없어요. 지난번 두산 베어스기에서 홈런을 쳤을 때도 사실 힘보다는 기술적으로 쳤기에 가능했거든요. 힘들겠지만, 도전은 해 보고 싶습니다. 사실 2016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는 한 경기만 빼고 다 봤어요. 텔레비전으로 못 볼 때에는 아버지께서 컴퓨터로 볼 수 있게 해 주셨고요. 기본기나 투구/타격 자세, 그리고 파이팅이나 열정은 우리나라가 미국/일본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해요. 제가 본 미국 리틀야구는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다보니, 폼도 제각각이잖아요. 제 눈에 그게 가장 먼저 보여요. 또, 일본이나 미국에 여자 야구 선수들이 많은 것을 보면, 라이벌 의식도 생기고요. 그래서 향후에는 여자 야구팀이 있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은데, 이왕이면 프로리그가 있는 일본으로 가고 싶어요."

태극 마크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민서의 꿈'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민서 이전에 관심을 받았던 '국가대표 여자 야구 선수' 김라경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다. 주위에서는 민서에 대해 '제2의 김라경'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이에 대해 민서는 감사해 하면서도 선배보다 나은 선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감추지 않았다.

"사실 제가 라경이 언니보다 홈런도 일찍 쳤고, 구속도 빨리 나왔어요. 그래서 향후에는 언니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되고 싶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리고 나중에 일본에 진출하게 되고, 거기에서 성공한 후 한국으로 돌아오면, '제2의 박민서'가 나올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싶습니다."

한창 이루고 싶은 것이 많을 초등학생의 꿈은 벌써 20년 이후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만큼, 끝까지 꿈을 쫓아가고 싶은 것이 민서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기에 더욱 더 '야구 본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포지션은 투수와 1루수를 겸업하고 있어요. 선발 투수로는 거의 등판한 일은 없는데, 그것은 상대팀이 여자라고 얕볼 수 있다는 생각이 커서 그렇거든요. 타순에서는 주로 7번을 치다가 홈런을 기록한 이후에는 5~6번을 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타석에 들어서면 주로 볼넷으로 나갔는데, 이게 제가 선구안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타격에 소극적이어서 그런건지 몰랐어요. 그런데, 홈런을 기록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붙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적극적으로 타격에 임하고 있습니다. 초구에 스트라이크 들어 올 확률이 높으니까, 그 점을 파악해서 아예 처음부터 방망이가 나가기도 하고요.

투수로 등판할 때에는 변화구는 안 던지고, 빠른 볼만 던지고 있어요. 리틀리그는 아무래도 학교 야구부와 달라서 부상 위험 때문에 변화구를 못 던지게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변화구 그립은 잡을 수 있어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조금씩 던져 볼 생각입니다."

역시 천상 야구 선수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민서의 '똑 부러지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다보니, 여기 저기에서 초청도 많이 들어오고, 대구구장에서는 시구를 한 일도 있었다. 그 곳에서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한 이승엽을 만났던 것은 민서의 또 다른 터닝 포인트였던 셈이다.

"존경하는 선배님으로는 이승엽 선배님이 계시고, 또 좋아하는 선수로는 여기 성동구 리틀야구단 출신인 NC 김종호 선배님, LG 류제국 선배님, KIA 박찬호 선배님 등이 계세요. 삼성 박해민 선배님은 발이 빠르고, 재치 있고, 또 수비를 상당히 안정되게 보셔서 그 점을 닮고 싶어서 좋아하게 됐어요. 사실 잘생겨서 좋아한 것은 아닌데, (다른) 기사에는 마치 그런 것처럼 쓰여졌더라고요(웃음). 고향이 대구라서 삼성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든 야구팀들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자 야구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LG도 제가 좋아하는 팀 중 하나죠. 특히, LG에서 저 포함해서 여자 야구 선수 6명을 이천으로 불러 특별한 교육을 시켜준다고 하는데, 그게 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이러한 민서의 최종 꿈은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과 본인의 일본 진출로 국내 여자 야구가 활성화되는 것이라고 한다. 일시적으로 여자 야구가 관심을 받는 것이 아닌, 본인의 뒤를 이은 여성 인재가 꾸준히 나오기 바란다는, 다소 프로다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초등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일본 야구 만화 '메이저'에 보면, 초반에 요코하마 리틀리그 멤버 중 여자 선수로 '카와세 료코'가 등장한다. 남자 선수 못지 않은 역동적인 투구 자세로 마운드에 선 그녀는 향후 대학 진학 이후에도 글러브를 놓지 않으며, 자신의 꿈을 놓지 않은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민서 본인도 그 장면을 봤다고 한다. 이러한 만화 속 이야기처럼, 민서 역시 대한민국 여자 야구의 1세대 멤버로 올바르게 성장했으면 한다. 지금도 서울 어딘가에서 연습 이후에나 경기 이후에나 야구 일지를 하루도 놓치지 않고 쓰고 있는 민서에게, 본인이 존경하는 이승엽 선수가 즐겨 했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고. 아울러 필자 역시 일시적인 관심이 아닌, '야구 선수'로서의 박민서의 모습과 성장 과정을 지켜 볼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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