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어주는 남자 #037 이언희 감독의 '미씽: 사라진 여자' ②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두 여성 캐릭터와 공효진이 위치한 세계
'미씽'의 결말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만듦새를 먼저 봐야한다. 추격자와 도망자의 쫓고 쫓기는 구도에서, '미씽'처럼 두 인물이 모두 여성 캐릭터로 설정되는 건 정말 드문 일이다. 더구나, 한국 상업 영화 내에선 더 보기 힘들었던, 희귀한 인물 배치다.
 
유독 국내 영화에선 장르적인 이야기일수록, 이야기의 동력은 남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런 관습과 달리 '미씽'에서 사건을 만들고, 또 직접 풀어나가는 주동 인물은 지선(엄지원)과 한매(공효진)다. 그렇다면 그녀들이 마주하고, 뛰어다녀야 했던 공간은 어떤 곳이었을까.
 
   
 
 
'미씽'에서 두 여성을 감싸고 있는 세상은 비합리적인 가부장적 세계와 무능력한 남성 공권력의 세계다. 이 세계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던 두 여성은 많은 한계에 부딪혔고, 상처받은 뒤, 결국 탈주하는 선택을 한다. 가부장적 세계에서 구원을 찾지 못한 한매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아이를 살릴 방법을 구했는데, 이는 사회 안전망 밖의 음지에서 찾은 비합법적인 일이었고,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지고 만다.
 
한편, 아이를 잃은 지선은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남자들을(경찰 및 남편) 뒤로하고, 홀로 튀어나가 직접 추리하고 수사를 한다. 한매를 가장 먼저 찾는 것도 지선의 몫이었고, 끝까지 남성 공권력은 지선을 돕지 못했다.
 
이 영화 속 세계엔 제대로 된 남자가 없다. 형사는 힘이 없거나 입이 방정이고, 항상 한 발씩 늦다. 그들은 지선이 현장에 도착한 다음에야 도착하고, 도망가는 지선을 '경찰임에도' 잡지 못한다. 한매 주위의 남성은 더 가관이다. 그녀 주변엔 여성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남성뿐이다. 외국인 처녀를 사 와서 아이를 생산하는 도구로 쓰거나, 약자인 그녀의 처지를 악용해 성과 장기를 파는 인간만 있다.
 
한매는 사고 팔리는 존재, 인간이지만 자본 취급을 받는 그런 존재다. 여기서 남성의 세계가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이용해 어떻게 여성을 착취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는데, 이는 힘을 가진 자가 시스템을 어떻게 악용할 수 보여주는 두려운 지점이기도 하다.
 
   
 
 
잠시, 영화에서 빠져나와, 현실에서 두 배우(특히 공효진)가 발 딛고 서 있는 세계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 시대의 여배우가 한국 상업 영화계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고민해보면,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미씽'이 이뤄낸 성취가 무엇인지 더 뚜렷하게 보인다.
 
'미씽'에서 엄지원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지선의 혼란, 분노, 체념 등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을 표현한 연기는 극에 긴장감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서 더 강렬했고, 언급하고 싶은 건 공효진이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한 주제에 보여줄 예로써 언급하기에 적절한 배우가 공효진이었다는 것이지, 두 배우의 연기력을 비교하려는 의도는 없다)
 
공효진이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가장 러블리한 배우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미씽'의 한매 역은 파격적이다. '파스타', '주군의 태양', '괜찮아 사랑이야', '프로듀사', '질투의 화신' 등의 드라마에서 그녀는 공블리로 불리며 대중의 사랑 받았다. 그런 그녀가 중국인 보모에 납치범이라니. 영화에 관한 정보가 없던 관객이라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할도 잘 소화하는 모습에 또 놀랐을 것이다.
 
   
 
 
'미씽'은 공효진이 공블리이기 이전에 좋은 배우라는 걸 새삼 다시 보게 한다. 그리고 한국 상업 영화계에 여배우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장르, 이야기, 캐릭터가 많이 부족했음을 깨닫게 한다. 그녀가 공블리한 역할만 맡은 건, 한국영화 산업이 여성에게 허락했던 캐릭터의 종류가 많지 않았던 게 원인일 수 있다. 그녀를 그런 역할에만 가둬놓았던 게 문제일지도 모른다. '미씽'의 뚜렷한 성취 중 하나는 여성(공효진)에게 새로운 얼굴로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거다.
 
우리 영화 산업은 공효진에게, 여성에게 뛰어놀 무대와 장르를 얼마나 줬던가. 우리가 목격하지 못한 공효진의 어제는 돌아오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가 연기할 능력이 있었지만, 기회가 없어 보내고만 '다양한 얼굴과 캐릭터'를 관객이 볼 수 없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올해 개봉한 '비밀은 없다'의 손예진도 독특한 캐릭터로 김연홍을 연기하며, 데뷔 이래 가장 강렬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 영화 역시 여성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스릴러였다.
 
두 영화에서 여성이 보여준 가능성과 영화적 성취는 단순히 운이었을까. 더 많은 '여'배우들이 이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한국 영화는 여성 캐릭터를 배제하며 소중한 순간을 많이 놓친 게 아닐까. 진지하게 물어볼 시점이고,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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