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라는 옷을 입은 서정적인 사회 비판물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개인적으로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즐기는 편이 아니다. 겁이 많아 즐기지 못한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잔인한 슬래셔(slasher)물은 말할 것 없고, 깜짝 놀라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나 오싹함에 등골이 섬뜩해지는 느낌을 즐기기에는 담력이 너무 약한 탓이다. 여고괴담이나 링, 큐브 등 당시 너무도 유명했던 영화는 마음 먹고 보기도 했지만, 크레딧이 올라간 후 남는 것은 '내가 어쩌자고 이걸 봤을까' 후회스런 마음이었다. 스무살경 좋아했던 남자가 청했던 데이트를 거절한 이유가, 그가 함께 보자는 영화의 장르에 '공포'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었으니 말 다하지 않았나 싶다. 심지어 그 영화는-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았지만-공포보다는 코믹물에 가까운 '시실리 2km'였기에 그는 아마도 적잖이 황당했거나, 단칼에 거절 당했다는 오해를 했지 싶다는, 웃지 못할 사연도 있다.

하긴 공포스러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등장 인물들의 세밀한 관계와 스토리가 가장 중요한 내게는 어쩌면 공포물이라는 장르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어려웠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영화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소녀괴담'이라는 한국 제목을 가졌지만, 'Mourning Grave'라는 상당히 감성적인 느낌의 영제를 달고 있고, 토론토릴 아시안 국제영화제 등에 유일한 한국 상업영화로 초청되어 극찬을 받았다는 기사에도 호기심이 자극되었다. 기존의 공포영화와는 다른, 감성이 담긴 영화라는 표현이 가장 궁금해지게 만들었던 지점이었던 것 같다. 최종적으로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주인공인 배우 '강하늘' 때문이기도 하다. 연일 장안의 화제가 되며 우리네 직장인들의 위로와 휴식처가 되어준 드라마 '미생'에서 '장백기' 역할을 맡고 있는 그. 몇달 새 존재감이 급부상한 이 배우가, 장백기로서 빈틈없는 엘리트의 냉철함을 보이는 가운데 실은 안경 너머로 보이는 따뜻하고 깊은 눈빛을 보이는 그가, 첫 스크린 주연작인 이 공포 영화에서는 어떤 연기를 보여주었을지 기대되었다.

   
▲ 강하늘 ⓒ 소녀괴담 스틸컷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접한 영화 '소녀괴담'은 꽤 묘했다. 유럽식 느낌을 가미한 퓨전 한식 같달까. '말할 수 없는 비밀'과 같은 대만 영화가 떠오르는 풋풋함을 지니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한공주'와 같은 사회 비판물의 느낌을 자아내는 색다른 공포물. 기본적으로 허구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물에 가까운 설정을 가졌다는 점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사회적 이슈를 다룬 폭로물들에 비해서는 조금 덜 무거운 느낌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려 했다는 느낌이었다.

어려서부터 귀신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내내 외톨이였던 '인수(강하늘 분)'는 가능한 그들이 보이지 않는 듯 멀리하려 하지만,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지 않겠다'고 심심함을 호소하며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는 '소녀 귀신'과 친구가 된다. 그녀가 귀신이라는 사실을 간혹 잊을만큼 자연스레 가까워져,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를 감정을 키워가는 둘의 모습은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시공간을 넘어와 서로만을 볼 수 있던 두 주인공의 모습이 떠오를 만큼 풋풋하고 예쁘다. 하지만 그녀가 왜 생전의 기억을 모두 잃었고,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에 대한 '인수'의 궁금점과 더불어, 그가 전학 온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생들의 연쇄 실종과 '마스크 괴담'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모두들 이름을 이야기하기 꺼려하는 '세희'라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관객들은 이러한 사건들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지 않을까 예상하게 된다.

영화를 보며 올해 개봉했던 두 편의 영화 '우아한 거짓말'과 '한공주'가 떠오르는 것은, '소녀 괴담'이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할 뿐 아니라 '학교 폭력'과 관련한 메세지를 다루려 하기 때문이다. 교묘한 혹은 적나라할 만큼 직접적인 괴롭힘을 행하는 가해자들에 대한 시선 뿐 아니라, '내 일이 아니어서' 혹은 '그 괴롭힘의 대상이 내가 될까 두려워' 이러한 폭력을 방관했던 이들 역시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들이라는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전하고 있다. 하지만 괴롭힘과 부당함에 대해 방관하는 이들을 과연 욕할 수 있을까. 나를 지키려는 본능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이들을 벌할 수 있는 걸까.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책감, 그리고 일말의 정의감을 가지고 가해자에게 맞서는 순간, 그 폭력의 대상은 옮겨오게 된다. 내가 안쓰러이 바라보았던 대상에게서 옮겨와 내가 바로 그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나설 수 있는 이는 얼마나 있을까.

'소녀괴담'은 일종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어릴 적 고향에서 미국으로 도망가고, 또 다시 이 곳으로 회피해 도망만 가던 '인수'가 조금씩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그린다. 어린 시절 같은 반 친구를 죽게 한 범인을 알고 있으면서도 두려움에 그를 잡는 걸 도울 수 없었던 기억은 그 이후에도 인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용기 없고 어렸던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살게 한다. 하지만 '소녀 귀신'과 친구가 되어 그녀의 이야기와 억울함을 스스로 파헤치며, 그는 더 이상 나약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과거의 자신이 아니라, 모두가 묵인하던 진실을 밝히고 억울함과 아픔 없이 그녀가 떠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냄으로서 자신을 가둬두었던 마음의 벽을 스스로 넘는다. 인수의 삼촌도 마찬가지이다. 대대로 이어오는 귀신을 보는 능력이 저주라고 피하며 살아오던 그가, 억울하게 죽은 그를 위한 천도제를 지내줌으로써 스스로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게 된다.

영화는 사실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만큼 CG가 완벽하지는 않은 단점이 있고, 이는 공포영화 마니아들에게는 상당히 부족하게 느껴질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완벽한 화면으로 관객을 놀래키고 공포에 떨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드라마와 캐릭터 간의 관계에 보다 많은 초점을 둔 '감성 공포'라는 점에서, 오히려 이러한 부족함은 관객으로 하여금 감성적인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측면이 없지 않다.

   
 

우리는 왜 '귀신'을 두려워하는가? 

어렸을 적부터 '귀신'이라고 하면 무조건 유발되었던 '무섭다'라는 감정의 근원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데, 주인공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여학생 귀신이라든지, 죽은 이후에도 시각장애인인 주인을 떠나지 못하고 그녀의 곁에 머물러 있는 안내견 등의 설정은 귀신이나 혼령이라는 게 그리 차갑고 두려운 대상만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하게 한다. 오히려 두렵다기보다는 마음 편히 이생을 떠나 성불하지 못한 '애잔한 존재'이지 않을까. 그리고 정말 두려운 것은 이들이 아닌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귀신은 이유 없는 악의를 갖지 않지만, 이유 없이도 나의 고통을 전가하거나, 쾌락을 느끼기 위해 타인을 고통으로 내몰 수 있는 인간이 더 무서운 존재이지 않을까 싶어진다.

혹자는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을 쏟아낼지도 모르겠다. 여러 장르가 섞여 정체성을 알 수 없다고 할 수도 있겠고, 특히 정통 공포영화 마니아라면 '이게 무슨 공포 영화냐'고 시시해 할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 달리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공포'라면 무조건 눈을 돌리고 보던 필자 같은 사람이라도, 한 번 도전해봄직하다고 달래어 '공포영화'에 입문하게 해 주는, 풋풋한 로맨스와 학교 폭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미한 공포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여기에는 주로 공포라는 장르를 연출해 왔음에도 실은 어려서 무섭다는 이유로 공포 영화를 즐기지 못했다는 감독의 공포영화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담겼다고도 볼 수 있다.

아, 더불어 굉장히 풋풋하고 인간적인 모습의 '강하늘'이라는 배우를 엿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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