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영화 '연결고리' #012 '판도라'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석재현 syrano63@mhns.co.kr 영화를 잘 알지 못하는 남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영화를 보면서 배워갑니다.
[문화뉴스] 이번에 '영알못' 석재현과 '평점계의 유니세프' 양미르 기자가 고른 영화는 최근 사람들 사이에서 이슈화되고 있는 '판도라'다.
 
'판도라'는 지난 7일에 개봉하여 개봉 첫 주에 무려 14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위력을 과시했는데, '판도라'의 인지도만큼 관객들 간 벌어지는 갑론을박이 진행되어오고 있을 만큼, '예민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두 남자의 생각을 한번 들어보려고 한다. 
 
* 본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판도라'가 개봉한 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110만 명이 넘는 관객동원으로 무시무시한 흥행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의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일까?
ㄴ 아띠에터 석재현(이하 석) : 2012년 박정우 감독의 전작인 '연가시'가 개봉할 당시 화젯거리였던 꼽등이와 연가시 때문에 시기가 적절하게 맞물려 흥행에 성공했던 적이 있다. '판도라'도 비슷한 케이스다. 감독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밀집도 1위국인 대한민국이 원전에 대한 위험성이 부족하여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제작에 들어갔는데, 때마침 지난 9월에 발생한 경주 대지진과 그 지역 일대에 있는 원전의 안전성 여부가 재조명되었다.
 
   
 
 
개봉 일자를 계속 늦추고 있던 '판도라' 입장에선 말 그대로 하늘이 도왔다. 게다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정부의 무능력한 대처능력이 딱 타이밍 맞게 현실에도 맞아떨어졌으니, 그들에게는 개봉 시기가 최상의 조건이 되어버렸다. 
 
양미르 기자(이하 양) : 어제(12일)도 경주엔 규모 3.3의 지진이 일어났다. 이에 영화를 본 관객들은 "혹시나 원전에 이상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라는 말을 꺼냈다. 여기에 박정우 감독조차도 기자간담회에서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찾아 시뮬레이션을 많이 돌려봤다"며 "이 영화를 대입해 놓고 보면 이런 일이 벌어지질 않길 바라며 만들었는데, 약간은 겁이 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개봉 이후 8일 포항시에선 '지진 대응 전략과 관련 기관 유치를 위한 토론회'가 열려 지진 및 원전 전문가와 시민 200여 명이 참석한 포럼이 열리기도 했다. 국회에서도 '판도라'의 모티브로 삼은 '월성 1호기' 노후화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처럼 현재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판도라'는 그야말로 열리지 않아야 할 상자가 오픈됐을 경우, 어떤 일이 펼쳐질지를 '영화적 허구'와 잘 섞어 놓은 용기 있는 상업영화였다.

흥행하는 만큼 '판도라'를 두고 많은 사람의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판도라'를 두고 논쟁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작품성 vs 영화의 상징성'인데, 두 사람은 어느 쪽에 서서 이 영화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 
ㄴ 석 : 무엇보다도 기본이 되어야 할 작품성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영화의 상징성이 의미가 있을까 싶다. '판도라'가 던져주는 상징성과 메시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영화 속 장애물(?)들이 보는 내내 영화의 의미를 가렸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배우들의 사투리 구사 능력이다.
 
   
 
 
대부분 배우가 구사하는 경상도 사투리는, 경상도 출신이 아닌 사람들의 영화몰입에 방해될 만큼 최악이었다. 지난주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조진웅은 "언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정서가 담겨있기 때문에 사투리나 외국어 대사를 할 때, 그들과 똑같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조진웅은 '아가씨'를 촬영 중에 일본어 암기를 넘어 캐릭터에 걸맞게 억양도 바꾸는 노력도 했다고).
 
'판도라'는 모티브가 된 고리 원전이 있는 지역의 느낌을 살리고자 사투리를 사용했지만, 공감은커녕 역효과만 났다. 어색한 사투리를 쓸 바에 차라리 표준어로 대화했어도 관객들은 그러려니 넘어갔을 텐데 말이다. 나무 하나하나가 영양실조로 비쩍 말라 있는데, 당연히 숲이 울창할 수 없다. 
 
양 : 먼저, 우리나라 상업영화에서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을 놓고 이렇게까지 묘사한 작품은 볼 수 없었다. 미국 애니메이션인 '심슨 가족'에 등장하는 원자력 발전소의 문제점을 풍자한 '눈이 3개 달린 물고기'나 '호머 심슨'의 정자가 방사선의 영향으로 모두 죽어버렸다는 이야기 등을 국내에서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고 '판도라'가 비슷한 시기 개봉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그 인근에 살던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김기덕 감독의 '스톱'처럼 극장에서 간신히 볼 수 있는 작품도 아니다. 좀 더 많은 이들이 '판도라'를 통해 원전의 위험성을 한 번 정도 생각해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팝콘 무비'의 소임은 다한 셈이다.
 
하지만 석 아띠에터의 의견처럼 사투리는 참으로 아쉬웠다.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한 재난영화인 '해운대'를 예로 들어보자. '판도라'와 마찬가지로 절체절명에 위기에 빠진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사들이 이상하게도 어색해 집중되지 않은 것을 기억나는가? '판도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시 원전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이들의 대화를 복기해본다. 
 

 

   
 

'판도라'에서 논란이 되는 또 하나의 요소가 바로 영화 속 등장하는 '신파성'인데, 이 신파적인 요소를 두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재난영화에 신파적인 요소가 문제 될 게 없다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다. 당신들은 어느 편인가?  

ㄴ 석 : '판도라'보다 먼저 개봉한 '터널'이 기존 국내에서 선보였던 재난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터널'은 재난 영화의 스케일을 줄인 대신 현실적인 연출에 중점을 두었는데, 특히 기존 국내 재난영화들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비극과 풍자가 영화에 묻어나왔던 게 상당히 신선했다. 흥행도 잡았고, 일각에서는 올해 한국 최고의 영화라는 평가까지 나왔다(아쉽게도 이번 청룡영화제에서는 쓴 잔만 들이켰다).
 
그렇다면 '판도라'는? 비교 대상이 되어버린 '터널'에 비해 스케일도 크고, '터널'처럼 사회시스템의 문제와 정부의 무능력함으로 인한 참사라고 보여주다가 갑자기 일개 가족의 눈물겨운 이야기로 전환과 동시에 그저 일반인이었던 한 남자를 순식간에 영웅으로 만들어버렸다. 기존 재난영화의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신파도 진하게 우려냈다. 특히 마지막에 등장한 가족들과의 화상대화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헷갈리게 했다. 영화 속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대통령처럼, '판도라'도 신파에 너무 휘둘리고 있다. 
 
   
 
 
양 : 지난여름 개봉한 '부산행'과 '터널'을 본 관객들의 눈높이는 이미 높아졌다. '부산행' 역시 신파 요소가 들어가긴 하나, 최대한 자제하며 마지막 순간에 극적인 연출을 보여줬다. '터널'도 생각지도 이의 죽음에 절제한 시선을 보여준다. 심지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도 담담하게 구조 현장을 살핀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느 순간부터 '그냥 실세'인 '총리'(이경영)의 '대통령'(김명민) 흔들기나, "대피 매뉴얼? 그런 건 없다"라는 대사에서 나오는 컨트롤타워 부재의 헛웃음은 사라진다. "우리가 구해야 한다"라는 신념으로 목숨을 바치겠다고 노동자들이 출동하는 장면부터 분위기는 '비장미' 가득해진다.
 
결국, 어쩌다 최후의 1인만이 '자폭'을 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아닌가? 재난 영화의 새로운 르네상스였던 199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풍경이다. 그렇다. 대표적으로 지구로 날아오는 소행성을 폭파하기 전, 사랑하는 딸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며 장엄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아마겟돈'의 브루스 윌리스가 있다.
 
물론, 신파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꼭 써야 할 때는 써야 하는 것이 '신파'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양파를 눈앞에 가져다 댈 정도의 화면과 음악을 연속해서 보여주고 틀어주는 것은 썩 좋은 연출 기법이 아니다. 좋은 소재를 크게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그렇다면 '판도라'에 몇 점을 주면 적당하다고 생각하나?
석 : ★★☆ / 억수로 미안하제? '터널' 같은 재난영화와 같은 위치에 서려니까?
양 : ★★★ / 한국 상업영화에서 반핵을 절실하게 외치는 소신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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