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 ·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드라마 '미녀의 탄생'의 첫 화를 보며 생각했었다. 이런 설정의 드라마에서 으레 그러하듯, 주인공은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처럼 완전히 바꾸어 미녀가 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결말을 맺겠지만, 그렇게 사랑을 찾았다 한들 참 씁쓸한 결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남주인공은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그 진면목을 들여다보고 사랑하게 된 것이라 우리를 설득하겠지만, 결국 그가 그녀와 함께하기 시작했던 것은 겉모습이 아름답게 바뀌었다는 전제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그것을 뒤집을 수 없는 이상, 뚱뚱하고 예쁘지 않은 모습의 그녀는 그 자체로 사랑받을 길이 없지 않느냐는 씁쓸함을 여전히 버릴 수 없지 않을까.

 흔히 나이를 먹으면 더는 철없던 20대 시절처럼 이성의 얼굴이나 몸매만을 보지 않고 마음, 그 내면을 살피게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말에서의 포인트 역시 '마음만을' 보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인성 같은 건 어떻더라도 상관없이 '얼굴이나 몸매'에만 현혹되는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겠지만, 여전히 적어도 자신이 가진 외모나 조건의 기준선을 통과한 이성에 한해 내면을 들여다보겠다는, 어쩌면 이전에 비해 더 세밀한 관문을 거치겠다는 얘기와 별반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미녀 '사라(한예슬)'가 된 '사금란'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한 '태희(주상욱)'. 하지만 사라는 그의 말에 설레면서도 지금의 나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의 자신을 좋아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있느냐 의심하고, 그는 이러한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한다. 스스로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잘 생각해보고 정리하라고 말하며, 그녀는 하나의 팁을 준다. 바로 나를 과거의 사금란이라고 바꾸어 생각해 보라는 것. 그렇게 해본다면 아마 정이 떨어지고, 뚱뚱하고 못난 자신을 포옹하고 싶거나, 빵을 만드느라 이마에 묻은 밀가루를 손수 닦아 주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후 드라마는 다소 황당한 장치를 설정하는데, 태희가 뇌파를 조절해 스스로에게 '그녀는 아줌마 사금란이다'라는 최면을 걸어, 그에게만 그녀가 과거 사금란의 모습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태희의 눈에 비치는 모습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사라의 성형 전 모습을 연기했던 '하재숙'이 재등장한다. 조금 전까지 '한예슬'의 모습이었던 사라가 '하재숙'의 모습으로 대체되면서, 분명 같은 말과 행동인데도, 이전에는 매력적이고 유혹적으로 느껴졌던 그녀의 모든 것이 자신을 위축되고 피하게 하는 것을 느끼며 그는 적잖이 당황한다. 비록 코믹한 느낌으로 그려내기는 하였지만, 그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변화를 느끼는 시청자들 또한 마음 한 켠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 태희는 뇌파를 이용해서 최면을 걸고 있었다. "아줌마는, 사금란이다" 그는 사라가 사금란이란 사실을 계속 인지하기 위해 최면까지 걸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제 눈을 뜰 텐데 자기 앞에 있는 여자는 사라가 아니라 사금란이라고 또 최면을 걸었다. 눈을 떴고 진짜 태희의 앞엔 사금란이 서 있었다. 그는 "사..사금란으로 보여"라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정작 사금란 그녀는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충분히 혼자 할 수 있다며 만류해도, 나서서 밀가루 반죽하는 일도 도와주던 그가 주춤거리는 것을 보며, 남자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익숙하니 괜찮다고 자조적으로 웃는다. 그리고 나 같은 여자를 사랑할 남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기에, 자신을 좋아한다는 남자가 나타나자 얼른 지참금을 챙겨, 그 기회를 잡아 결혼했던 거라고, 그만큼 사랑에 굶주려 있었던 스스로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한다. 자신의 생일을 챙겨주려고 한 마음만으로 고맙다고, 당신이 어려서 사고로 부모를 잃은 후, 홀로 살아오며 스스로 생일을 기억하거나 챙겨본 적 없어, 그게 어떤 마음인지 서운함을 아는 거라고 눈시울을 붉히며 말하는 그녀의 마음은 누구보다 진심어렸고, 그녀의 외양과 상관없이 보는 이들을 뭉클하고 따뜻해지게 했다.

세상에 예쁜 여자는 많다. 매력적인 외모가 이 사회를 살아가며 장점으로 어필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 것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기는 어렵다.

태희는 사라가 아름다워서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착하고 바보 같을 정도로 자신을 챙길 줄 모르고, 남들을 위해 살았던 그녀. 태희로 하여금, 살면서 평생 누구에게도 꺼내어 이야기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말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나아가 그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도록 곁에서 힘이 되어주었던 그녀. 그런 진심어린 마음에 감동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가 곁에 없이는 홀로 살아갈 수 없겠다 여기게 된 그였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순간, 태희는 눈 앞에 있는 사금란을 자신이 사랑하게 되었던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바라볼 수 있었고, 사라의 외양을 지녔던 때의 그녀를 대하던 것과 똑같이 이마를 닦아주는 행동을 한다. 그 순간 사금란의 모습이 사라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정말 그녀의 내면, '진짜 그녀의 모습'을 사랑한다는 것을 비로소 스스로 알게 된 태희의 시선을 대변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 방송에서 너무나 달라진 박동희를 77일 만에 만난 남자친구는 "복잡 미묘하다. 일단 예뻐지니까 놀랍고 이렇게 예뻤나 싶기도 하다"라며 "불안하기도 하다"는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커플이 있다. 바로 스토리온의 메이크오버쇼 '렛미인'의 참가자였던 '박동희' 양과 그 남자친구이다. '여자 최홍만', '프랑켄슈타인' 등의 별명으로 불려온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렛미인'에 지원해 전신성형을 통해 탈바꿈하고, 이후 모델일을 하며 인생 역전에 성공한 그녀는 참가자들 중에서도 유독 주목을 받았었다. 그런 그녀의 '그 후 이야기'를 다룬 방송에서, 그녀의 남자친구는 아름다워진 연인에 대한 주변의 관심과 시선을 신경쓰며 불안해하고, 걱정하며 복잡미묘한 심경을 내보인다. 그런 남자친구를 위해 변함없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이벤트를 준비한 그녀는 그에게 말한다.

"내면적 상처로 똘똘 뭉쳐 있던 나를 말없이 보듬어 줬던 오빠였음에 더 믿고 의지할 수 있었어. 사람들이 뭐라고 한들, 내가 더 좋은 자리와 위치에 선다 한들, 난 여전히 박동희고 정상헌의 여자친구야. 한결같이 사랑하니까, 누구보다도 좋아하니까, 초조해하지도 말고 불안해하지도 마. 사랑해."

이런 그녀의 고백에 '내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네'라며 활짝 웃는 남자.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비록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한다고 비판받는 프로그램이지만 그런 문제들을 떠나, 이 둘의 마음이 변치 않고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못난 모습과 상관없이 나를 사랑해 준 따뜻한 남자, 그리고 그 마음에 대한 고마움을 아는 여자. 과연 이 두 사람이 만들어온 관계에 어느 누가 끼어들어 훼방놓을 수 있을까.

비록 픽션이기는 하나, '미녀의 탄생'의 태희와 사라도 다르지 않다. 9화 마지막 태희의 독백에서는, 어린 나이에 사고로 부모를 잃고, 이후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조모 앞에 나타나지 못한 채 홀로 살아온 그가 '사라'가 곁에 있음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세상에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20년 동안 넘지 못한 벽을 넘는 일. 수십 년간 갖지 못한 자신감을 갖는 일. 이런 일을 해내게 하는 힘은, 사랑이다.'

그런 과정을 함께해 낸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힘. 스쳐가는 많은 인연들, 타이밍과 오해 속에서 오늘도 엇갈리는 수많은 인연 속에서 그래도 여전히 그 사랑의 힘을 믿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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