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사랑은 어떤 유형인가요?

[문화뉴스]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한예슬이 안방극장으로 복귀했다. 엉뚱 발랄하면서도 진심 어린 마음을 지녔던 '나상실'을 연기했던 그녀, 예쁘장한 얼굴로 짜장면 먹방을 보이는 데 주저함 없었던 그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반가움과 기대감으로 그녀의 새 작품 '미녀의 탄생'을 고대했으리라. 드라마의 기본적인 설정은 못생기고 뚱뚱한 외모로 남편에게 버림받은 착한 조강지처가 전신 성형을 통해 미녀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으로,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만화이자 국내에서는 배우 김아중이 주인공을 맡아 영화화되기도 했던 '미녀는 괴로워'를 떠오르게 한다.

   
 

그런 설정에서 한예슬이 분한 주인공이 남편에 대한 복수와 새로운 복귀를 꿈꾸는 과정에서 자신을 도와주던 남자와 아마도 사랑에 빠지게 될 거라는 스토리 라인이 기대되고, 어쩌면 과거에는 어리석게도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했던 남편이 개과천선해 그녀의 순애보적인 사랑이 결실을 맺게 되는 전개로 이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조심스레 예상했었다.

하지만, 3주째에 접어드는 드라마의 전개상 후자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졌다. 남편 '이강준'은 매력적인 다른 여자와의 사랑을 위해 조강지처를 버린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다져놓은 사회적 입지와 성공을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이유로, 불륜을 통해 이미 한 차례 상처주고 버린 자신의 아내 '사금란'을 다시금 죽였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사고사를 가장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살인자인 그는 더는 그녀와 재결합하는 남주인공이 될 수 없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그의 죄를 묵인한 불륜녀이자 그의 새 와이프인 '교채연' 또한 그녀를 오매불망 사랑하고 아껴왔던 친오빠 같은 '한태희'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더는 없어졌다고 보아야 하겠다. 과연 앞으로 어떤 전개를 보이려는 걸까? '미녀의 탄생'은 더 이상 로맨틱 코미디라기보다는 스릴러에 가까워지며 우리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미녀의 탄생'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랑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악의 커플인 '이강준'과 '교채연'이 서로 위하기는커녕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면, 그에 비교되는 남녀 주인공인 '사라(변신 전 사금란)'와 '한태희'는 기 막힐 정도로 맹목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제3자가 보았을 때는 나쁜 인물임이 분명한 '이강준'과 '교채연'을 무조건 믿고 사랑하며, 어떤 모습도 품으려는 그들. 남편에게 배신당하고도 그만이 자신의 첫사랑이자 끝사랑이고, 자신의 인생에 남자는 그이 하나밖에 없다고 말하는, 복수를 꿈꾸다가도 다시 그의 아내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하는 '사라'를 보면서는 한심하기보다 애처로워져, 그런 그녀의 사랑을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런 그녀였기에,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 바로 남편이고, 자신이 죽은 후에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불륜녀와 바로 재혼하며 재산까지 가로채, 어머니를 길바닥에 나앉게 했다는 진실에 맞닥뜨렸을 때, 그녀는 그때야 비로소 정말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그에 대해 사랑이 아닌 증오로 진정한 복수를 꾀하게 된 것이다.

'이강준'이라는 남자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처 '사금란'과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극의 초반에서 생략되었지만, 아마도 예상하건대 별 가진 것 없이 자기 자신이라는 도구만을 가지고 바닥에서부터 올라와야 했던 그에게는 조건 없고 맹목적인 사랑으로 자신의 성공을 위해 헌신할 여자인 '사금란'이 필요하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그녀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당시 빚을 지고 있던 그에게 필요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하지만, 그런 금전적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그를 유학 보낸 동안 사금란은 그를 대신해 시댁의 모든 일을 해내었다. 그녀가 있던 게 당연했던 그 때, 그녀는 시댁 식구들로부터 함께 다니기도 창피하고 거추장스러운, 힘세고 일은 잘하는 뚱보 못난이 며느리 취급받았지만, 그녀가 없어진 지금 풍비박산이 난 이 집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치스럽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을 중요시하는 속 빈 강정 같은 허영덩어리 식구들 사이에서 그녀가 얼만큼 그들을 '그래도 인간 같은 모습'으로 보이게 지탱하며 살아왔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데 그녀의 이런 헌신에 고마워하기는커녕 무관심했던 그녀의 남편은 예쁘고 지적인, 자신이 대표가 된 회사의 매력적인 간판 아나운서 '교채연'과 사랑에 빠진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남녀 사이에도 서로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대상으로 어필하려는 노력은 분명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사금란'은 착하고 헌신적이기만 했지, 여성으로서의 매력이라든지 눈치 있게 내 남자를 살피는 센스가 결핍된 여자였으니, 어떤 남자에게도 매력적일 '채연'에 비해 어떤 경쟁력이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채연'와의 결혼을 앞두고도, 자신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하는 미녀 '사라'에게 '강준'은 또 다시 별 고민없이 쉽게 흔들리고 만다. 또한, 그렇게 새로이 시작해보려고 한 관계에서조차 '사라'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이내 마음을 거두고 다시 '채연'에게로 돌아가 결혼을 서두른다. 그 이후라고 달랐을까? 결혼 후 가족들이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이전 아내만큼 순종적이거나 만만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구는 '채연'에게 실망하며 참 쉽게도 마음이 멀어지고, 그런 문제를 조장하며 그 틈을 파고들어 자신을 공략하는 '사라'에게 금세 기대어 '인연'이니 '운명'이니 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바람을 피우지 않는 남자는 있어도 한 번만 피는 남자는 없다지만, 이 여자에게 마음을 주었다 금세 저 여자에게 가서 기대는 '이강준' 이 남자에게 사랑이라는 건 무엇인지, 과연 진심이라는 게 있는 건지 싶어진다.

이런 캐릭터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적용해보자.
로버트 스턴버그 (Robert Sternberg)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triangular theory of love)
에 대해 주장하며, 사랑에는 ▲열정(passion), ▲친밀감(intimacy), ▲헌신(commitment)의 세 가지 차원이 있다고 설명했다. '열정'이란 상대방에 대한 열띤 감정과 강한 갈망으로, 상대의 신체적인 매력이나 성적 욕구를 자극하는 면과 높게 관련된다. 그 사람을 생각하고 만나고 싶은 욕망을 느끼며, 그가 곁에 없으면 그리워 견디지 못하는 그런 감정이라 하겠다. '친밀감'이란 서로에 대해 가깝고 편안하게 느끼는 정도를 말한다. 상대와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자신의 이야기와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서로 이해하고 지지하는 과정. 마지막으로 헌신은 관계의 지속을 위해 서로 약속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상대와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책임감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 3가지 차원이 모두 충족될 때, 우리는 그 사랑을 균형적이고 풍성한, '성숙한 사랑'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결여된 경우에는 어떤 형태의 사랑이 될까? 열정은 보통 사랑의 첫 번째 단계가 된다. 열정이 부재한 채, 친밀감만이 있는 경우라면 사랑보다는 '우애와 좋아하는 감정' 정도가 되겠고, 헌신만이 있는 경우 '공허한 사랑'이 되기 쉽다. 반면 열정밖에 없는 경우에도 '도취적인 사랑'에 머문다. 열정과 친밀감만이 있는 관계는 보통 '낭만적 사랑'이라 일컬어 지고, 열정과 헌신만이 있는 관계는 서로에 대한 이해나 친밀감의 교류는 부족한 '얼빠진 사랑'이 되고 만다.

이 얼빠진 사랑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금란'의 남편에 대한 감정일 것이다. '채연'의 경우는 아마 자신의 사랑을 낭만적인 사랑이라 여겼을 것이고, '이강준'의 경우, 열정이 주가 된 관계만을 지속하는 철없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이해해볼 수 있겠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사소한 것이든 더 큰 문제이든, 사랑하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부딪히는 어떤 문제에 대해 고민하거나 해결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가 상대를 달래는 상황은 대부분 지금 그녀를 달래어 자신이 얻어야만 하는 무언가가 있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헌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도 알지 못하고, 알려는 자세도 지니지 못한 그가 어떤 죄책감을 갖고 어떤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와의 결혼을 결정하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열정이나 친밀감만으로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하는 것이다. 아이는 혼수라는 말도 나오는 만큼 속도위반으로 결혼하는 케이스도 빈번한 요즘, 그 선후는 어쩌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열정만으로 가득찬 상태에서 결혼을 결정하고 부부가 된 이들이, 실제 한 가정을 꾸리고 그 안에서 부딪혀가며, 그 과정에서 너무도 쉽게 지쳐 그만두려는 마음을 갖는 세태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다. 열띤 감정이나 친밀감뿐 아니라, 상대를 위한 헌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스스로 마음을 다지는 과정이 결혼을 결정하기 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 여겨진다. 그것은 결국 상대뿐 아니라 나, 그리고 나의 가정의 행복을 위해 성숙한 사랑을 키워가는 길이 된다.

   
 

배우 '에단 호크'의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실제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랑은 괴롭기 때문이다. 사랑은 다이아몬드 같아서 겉으로 볼 때 아름답지만, 그 안은 딱딱하고 모나고 날카롭다. 진심으로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단지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을 결코 혼동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통스럽고 실망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소풍 가듯 유쾌하고 가볍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 미오.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