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아띠에터) 조형근kareljay@mhns.co.kr. 글을 쓰고 싶은 음탕한 욕망이 가득하나, 스스로를 일단은 억눌러야 하는 현실.답은 유명해지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문화뉴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점이다.

대한민국의 하반기를 강타한 최순실 사건에 대해 논하자고 한다면 한도 끝도 없을 테고 어디서부터 써내려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에 달하는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이제는 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도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안개처럼 꽉 막혀버린 상황이다.

촛불을 든다 한들,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할 지도 의문이고 하야를 한다 한들 지금 시기에 맞는 건지, 그 이후는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 지금은 그저 좌우 양편에서 떠들어대는 정치 공작보다는 이 사건의 본질 자체를 알고 싶다. 어떻게 밝혀진 건지, 여야를 떠나서 그동안 정말 아무도 몰랐던 건지?

한편으로는 그러면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민주주의, 지금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냥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내가 여태껏 낸 세금이 복채구나' '21세기 초유의 샤머니즘 국가' 같은 풍자형 멘트들도 차치하고, 정말 우리나라는 지금 민주주의를 누리며 살고 있을까?

   
▲ 이게 현실이라니. 맙소사. 

도대체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투표를 통한 다수결의 원리로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을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고, 정당 정치를 기본으로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기 내용은 전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나 정치 체제라고 봐야 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본질 자체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는 '국가의 주권을 특정 개인이 아닌 모든 국민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이 본연의 가치를 현대사회의 인구수로 가장 낫게 실현할 방법이 투표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수결의 원리가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가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뿐이다.

이를 다시 이야기하면, 민주주의는 본래 개개인의 권리가 중시되나, 현대사회에서는 개개인의 의사 표현을 한데 모을 수 없어서 정당이 등장하고, 정당이 개개인을 대리하여 권력의 정당성을 입증받는 절차를 거쳐 실현되고 있다. 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분명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지금 훼손되었다고 봐야 한다. 권력의 정당성을 입증받은 지도층이 유권자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행동으로 그들을 실망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또한 민주주의라고 봐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가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 나올 수 있는 결과가 나왔을 뿐이다. 그러지 않길 바랐고,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음이 마땅하지만, 민주주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아닌 '최선'의 방법이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역기능이 있고, 그 역기능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로 돌아왔을 뿐.

   
▲ #내가_이러려고_이_나라에_태어났나

그렇다면 훼손된 민주주의는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그건 상당히 요원해 보인다. 인터넷 여론은 뜨겁게 대통령 하야와 최순실 구속, 단두대행 등의 자극적 멘트가 남발되고 당장에라도 전국민이 시위에 참여해 분노를 표출할 것 같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본연의 할 일을 하고 있고,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항상 그랬듯이 기삿거리만 쏟아내고 있다. 왜? 라는 질문에 우리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제는 다시 설 때가 되었다고.

필자가 태어난 1986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새누리당이든 민주당이든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둘 다 뚜렷하게 달라진 세상을 보여준 적은 없다. 실상 두 거대 정당의 정책을 보면 큰 틀에서 보면 별반 다를 것도 없고 세세한 내용만 조금 다를 뿐이다.

이는 한국의 민주 정치가 정책과 법안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 에서 비롯되어 발전해온 것이 아니고, '사람' 중심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서 여전히 투덕대고 있는 친박이든 비박이든, 민주당에서도 벌어지는 친노 패권, 친문 패권, 이딴 게 다 뭐란 말인가? 정책의 다름보다는 인맥과 사람의 매력에 의존하다 보니 이런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나 좌우놀이 하고 있지 외부에서 보면 실상 대한민국은 힘 있는 좌파도, 힘 있는 우파 정당도 없다.

거기에 이런 상황을 정치인들 스스로 자성해서 민주 정치를 발전시킬 생각을 해야 하는데, 여야 할 것 없이 그들은 항상 이념적으로만, 감정적으로만 유권자, 국민을 오도하고 싶어한다.

"지금이 바로 당신이 분노할 때입니다? 지금 시국이 어느 때인데 가만히 앉아만 계십니까? 시국 선언에 동참하고, 촛불을 들어야지 할로윈 파티나 즐기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이런 식. 

   
▲ '말짱도루묵'이다. 거리에 나서면 뭘하나.

 

서두에 말했다시피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는 주권이 특정 개인이 아닌 '모든' 국민에게 주어진다는 데에 있다.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낸 기성세대를 틀딱이라고, 시위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각자의 '다름' 또한 인정해야 하며, 그렇기에 '모든' 국민 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다수의 권위를 인정하고, 다수를 최대화하는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그 말이 다수에 반하는 의견을 무시하고, 무시할 수 있다는 말은 되지 않는다.

차라리 지금 상황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 차라리 잘 터진 일일 수도 있다. 언제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이 안개 같은 어두움이 걷히고, 사람에 휘둘리는 정치가 아닌, 나와 다름을 깔보고 우습게 보지 않고 서로 인정하며 살아갈 수 있는, 원칙적이고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모두가 한꺼풀을 벗어던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치인들은 사람 쫓지 말고 본인들의 정치적 성향을 확실히 하여 정책, 법안 중심으로 정치하고, 일반 시민들은 자기 자리에서 각자의 할 일 열심히 하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경멸하지 않고 유순히 흘러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입으로 쉬운 말을 행동으로 하기엔 어렵겠지만, 이만큼의 계기가 있다면 못 할 것은 또 무엇이겠나.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고, 이어가며 더 나은 체제와 사회를 후대에 물려주고 싶다면, 지금이 그를 손댈 가장 좋은 적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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