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영화도 다시보자 '명화참고서'…'글루미 선데이'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석재현 syrano63@mhns.co.kr 영화를 잘 알지 못하는 남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영화를 보면서 배워갑니다.
[문화뉴스] '동유럽의 파리'로 불릴 만큼 그들만의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야경 등으로 관광객을 사로잡고 있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하지만 부다페스트 사람들의 내면은 어둡다.
 
부다페스트 사람들의 얼굴표정이 어두운 데에는, 연중 축축한 날씨, 세계 2차 대전 때문에 발생한 경제난과 사회적 지위 추락, 인구 절반 이상의 도시 이주 등의 여러 가지 설들이 많았고, 우울함을 견디지 못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구체적인 이유들이 있음에도, 1930~40년대 부다페스트에서는 헝가리의 작곡가 세레스 레죠가 1933년에 발표한 '슬픈 일요일' 때문에 사람들이 연쇄 자살을 한다는 괴소문이 돌고 있었다.
 
약혼녀와 이별한 아픔을 승화시킨 레죠의 곡이 자살하게 만든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슬픈 일요일' 때문에 부다페스트를 넘어 다른 국가까지 연쇄 자살사건이 일어났다. 나치 정권은 이 노래를 전면 금지시켰고, 영국 BBC에서도 가사가 없는 연주곡만 허용했다. '슬픈 일요일'이라는 곡에 얽힌 일화와 세계 2차 대전의 상흔, 그리고 1988년 바르코프의 소설 '우울한 일요일의 노래', 이들이 합쳐서 탄생한 영화가 바로 롤프 슈벨의 '글루미 선데이'다.
 
   
 
 
1940년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어느 조그마한 레스토랑, 레스토랑의 지배인인 자보는 그의 서빙을 돕는 미녀 일로나와 오랜 연인관계였다. 하지만 피아니스트 안드레스와 그의 제목없는 자작곡의 등장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일로나는 안드레스에게 반해버렸다.
 
이를 눈치 챈 자보는 일로나에게 "난 신경쓰지마, 내가 말했었지? 누구나 자유롭게 결정해야 한다고"라고 말하면서 일로나와 안드레스의 사이의 다리역할을 했다. 일로나를 두고 자보와 안드레스는 마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같은 관계처럼 서로의 사랑을 키우고 유지했다. 이 이상한 삼각관계는 셋이서 나란히 간 소풍에서 결실을 맺고, 자보의 유명한 대사인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가 나왔다.
 
하지만 자보-일로나-안드레스의 삼각관계는 안드레스가 만든 자작곡 '글루미 선데이' 영향 탓인지,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글루미 선데이' 가 헝가리 전역에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으나, 그 곡 때문에 발생하는 연쇄 자살 사건들이 안드레스에게 고통을 주었다. 게다가 과거 일로나에 청혼을 거절당해 다뉴브 강에서 자살 시도했던 한스가 나치장교가 되어 돌아오면서 삼각관계는 깨졌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슬픈 일요일' 이라는 곡을 두고 사람들은 '자살찬가', '자살을 부르는 곡' 이라고 저주했다. 하지만 자보는 "이 노래가 사람들을 떠나게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떠나는 길을 행복하게 해준다"라고 말했다. 러닝타임 내내 흘러나오는 애절함이 가득한 이 멜로디를 들으면서 느낀 건, 이미 우울하고 피폐해진 사람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그들이 가는 길을 함께 해주는 것이었다. 또한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짓밟혀 피폐해진 헝가리인들을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슬픈 일요일' 곡에 얽힌 일화를 계속 말하자면, 세레스 레죠는 자신이 만든 이 곡이 크게 흥행하자 들뜬 마음으로 자신의 약혼녀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그녀의 모습은 독약을 먹고 싸늘한 시체였다.
 
약혼녀의 죽음과 자신의 곡으로 인하여 자살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레죠는 의도치 않게 '나쁜 일로 돈을 번' 사람이 되어있었다. 자신에게 씌여진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람들과 사회는 그를 끝끝내 거부했고 그는 1968년에 자살했다. 정말로 한 사람이 이 곡 때문에 자살했다. 그러나 이 곡이 자살을 유발하는 곡일까? 솔직히 이 부분은 의문이다. 롤프 슈벨 또한 이 괴상망측한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기 위해 영화 제작에 들어간 게 아닐까 생각도 든다.
 
   
 
 
'글루미 선데이' 는 오늘도 비운의 죽음을 택한 세레스 레죠와 그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부다페스트의 사람들, 전세계에 우울함을 느끼고 있는 이들을 치유하고 있다. 일로나의 속삭이는 노랫말은 아직도 귓가에서 맴돌고 있다.
 
글루미 선데이(Ein Lied Von Liebe Und Tod), 1999, 19세 관람가, 드라마, 
1시간 54분, 평점 : 3.7 / 5.0(왓챠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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