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장예모가 돌아왔다. 그가 오랫동안 영화계를 떠나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최근 우리에게 선보인 영화는 뭔가 과거보다 어색했다. 장예모는 문화혁명을 직접 경험했던 살아있는 경험자였다. <붉은 수수밭>, <집으로 가는 길> 같은 영화들은 중국의 속사정을 너무나 잘 그려낸 영화였고, 공리와 장쯔이라는 좋은 두 여배우를 발견한 영화였다.

이처럼 그는 중국인의 상처와 아픔을 따뜻하게 감싸주던 아버지 같은 영화인이었다. 하지만 2002년 그가 선보인 <영웅>이란 영화부터 뭔가 낯설었다. 각 주인공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기었던 독특한 구성과, 각 스토리를 상징하는 색채의 이미지로 진행된 영화는 그 당시에도 파격이었고, 신선했으며, 감동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G2라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의 모습을 대변하는듯한 장대한 스케일과 그들 중심의 세계관은 왠지 불편했다. 그리고 2008년 그가 연출한 베이징 올림픽의 화려한 개막식을 보며 이제 그도 과거와는 달리 거장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중국 사회의 '주류'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아쉬웠다.

   
 

공리도 돌아왔다. 장예모의 <붉은 수수밭>을 통해 데뷔한 그녀는 차곡차곡 알찬 필모그라피를 쌓았고, 세계 영화제의 상을 받기 시작하며 할리우드에 진출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할리우드에 진출한 동양배우가 그렇듯이, 그녀도 <게이샤의 추억>, <마이애미 바이스> 같은 영화들에서 그녀가 가진 원래의 색채가 아닌, 그들이 원하는 동양인의 모습을 그려주기에 바빴다.

점점 성장하는 중국 경제, 그에게 맞게 규모가 커지는 중국 영화계, 그리고 중국만이 아닌 세계에서 주목받는 많은 중국의 새로운 여배우들 속에서 그녀의 이름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랬던 그들이 <5일의 마중>을 통해 드디어 다시 만났다. 그냥 만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케미를 터뜨리며 드디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혼란의 시대, 그 속에서도 사람은 살아진다. 문화대혁명 시기, 반혁명분자로 몰린 루옌스(진도명 분)는 감옥을 탈출해 부인 펑완위(공리 분)와 딸 단단(장혜문 분)을 만나러 오지만 공산주의 사상을 신봉하며 이를 통해 무용극의 주연이 되고 싶었던 딸 단단의 신고로 잡히게 된다. 하지만 결국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무죄로 판명받은 루옌스는 집으로 돌아오지만, 부인 펑완위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가 돌아오기로 한 매월 5일 남편을 기다린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문화대혁명 시기의 슬픔과 혼돈은 수많은 중국 영화에서 보여주듯 상상 그 이상이었다.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기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배신을 당할 수밖에 없던 어떠한 믿음도 없었던 어둠의 시대. 이런 어둠 속에서도 펑완위는 감정의 동요 없이 남편을 기다린다. 하지만 남편이 딸의 신고로 인해 다시 잡혀가게 되면서 삶이 흔들린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녀는 남편을 잃었던 그 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받아들이기 힘든 세상 속에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이 강요하는 압박과 가치관 속에서 사람들은 건조하고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 그냥 단지 '살아지는' 삶이지, 주체적으로 삶을 주도하는 '살아가는' 삶이 아니다.

나이 들어가는 사랑, 그 사랑의 아름다움 루옌스는 드디어 집에 돌아오지만, 가정은 이미 파괴되어있다. 부인은 돌아온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딸은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한다. 문화대혁명 시기 감옥에서 고생하고 간신히 돌아온 가정도 편안하지 못한 이 상황.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자신이 가정을 떠났던 그 긴 시간을 원망하며, 현재의 자신의 삶에 좌절하고 가족들에 대한 서운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루옌스는 달랐다. 자신이 함께 해주지 못한 시간을 안타까워하며 그동안 해주지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해주려 하는 따뜻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떠올리게 하기 위해 피아노를 조율하고, 자신의 쓴 편지를 매일매일 찾아가 읽어준다. 오랜 수감생활 탓인지 뭔가 하나씩은 어설픈 그의 행동 속에서 부부의 사랑이 느껴진다. 수감시절 내내 종이로 볼 수 있는 것이 생기면 부인을 향해 썼던 수많은 편지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은 그의 사랑을 상징한다.

어떠한 감정에도 강요하지 않고, 옆에서 그녀를 응원해주고 지켜봐 주는 그의 따뜻한 시선은 너무나도 자상하고 멋졌다. 불타는 모닥불 같은 사랑만이 사랑은 아니다. 거대하진 않지만, 천천히 자리를 지키며 오랫동안 함께하는 촛불 같은 사랑이 바로 이 부부의 사랑방식이다. 영화는 절대 먼저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잔잔하면서도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지만, 배우들이 터뜨리지 않은 눈물이 고스란히 관객의 몫이 되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뭉클하면서 슬픈 감정을 느끼게 된다. 특히 공리의 연기는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터뜨리지 않고 자신이 도달해야 할 그 선을 지킬 줄 아는 여배우, 먹먹하면서도 눈물이 날 것 같지만 흐르지 않는 그녀의 눈빛으로 관객은 매월 반복되는 그녀의 5일의 마중이 얼마나 슬픈지 충분히 공감한다.

   
 

큰 갈등 없이 진행되는 영화는 자칫 지루할 수 있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어둠에 빠진 중국을 관조하듯 바라보며 모든 것을 품어내는 장예모의 연출과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공리의 연기는 '거장'이란 무엇인가를 증명해내고 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지 못해 너무나 아쉬웠던 <5일의 마중>. 나도 매월 5일이 되면 역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펑완위의 기대가득한 표정과 그녀를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주었던 루옌스가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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