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복수는 누가 이루어냈는가?

[문화뉴스] '어른을 위한 잔혹동화'라는 책이 있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대요'라는 꿈 같은 결말에서 벗어나, 그렇게 맑고 밝지만은 않은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시선으로 다시금 동화를 재해석하려는 시도. 행복했던 동화가 '어른을 위한 것'이 되자 이토록 잔혹한 이야기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이 조금 씁쓸하기도 하지만, 하얀 종이가 어떤 색으로 물들어 가는 것이나 순수했던 아이가 세상에 물들어 타락해가는 과정이 슬프면서도 흥미롭듯, 이렇게 기존에 있던 마냥 해피한 그들을 비틀어 보려는 시도는 우리의 흥미를 자극한다. 그 과정은 또한 기존의 일차원적인 캐릭터들을 입체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선악이 분명했던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탈피하게끔 하는데, 바로 이전에 착하게만 보였던 주인공의 이면을 파헤치거나, 악인으로만 보였던 라이벌 혹은 적수의 인간적이고 안쓰러운 측면을 조명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시도이다.

   
 

세계적으로,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 '위키드'도 비슷한 경우이다. 고전 '오즈의 마법사'에서 나쁜 마녀로 등장하여 결국 죽음을 맞는 초록 마녀 '엘파바'가 왜 그런 캐릭터가 되었고,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어 악녀 취급을 받게 되었는지, 그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던 오해들을 뒤집어 설명해낸다. 반대로 기존에 착한 마녀로 알고 있던 금발마녀 '글린다'의 경우, 그 아름다운 모습 안에 숨겨졌던 자아도취적인 면이나 자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대중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등 그녀의 다소 영악한 모습을 짚어내기도 한다. 이처럼 상상력을 더해 뒤집어 해석함으로써, 이는 더 이상 원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킨다.

영화 '마담 뺑덕'은 고전 '심청전'에 대해 이러한 시도를 한 작품이다. 배우 정우성과 모델 출신 신인인 이솜이 주인공을 맡으며 주목을 끌었던 영화는, 심청전의 '뺑덕 어멈'을 주인공으로 하여 새로이 각색한 이야기를 다룬다. 뺑덕어멈과 심학규가 어떻게 만났고, 심학규는 왜 봉사가 되었는지, 뺑덕어멈이 왜 악처가 되었고, 청이는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쳐 어떤 성격의 캐릭터로 자랐는지를 설명해 낸다.

소설가이자 핸섬하고 매력적인 대학 교수 '심학규'는 자신이 가르치던 여대생과의 성추행 추문에 휘말려 쫓겨나듯 시골 마을로 내려간다. 이런 남편의 여자관계를 의심하며 불신이 커져 신경쇠약 수준의 우울증을 앓는 부인과 딸 '청이'가 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이들이 아니다. 자숙의 시간을 가지기보다 자신의 처지를 억울해 하고, 오지에서의 생활을 지루해하던 그는 그곳에서 시골 처녀 '덕이'를 만난다. 남자나 성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눈을 뜨지 못하고, 귀가 들리지 않는 어머니와 오순도순 사는 착한 딸이었던 '덕이'는 순수함의 결정체인 듯 보이지만, 실은 자유분방함과 열정을 깊이 숨기고 있던 뜨거운 여자였다. 그렇기에 사랑에 빠질 대상이 부재했던 그 마을에서 놀이공원의 매표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 하루를 소일했던 그녀의 심장은 이방인인 '학규'를 만나며 뜨겁게 달아 오르기 시작한다.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은 전혀 제약이나 고민거리가 되지 않은 채, 그저 그 순간 자신들의 감정에 충실히, 서로를 탐닉했던 그들의 관계는 학규에 대한 세간의 오해가 풀리고 그가 학교로 복귀하게 되는 순간 쉽게도 끝이 난다. 그렇게도 격정적으로 몸을 섞었건만, 정작 제대로 된 마음은 한 번도 나눈 적 없이 동상이몽의 꿈을 꾸고 있던 연인의 한계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자신의 아이까지 지우게 하고 매몰차게 서울로 올라간 학규를 덕이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만, 그는 덕이라는 존재를 부정하고 없는 듯 여기고 싶어하고, 그런 과정에서 덕이는 사랑뿐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대상까지 잃게 되고 만다.

마담뺑덕의 주인공인 '덕이'는 순수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마음이 짓밟혀 산산조각났을 때 한 인간이 보일 수 있는 모습을 지독하게 그려낸다. 어쩌면 덕이의 입장에서는 그 남자 하나, 사랑 하나만이 아니라 정말 자신의 전부를 잃게 되었으니 그에 대한 복수를 위해 스스로의 삶을 걸만도 하지 싶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덕이의 입장이다. 그녀로서는 마음을 다해 사랑했지만 자신을 내친 한 남자로 인해 가족까지 잃은 셈이지만, 그 책임마저 학규에게 물을 수는 없다. 그녀가 어머니를 잃은 것은 사고였고, 굳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유부남인 남자를 사랑하는 데 아무 죄책감 없이 자신의 감정과 쾌락만을 쫓느라 여력 없었던 그녀가 받은 벌이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그런 덕이에 대한 응징을 그녀로부터 배신당한 '심청'이 다시 한다. 학규에게 복수하기 위한 일환으로 청이를 이용한 덕이. 그것은 청이의 입장에서는 이기적이고 책임감 없던 부모 대신 자신이 유일하게 의지했던 대상으로부터 배신당한 것을 의미했다. 결국, 그녀는 고전에서 바다에 몸을 던진 심청이 왕비가 되어 돌아오듯, 강력한 권력을 등에 업고 다시 등장해 덕이를 벌한다. 아무 힘 없는 소녀였던 심청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지지 세력은 '용왕 그리고 임금'이었던 반면, 판타지가 아닌 현실에서는 돈과 힘을 손에 쥐기 위해 늙은 야쿠자의 애첩이 되었다는 설정이 씁쓸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다시 모든 걸 빼앗기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덕이가 그럼에도 학규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놓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처절한 사랑이다 싶지만, 어쩐지 그렇게라도 학규의 진심을 확인하고 그의 사랑을 다시 얻은 덕이는 그리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학규 역시 그렇다. 그들이 나누었던 마음 또한 사랑이었다는 그의 말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자신을 무너지게 한 것이 덕이의 복수극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나를 보며 복수를 완성한 기쁨을 즐기더라도 그녀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읊조리던 것이 단지 살기 위해 그녀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덕이의 가장 큰 복수는 학규를 망가트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를 잃게 한 것처럼, 청이라는 학규의 딸을 괴물로 변하게 한 것이지 않을까. 그래서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아버지, 의부증과 우울증을 앓던 역시나 이기적인 어머니 아래서 방치되어 자랐던 그녀, 믿고 의지했던 덕이에게도 버림받아 결국 생존을 위해 권력을 쟁취하고 휘두를 줄 아는 잔인한 여자로 성장해버린 청이가 극중 가장 불쌍한 인물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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