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을 거부할 용기…내 발로 걸은 만큼만 원하라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10대가 등장하는 스포츠 영화'라 하면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성장기 학생들이 갈등을 그라운드에서 풀고 하나의 팀이 되는 이야기.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쏟는 선수의 이야기. 라이벌에게 이기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견디는 이야기.
이렇게 청소년기의 고민, 우정, 열정, 낭만 등이 담긴 영화가 먼저 생각날 수 있다. 혹은 정지우 감독의 '4등'처럼 강요된 경쟁 아래서 상처 입은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를 수도 있다. 이번에 개봉하는 '걷기왕'은 '경보'를 통해 여태껏 잘 볼 수 없던 분위기를 가진 '10대'의 '스포츠'를 담는다. 그리고 그 중심엔 심은경이 있다.
경쟁을 거부할 용기
'걷기왕'의 주제는 명확하며, 예고편에서부터 드러난다. 심은경이 내레이션을 통해 말하듯, '조금 느려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분명히 알 수 있다. 백승화 감독은 이 메시지를 독특한 캐릭터 만복(심은경)과 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영화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대규모 상업영화에서 잘 볼 수 없던 표현과 자유로운 분위기를 '걷기왕'에서 만날 수 있다.
"꿈을 가지고 열심히 하라"는 말은 10대 대부분에겐 더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올리라는 말이 된다. 공부가 아니라면, 자신의 분야에서 경쟁하고 최고가 되어, 안정적인 미래를 쟁취하라는 말이 될 것이다. '걷기왕'의 만복도 '경보'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분야에서 경쟁하기 위해 무작정 '노력'을 하려고 한다. 남들에겐 어설퍼도 자신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에서 그녀는 만족을 얻는다.
하지만, 만복이 마지막에 찾은 답은 경쟁과 노력 밖에 있다. 그리고 "왜 열심히 해야 하는데?"라는 이 영화의 물음은 당황스럽고, 또 도전적이다. 마치 여태 한 번도 '열심히'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없었던 것처럼 낯설다. 현실의 부조리, 학교 시스템 등에서 청소년의 상처를 쫓던 영화들과 달리, '걷기왕'은 청소년에게 직접 질문을 던진다. 질문의 설득 여부와 상관없이, 이 영화는 관람자에게 한 걸음 쉬면서 자신을 돌아볼 순간을 선물한다.
내 발로 걸은 만큼만 원하라
어떠한 이동수단도 탈 수 없다는 만복의 설정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드는 동시에 철학적인 면이 있다. 그 어떤 도구의 도움 없이, 자신의 발로만 움직일 수 있는 만복. 그녀는 자신의 힘이 허락하는 만큼, 그녀가 노력한 만큼만을 걸을 수 있다. 자신이 노력 외의 것을 바랄 수 없는 이 소녀는 욕심을 낼 수 없으며, 욕심을 가지지도 않는다. 자신이 걸은 거리만 보고, 그에 만족할 뿐이다. 요행을 바라지 말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걷기왕'은 우리네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그래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 같다. 자신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만큼만 원해야 한다고 말이다.
심은경, 그녀의 레이스
'써니'에서 700만, '수상한 그녀'에서 800만 관객을 돌파한 심은경은 한국에서 몇 없는 20대 주연 '여'배우이며, 홀로 주연을 맡아 영화를 이끌 수 있는 배우다. 그런 그녀에게 '걷기왕'의 출연은 극 중의 만복처럼 자신을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한 시도라 할 만하다. 쉼 없이 달려온 심은경은 전작들보다 '걷기왕'의 촬영장에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고 한다. 많은 짐을 내려놓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준 그녀는 영화 속의 만복과 오버랩된다. 그리고 그렇게 이 영화는 '심은경'이라는 독특한 진실성을 획득하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가 그녀에겐 변곡점이 되지 않았을까. 원작 '노다메 칸타빌레'와 비교해 낮은 완성도를 보여준 이 드라마를 향한 비난은 자연스레 주연이었던 심은경에게로 향했다. 연기력과 무관한 지점에 대해서까지 지적을 받아야 했던 것은 무척 가혹했지만, 드라마의 실패 앞에 주연 배우는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가혹한 시련 뒤에 만난 영화가 '걷기왕'이었고, 그녀는 이번 영화를 통해 영화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과 자신의 삶을 무던히 걷는 방법을 찾아냈을 것 같다.
'걷기왕' 기자 간담회에서 다양성 영화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을 말하던 그녀의 인터뷰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을 위해서, 그리고 배우를 위해서 다양한 소재가 이야기될 수 있어야 한다는 심은경의 대답은 그녀가 자신의 역할을 영화 안팎으로 소화하고, 확장하는 배우임을 알게 한다. 이 20대 초반의 배우는 자신의 연기 영역을 확장하는 동시에, 영화 산업이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길을 걸으려 하고 있었다. 그녀를 한 걸음 한 걸음을 언제나 응원할 수밖에 없다.
아띠에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기자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