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브라운의 소설과 기호학…단테의 신곡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 '로스트 심벌'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쓴 댄 브라운의 소설은 내용을 알아도 영화로 보고 싶어진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문화 유적과 명화들은 비밀과 사연이 있고, 주인공 로버트 랭던은 이를 파헤치며 역사, 종교, 문화를 관통하는 수수께끼에 참여한다.
 
이야기의 구조만큼이나 매력적인 이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소설은 그림과 자료를 더해 개정판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로버트 랭던이 암호를 해독하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만큼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댄 브라운의 소설과 이미지
'다빈치 코드'는 소설의 명성에 비해 만듦새가 많이 부족한 영화였다. 그리고 아마도 이번 '인페르노' 역시 소설을 먼저 접한 관객에게는 아쉬운 영화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시리즈를 내놓을 수 있는 이유, 그리고 관객이 이 영화를 선택할 이유는 명확하다. 기호학이 풍기는 비밀스러운 분위기. 소설에서는 문자로만 접할 수밖에 없던 비밀스러운 문자 기호와 다양한 미술품들을 영상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도 매력적이다.
 
글자의 배열로 수수께끼를 만든 '애너그램'부터 시작해 댄 브라운의 소설엔 문자, 기호와 관련된 퀴즈가 넘치던 영화였다. 하나의 예로 '인페르노'엔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가 등장한다. 소설에서는 독자가 그저 상상하거나, 따로 찾아봐야 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이 하나씩 설명을 해주며(강의를 듣는 기분이었다) 관객을 몰입하게 한다. 이 외에도 문자로 접하던 다양한 퀴즈의 힌트들을 이미지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인페르노'엔 있다.
 
   
 
 
단테의 '신곡'
단테의 '신곡'은 여러 영역에서 인용된 고전이자, 많은 상징을 품고 있다. 이 책엔 단테가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지옥', '연옥'을 거쳐, 베아트리체를 만나 '천국'까지 가는 여정이 그려져 있다. 랭던의 표현을 빌리자면, 근데 지옥을 구체화하고, 개념을 정립한 것이 단테였단다. 그리고 그 지옥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된 것이 '신곡' 중 지옥 편(인페르노)이다. 이렇게 '신곡'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죽은 자의 세계와 지옥의 모습을 구체화했다는 것, 신의 영역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밀스럽고, 흥미롭다.
 
재개봉 소식이 전해지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세븐'의 골격도 단테의 '신곡'이었다. '세븐'은 성경에 있는 인간의 일곱 가지 죄를 중심으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신곡'은 이 살인 사건 및 영화의 주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인페르노'엔 단테가 구상한 지옥을 그린 '지옥의 지도'와 그의 '데드마스크'가 등장한다. 이들은 이야기의 중요한 비밀을 숨기고 있으며, 랭던은 이를 풀어야만 한다. 그와 함께 단테의 자취를 쫓아가면, 영화가 준비한 현대판 지옥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피렌체, 그곳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
다양한 기호와 명화들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즐겁지만, 사실 '인페르노'는 피렌체 등의 도시와 그 속의 유적지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더 매력적이다. 특히, 소설에서 랭던은 각 유적지에 있는 숨겨진 공간을 찾고, 통과하며 수수께끼를 푸는데, 이를 영상으로 보며 동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적지를 관광하는 것이 아닌, 비밀의 공간을 관통·탐험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베키오 궁의 500인의 방, 단테가 세례를 받은 산 조반니 세례당 등 역사, 종교, 문화가 어우러져 이야기를 피우는 공간을 '인페르노'로 볼 수 있어 정말 반가웠다.
 
랭던의 도주, 추격 장면을 진짜 이탈리아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공간 속에서 본다는 생동감이 '인페르노'를 봐야 하는 궁극적 이유가 될 것 같다. 비밀스러운 단테의 지옥도가 가진 수수께끼가 풀린 이후, 동력을 잃은 영화를 끌고 나가는 것은 피렌체였다. 이 공간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소설을 권하겠다. 하지만, 이 공간에 호기심이 있고, 소설 속 무대를 직접 느끼고 싶은 관객은 스크린이 좋은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랭던의 자취를 따라가는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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