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아띠에터) 조형근kareljay@mhns.co.kr. 글을 쓰고 싶은 음탕한 욕망이 가득하나, 스스로를 일단은 억눌러야 하는 현실.답은 유명해지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문화뉴스] 청년들이 한국을 탈출하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한국을 탈출하고 싶어하는 청년들이 늘어가고 있다.

혜성같이 등장한 '헬조선'이라는 단어하에, 상명하복의 군대식 사회문화, 저녁이 없는 삶,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갑질, 눈치싸움, 피로만 남은 정치와 쓰레기 수준의 인터넷 댓글 문화 등에 질린 청년들이 한국을 떠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해외 취업이나 유학, 이민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최근과 같이 사회 전반적으로 '해외가 답이다'라는 식의 생각이 깔린 적은 없었다.

필자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헬조선에 신음하기 이전인 2011년 12월 겨울, 체코에 있는 자동차 기업으로 이직했다. 국내 기업으로 이직했기 때문에 완전한 탈조선 개념으로 보기엔 어렵겠지만, 주재원 파견이 아닌 현지채용이었고, 그 말은 국내에 더 이상 사회보장제도와 관련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체류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작년 4월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3년 반 남짓 머물렀던 필자의 탈조선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경험을 토대로 나는 지금도 열심히

대한민국을 떠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는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몇 가지 말을 해 주고 싶다.

   
 

1. 직업의 귀천은 한국에만 있지는 않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을 때 자주 듣던 말 중 하나는 이런 말이었다. '외국은 남의 눈치 잘 안 보고 살지?' '거긴 청소부나 캐셔 같은 거 해도 사회적으로 무시 안 당한다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지 않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를 동경하고 한국을 떠나려 한다면 당신은 절대로 그 생각을 접어야 한다. 물론 필자가 전 세계를 다 살아보지 않았기에 이것이 옳다! 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유럽 내에서도 체코는 꽤 중앙에 위치한 편이고, 덕분에 각국에서 오는 사람들을 접할 기회도, 그들과 친해질 기회도 많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면 직업의 귀천이 해외에서 '없다'라고 말할 수 없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한국이 직업의 귀천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한다'

우리는 예전부터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지만, 그는 사실은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고 교육받은 것과 같다. 아이의 눈에 길거리를 깨끗하게 치우는 청소부가 나빠 보이겠나? 초등학교 때 꿈이 택시 기사나 버스 운전사라고 한 친구들이 과연 없었을까? 아이의 이 꿈을 교묘하게 달래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은 그들의 부모님이다. 어른의 눈에서 아이를 바라보고, 어릴 때부터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이 되게끔 하기 위해 교육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건 동양이든, 서양이든 절대로 다르지 않다.

진정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직업에 따라서 사람들을 멸시하고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가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는 그들의 사회상은 머릿속에서 나온 판타지인가? 사회 현상을 조금이라도 반영하지 않은 100% 픽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하위 계층은 상위 계층 사람과 못 어울린다. 다만, 해외에선 그런 사실을 깊이 신경 쓰지 않을 뿐이다. 깊이 신경 쓰지 않는다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본인이 자동차 부품 조립 라인에서 볼트를 체결하고 거기에 만족한다면 본인도, 타인도 거기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직업의 귀천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따라서 당신이 직업의 귀천이 없음을 동경하고 해외로 떠나려 한다면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들은 한국처럼 대놓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지, 그들 또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생각이 있다.

2. 첫 번째는 언어, 두 번째는 업무 전문성

당신이 해외로 떠나고 싶어한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업무 전문성에 앞서 외국어를 잘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잘하는 정도는 토익을 990점 맞고 OPic 시험에서 AL 등급을 맞으라는 소리가 아니고, 정말 당신이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처럼 그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외국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 하는 데, 일상 회화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나는 그 나라 말을 유창하게 한다? 아니다, 당신은 그냥 그 나라 말을 적당히 할 줄 아는 사람이지 유창하게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필자가 해외에 있었음에도 한국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어 업무의 과중성과 책임감에 지쳐 귀국을 결정했을 때 현지 인사팀장이 너는 체코에 잘 적응하고 회사에서 유일하게 체코어도 할 줄 아는데 왜 귀국하려 하냐고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필자의 설명을 듣고 난 뒤 그녀는 내게 "네가 조금만 더 체코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고 우리처럼 낮은 월급을 감수할 수 있다면 내가 소개해 줄 곳이 많을 텐데"라고 이야기했다.

당시 현장과 사무실 간의 기술 통역이나 회의 진행까지 현지어로 진행했던 내게 그 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나 정도면 유창하게 하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은 내가 한국 기업에서 현지인들을 상대로 일할 정도의 수준이었고, 현지 기업에서 현지인들하고 일하기엔 내가 모국어를 하는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잘 하지는 않는 정도다. 지금에 와선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게, 아무리 외국인이라지만 어휘의 용법이나 맞춤법이 미묘하게 틀린 사람을 직장인으로 높게 쳐주기는 당연히 어렵지 않겠나?

언어가 해결되면 다음 문제는 당연히 업무 전문성이다.

당신이 해외에 나간다는 말은 다시 말해서 외국인 근로자 신분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별다른 전문 기술이 없어 많지 않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본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이제 당신이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아무리 전문적인 기술이 있어도 의사소통이 안되면 쓸모없기에 언어가 가장 중요하지만, 언어만 잘한다고 해서 아무 일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갖다 쓸 정도로 전 세계의 노동시장은 인력이 부족하지 않다.

3.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 이유는 필자가 결국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우리 나라보다 인구 밀도가 높은 홍콩이나 타이완에서 일을 했으면 아마도 생각을 달리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가 일했던 체코는 총 인구가 고작 서울 인구와 비슷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면적은 한국보다 조금 작은 정도였다.

당연히 필자가 살았던 도시의 인구는 꽤 적은 편이었고, 머무르는 기간 내내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필자가 외향적이지 않은 성격인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현저히 적어지는 데다가, 서구 사회 특유의 퇴근 후 개인 시간을 중시하는 문화, 그리고 어찌되었든 이방인이기에 겪는 문화 차이 등이 겹치면서 결국 나는 그들 사회에 완전히 녹아드는 것을 포기하고 이방인으로 남았다.

   
▲ 체코 시절의 필자

이는 앞서 말했던 언어에서부터 비롯된다. 아무리 현지어를 유창하게 하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한다고 할지언정 결국 나는 태어나서 오랜 시간을 한국에서 지내왔고, 한국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이는 결코 한 순간에 단지 내가 해외에 살고 있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들의 문화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겪는 갈등을 홀로 견뎌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내가 그곳에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림으로써 혼자만 겪지 않는 상황으로 만들었다면 결론은 좀 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외국에 나가려는 당신은 이 사실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그리움은 소리 없이 당신을 어느 순간 강타할 것이고, 그를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면 결국 돌아오게 될 거라고.

어찌 보면 필자가 탈조선을 해야 하지 않을 이유에 대해서만 늘어놓은 것 같지만, 그저 본인의 경험에 따라 충동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잘 생각해 봐야 하는 부분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필자는 한국을 떠났던 사실도, 그곳에서 다시 돌아오기로 결정한 것 어느 하나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간 동안 자신의 시야를 한층 넓힐 수 있고,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 나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권장하고 싶다. 실패한다 한들 다시 돌아오면 되지 그게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최근의 대한민국은 분명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일지라도 충동적인 결정은 더 충격적인 결과로 본인에게 나타날 것이기에,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지금 한국을 떠나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그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했으면 한다. 돌이키면 삶은 모두 단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정까지 단순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이들의 삶을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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