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국립극단이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 여섯 번째 순서로 함세덕 작가의 '산허구리'를 고선웅의 연출로 무대화한다.

국립극단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는 근현대 희곡을 통해 근대를 조명해 동시대 한국인의 정체성을 묻고, 확인하고, 규명하고자 준비한 기획으로 2016년 상반기에는 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 김영수의 '혈맥'을 공연해 큰 호응을 얻었다.

'산허구리'는 함세덕 작가가 1936년 『조선문학』을 통해 21살의 나이에 발표한 첫 작품으로 식민지 시대 우리 민족의 궁핍한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동시에 당시의 참담한 사회상과 시대의 모순을 생생하게 재현하면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도 함께 보여준다.

국립극단 김윤철 예술감독은 "함세덕 작가는 짧은 기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펼친, 우리 연극사에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지만 현대사의 혹독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살아 충분히 조명 받지 못했다"며, ''서정적 리얼리즘'과 '어촌문학'이라는 큰 의미를 품고 있는 '산허구리'를 통해 그의 초기 작품을 재조명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다음으로는 관극을 앞두고 있는 관객들에게 연극 '산허구리'의 매력 포인트를 세 가지로 나눠 소개하고자 한다.

 

   
 

1. 비극의 원인을 찾아내고자 했던 '타고난 희곡작가', 함세덕
작가 함세덕(1915-1950)은 짧은 생애 동안 희곡 창작, 번안, 각색에 온 힘을 쏟아 부은 '타고난 희곡작가'다. 일제 말 암흑기에서 해방 후 혼란기, 월북 이후까지 불행한 민족사를 살다 간 탓에 뒤늦게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연극인들 사이에서는 1940년대 한국 연극계를 풍미한 비중 있는 극작가로 오래전부터 평가받아왔다.

1936년 『조선문학』에 '산허구리'를 발표했고, 1939년 3월 동아일보사에서 주최한 제 2회 연극경연대회에서 희곡 '도념(道念, '동승(童僧)' 1막)'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1940년 1월에는 희곡 '해연(海燕)'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본격적인 극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으며, 10여 년 동안 약 20여 편의 희곡을 창작, 각색, 연출했고, 그의 작품은 대부분 상연돼 대중의 호응과 공감대를 끌어냈다.

'산허구리'는 일제강점기, 삶의 터전이자 처절한 생존의 공간이었던 서해안의 어촌 마을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회의 모순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함세덕은 어린 시절을 보낸 어촌이야말로 자연의 서정성과 생존의 절박성을 뚜렷이 담고 있는 공간이라 생각했다. 섬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 어민들의 생과 사, 현실과 꿈을 작품에 담았으며, 어민들의 생활과 그들의 언어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을 통해 사실적인 희곡을 썼다.

서점의 점원 생활을 하며 접한 세계 희곡도 그의 초기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아일랜드 작가 존 밀링턴 싱(John Millington Synge)의 '바다로 가는 기사들(Riders to the sea)'은 '산허구리'의 모델이 됐다. 자식을 바다에 잃은 어머니의 비극이라는 상황은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배경과 인물의 행동 등을 한국적으로 풀어내 원작과는 다른 새롭고 독창적인 작품을 생산해냈다.

1930-40년대의 많은 작품들이 일제의 탄압정책으로 인해 당시의 가난을 보여주는데 그쳤지만 함세덕의 '산허구리'는 달랐다. 희곡은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가난 속에 참담한 삶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모순 가득한 비극의 원인을 찾아내 이 비극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를 내비치며 막을 내린다.

 

   
 

2. 각색의 귀재 고선웅, 대학 졸업 이후 사실주의 연극 첫 도전!
연출가 고선웅은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보유한 대한민국 대표 연극 연출가다. 중국의 고전 『조씨고아』를 각색한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2015년 연극계의 모든 상을 휩쓸었고, 그에 앞서 희곡 '푸르른 날에'를 자신만의 연극적 언어로 새롭게 각색해 감동의 깊이를 더했다.

'각색의 귀재'라고도 불리는 그가 이번에는 원작 희곡 그대로를 오롯이 전달하는 사실주의 연극에 도전한다. 그는 '산허구리' 연출을 제안 받고, 희곡을 읽으며 "등장인물이 '허구'가 아닌 '실존인물'로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데 감동을 느꼈다"며, "이 뜨거운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어 사실주의 연극을 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고 전했다.

또한 "사실주의가 이 시대 연극으로서 설득력이 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지만 원형을 회복함으로써 연극의 정신을 찾아보는 데에 큰 의의가 있을 것"이라며 대학 졸업 이후 처음으로 사실주의 연극에 도전하는 포부를 밝혔다.

 

   
 

3. 믿고 보는 국립극단 '무대'와 '배우'
무대 미술을 맡은 신선희는 오래 전부터 대본을 읽고 작품을 분석해 이번 무대의 큰 방향을 제시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3-4척의 배를 가지고 있었던 선주가 상어에 한 쪽 다리를 잃고, 첫째 아들과 사위를 잃으며 맞이한 몰락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손질되지 않은 초가집으로 형상화해 한 가정에 닥친 비극을 더욱 실감나게 그려냈다.

음악, 무대, 조명, 소품 등을 이용해 매 작품 관객에게 큰 감동을 선사해 온 고선웅 연출은 이번에도 과감하고도 강렬한 연극적 장치를 준비했다. 국립극단 관계자는 "공연 말미 어머니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둘째아들 복조와의 재회를 연극적으로 표현한 장면은 이번 연극의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될 것"이라 전했다.

오랫동안 무대를 지켜온 배우 우상전과 김용선이 바다에 다리를 잃고, 자식을 잃은 노어부와 그의 부인 역을 맡고, '한국인의 초상'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선보인 배우 정재진이 윤첨지 역을 맡았다. 이 외에도 박윤희, 백익남, 황순미 등 뛰어난 앙상블을 자랑하는 국립극단 시즌단원과 객원배우들이 당시 인물들의 말을 생생하게 구사하며 먹먹한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연극 '산허구리'는 다음 달 7일부터 31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된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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