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귀농할래?

[문화뉴스]

'우리 귀농할래?' 

2015년 어느 봄날. 정미의 뱃속에 다복이가 자라고 있을 때 우리는 서해의 어느 작고 이쁜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순간 내뱉어진 이 말은 몇 년의 몇 번의 고민을 거쳐 나온 짧지만 강한, 우리의 미래를 바꾸어 놓은 그런 말이었다.

대학을 위해 직장을 위해 서울에 머문 것이 십년 하고도 2년째. 다들 살기 힘들다 힘들다 말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살만하다고 서로를 위안 삼아 하루하루 버텨가고 있을 무렵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귀농'이라는 단어가 -사실 좀 더 나이가 들어 은퇴할 즈음 '귀촌'을 하고 싶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지만-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었다.

   
▲ 귀농기념 가족사진

꼭 귀농하는 이유를 글로 표현하자면 이런저런 이유로 책 반 권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아무래도 '가족' 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합할 것이다.

나는 배 속에 있던 다복이가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함께 하고 싶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작은 추억들과 사랑을 쌓아가며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왔다.

실천이 가장 어렵다고 했던가. 그것도 귀농이라니.
모든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야 할 상황에 딩간이(부인)는 잠깐의 고민 끝에 나의 결정에 따라주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봄, 온도도 날씨도 적당히 좋았던 날 어느 작고 예쁜 카페에 앉아 귀농을 결심하게 되었고 이 일은 벌써 일 년도 전에 벌어진 일이 되었다.

사실 어딘가 기댈 곳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나름 큰 결정에 주변에서 다들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장 걱정했던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반응도 뜻밖에 너무 기쁘게 받아들여 주신 덕분에 서울의 직장과 부천의 집을 모두 정리하고 충남 공주의 작은 시골 마을로 내려올 수 있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고 참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지난 나의 일들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조금씩 공유를 해 나가려 한다.

딩티음빼밀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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