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아띠에터) 조형근kareljay@mhns.co.kr. 글을 쓰고 싶은 음탕한 욕망이 가득하나, 스스로를 일단은 억눌러야 하는 현실.답은 유명해지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문화뉴스] 한창 혈기 왕성한 나이로 사회에 첫 발을 디디려 했던 청년이 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9일 본인이 살고 있던 원룸 건물에 화재가 발생한 것을 알고 본인이 대피한 이후에도 건물 이웃들을 살리고자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들기며, 이웃들을 구해내고 끝내 본인은 유명을 달리한 사람.

故안치범씨의 행동은 개인주의를 뛰어넘어 이기주의, 배타주의에 물든 불신 사회에 울리는 하나의 경종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속담이 현실처럼 들리는 이 세상에서, 어느 누가 이런 의로운 행동을 쉽게 할 수 있을까, 그는 우리 사회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영웅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키워드는 '웰빙'이었다.

IMF 관리 해제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하고, 신자유주의를 위시로 한 전 세계적인 경제 호황기에 한국 또한 표면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물론 그때가 살기 힘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사회 전반에서 아직 남을 배려하는 문화가 없어졌다고 보기 힘든 시기였다.

그러다 2008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면서 세계 경제는 지금까지도 유례없이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지속적으로 저성장, 불황이 이어지다 보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웰빙이란 말이 사라지고 최근에 나타난 '헬조선'이 상징적인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일베충, 맘충, 급식충, 온갖 벌레들이 인터넷과 현실을 넘나들며 날아다니고,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도왔는데도 피해자로 몰리거나 하는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굳이 남을 돕고 살 필요는 없다. 나 혼자만 일단 살면 된다. 이웃사촌이 아니라 적이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회가 팍팍해졌다. 웃음이 사라졌다.

   
 

이런 사회에 비추어 보면 그의 행동은 더욱 의롭게 보인다. 요즘 같았으면 119에 신고를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하고, 애초에 본인이 안전하게 대피했는데 119에 신고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그는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가 한 집 한 집마다 사람들을 깨우는 데 집중했다. 뜨거운 열기에 찌든 문고리를 잡아 손에 화상이 생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람을 구하는 일이 직업이라고 해도 이렇게 자신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살신성인하는 것이 쉽지 않을진대 그는 맨몸으로 그 일을 했다. 유독가스로 인해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야 한다며 희미해지는 자신의 의식을 붙잡기 위해 필사적이지 않았을까?

필자 또한 한 사람의 청년으로서, 평범한 시민으로서 그의 행동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세상이 점점 살기 어려워지고, 필자 또한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습관적으로 힘들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그의 작지만 큰 행동은 필자의 마음을 뜨겁게 울렸다. 비단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 또한 그에게서 먹먹함과 존경을 느낄 것이다.

   
 

힘든 세상임이 틀림없지만, 그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에게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좋은 정책과 정직한 경영으로 세상을 살기 좋게 해야 하는 것은 맞겠지만, 우리의 민도 또한 나만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세상으로 만들었지 않나.

사람다운 삶을 외치면서 정작 사람답지 않은 행동을 일삼는 사회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걸 던져 사람다운 삶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했다.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은 마음과 행동력으로 이 세상을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타인에 대한 배척이나, 과도한 회피는 이제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고인의 용기와 값진 희생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며 그가 울린 이 경종이 힘든 사회를 조금이나마 풀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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