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나는 그를 마왕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아침 자습시간에 조는 한이 있어도 그의 목소리는 반드시 듣고 잠이 들었다. 새벽 시간 전파를 통해 그와 그의 추종자들, 그리고 나와 형성되는 관계는 은밀하다고 느껴졌고, 또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마왕은 세상을 마음껏 비웃고 비꼬는 것 같았지만, 정작 마왕의 노래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넥스트이었을 때에도 신해철이었을 때에도 그의 노래는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다.

며칠 전 신해철이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만 해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왕이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여유롭게 받아들이고 때로는 조롱까지 하며 웃음을 아끼지 않는 마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왕의 응급실행은 그저 세월의 흐름에 몸이 불어버린 마왕에게 다가온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마왕이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니…우리의 마왕은 죽음 앞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세상에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지…궁금해졌다.

그렇게 사랑했던 아내와 아이에게 미리 유서를 써놓았던 마왕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그는 마왕인 것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나와 마왕의 연결고리는 끊어졌다. 내가 라디오를 듣는 일이 거의 없었다. 마왕은 점점 양지로 진출하는 것처럼 보였고, 내가 알던 예전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방송에 비추어졌다. 하지만, 마왕이 방송에서 어떤 말을 하건, 어떤 행동을 하건 그는 언제나 고등학교 시절 마왕의 모습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는 예전과 똑같은 마왕이 아니었지만, 난 여전히 그와의 유대감을 느꼈고, 마왕에게서 보이는 시간의 흐름이 나에게 적용되는 시간의 흐름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며, 또 다른 유대감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마왕을 볼 수가 없다. 어딘가 과거의 사고방식으로 현재와 우습게 맞서는 마왕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슬프다. 그렇게 세상과 기존 관습과 고정관념을 비판하던 그는 알고 보면 진짜 로맨티스트였고, 날카로운 턱선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두터운 살과 바꿔버리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아이돌을 비판했지만 알고 보면 S.E.S 덕후였다. 그의 이야기는 학창시절 우리의 중2병을 제대로 자극해 주었고, 그는 우리의 특별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생각해보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의 음성이 어떻게 비밀스러운 유대관계일 수 있겠느냐 싶지만-어쨌거나 불특정 다수인 대중에게 전달되는 전파 아닌가- 그의 생각과 이야기는 신기하게도 은밀한 유대감을 형성시켜주었다. 그 추억과 그 유대감이 지금까지도 그를 응원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아마도 그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비판과 야유가 단순히 허세가 아니라 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사고와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마왕의 이야기들은 가치관을 한창 형성해가는 중고등학교 시기에 청소년들의 공감을 사기도 하고, 또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으리라.

마왕은 과연…마지막 순간…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세상에 대한 비판?? 자신의 죽음마저 여유롭게 받아들였을까? 하지만…내 생각에 마왕은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고 싶어 했을 것 같다. 그는 정말 로맨티스트이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의 죽음을 전해 듣는 순간.. 나는 그의 노래 한 곡이 떠올랐다. 'Lazenca(라젠카) Save us~Lzenca Save us~'. 왜 Lazenca 는 마왕을 구하지 않았을까? 아니면…구하지 못한 걸까? 그냥…마왕의 죽음이 Lazenca 의 탓인 것도 같아. Lazenca 를 살짝 원망해보았다. 마왕이 살아있다 한들 마왕의 목이 다쳐서 들을 수 없는 노래이지만 왜인지 마왕의 목소리로 한번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마왕이 Lazenca 였던 걸까?

이제 우리는 세상을 비판하면 여유롭게 웃던 마왕 특유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마왕의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없다. 그리고 마왕의 해탈한 듯한 태도도 직접 볼 수가 없다. 마왕은 떠나간 그곳에서 진짜 마왕이 되어서 예의 그 독특한 웃음을 웃으며 이렇게 슬퍼하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 덧 
마왕~ 진짜 마왕이 되려고 떠나간 건가요? 당신이 있어서 즐거웠던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서 위로 되고, 또 즐거웠습니다. 새로운 그곳에서도 많은 이들과 은밀하고 즐거운 유대감을 형성하며 그 즐거운 모습 간직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족 걱정 죽 하면서요. 마왕~~이 힘든 세상을 위해 Lazenca 좀 출동시켜줘요. 가족들을 위해서도 출동시켜줘요. 마왕~~ 엄청나게 보고 싶을 겁니다.

 

[글] 아띠에떠 해랑 artietor@mhns.co.kr

대중문화칼럼 팀블로그 [제로]의 필자. 서울대에서 소비자정보유통을 연구하고 현재 '운동을 좋아하는 연기자 지망생의 여의도 입성기'를 새로이 쓰고 있다. 언제 또 다른 종목으로 여의도에 입성하게 될는지. 여전히 나의 미래가 궁금한 인간. 나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여자, 말 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여자'.*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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