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코' 역을 맡은 배우 백석광 ⓒ 국립극단

[문화뉴스] 배우들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화제의 연극 '로베르토 쥬코(Roberto Zucco)'가 무대에 오른다.

국립극단이 프랑스 극작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의 대표작 '로베르토 쥬코'를 오는 23일부터 다음 달 16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콜테스가 실제 유럽에서 일어난 이탈리아의 연쇄 살인범 '로베르토 쥬코 Roberto Succo'의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1988년 쓴 '로베르토 쥬코'는 콜테스가 세상을 떠난 후 1년 뒤인 1990년 베를린 샤우뷔네 극장에서 페터 슈타인의 연출로 독일어로 초연됐다.

 

   
연출가 Lorenzo Malaguerra ⓒJulie Lachance

이번 공연은 프랑스 연출가 장 랑베르-빌드와 스위스 연출가 로랑조 말라게라가 공동 연출을 맡았다. 두 연출가는 5년 전부터 호흡을 맞추며, 스위스, 프랑스, 벨기에 등지에서 '벌들의 지혜', '고도를 기다리며', '리차드 3세'등을 공동 연출해왔다.

연출뿐만 아니라 작가이자 배우, 디자이너로도 활동하는 장은 '로베르토 쥬코'의 무대와 의상 디자인도 맡아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무대미학을 선보인다. 감옥, 집, 쁘띠 시카고, 지하철, 경찰서, 기차역 등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장소는 간단한 무대장치로 빠르게 전환되고,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연극적 도전에 응답한다.

두 연출은 "쥬코는 서양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나 찾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인물로 희곡의 배경인 유럽을 벗어난 한국 배우들의 전형적이지 않은 연기가 흥미롭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국립극단은 국내 배우들과 해외 연출의 협업을 통해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고전을 만들어내고 있다. 김윤철 예술감독은 "콜테스의 작품 세계와 문화적 배경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연출을 통해 현대고전에 실험적, 현대적으로 접근하되 고전이 가진 근본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한국에서 추상적으로 표현되기 일쑤인 세계고전을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이번 공연의 도전"이라고 전했다.

주인공인 '로베르토 쥬코'는 지난해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광기와 분노, 결핍을 가진 연산을 탁월하게 표현했던 배우 백석광이 맡아 열연한다. 한편, 이번 작업은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 공식 인증사업으로 선정됐다.

'로베르토 쥬코'는 대표적인 현대프랑스 연극 레퍼토리 중 하나다. 세상의 모든 폭력이 스며들어 있는 작품이라 칭해지며 현대사회의 타락, 모순, 자본주의에 토대한 난폭한 인간관계, 가족관계의 분열, 소통의 부재 등을 고발한다. 실제 유럽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던 이탈리아의 연쇄살인마 로베르토 쥬코의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었던 탓에 프랑스 일부 지역에서는 초기 몇 년 간 공연이 금지된 적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오늘날 세계에서 일어나는 테러, 폭력, 맹목적 살인을 현상적으로 다루기보다 근저에 자리 잡은 인간의 폭력과 악을 근원적으로 다뤄 현대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단순히 살인의 상황을 묘사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살인자와 피살자 사이의 관계, 군중 속에서의 독백을 통한 인간관계의 단절을 보여주며 비극적 영웅의 보편적 모습을 보여준다. 장과 로랑조 연출은 이번 공연에서 "원작에 담겨있는 광기, 폭력, 비극 뿐 아니라 유머, 부드러움, 경쾌함까지 함께 보여주고자 한다"고 전했다.

 

   
ⓒ 국립극단

베르나르-마리 콜테스는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1983)', '서쪽 부두(1986)',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1987)'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프랑스의 대표 작가다. 1989년, 마흔 한 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는 사무엘 베케트, 외젠 이오네스코, 장 주네 이후 주목 받는 작가가 없었던 프랑스 연극계에 다시 한 번 텍스트의 힘을 보여주며 '작가의 시대'를 열었다.

그의 작품은 작가 사후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상연되고 있으며, 1990년대 이래로 국외에서 작품이 가장 많이 공연되는 프랑스 작가다. 그는 반항적이며 무일푼인 도시의 주인공을 통해 주변인의 시각에서 현대사회에 가득한 불의와 폭력, 욕망을 자신만의 언어로 비판한다. 러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쓰인 현실의 어두운 모습들은 시적인 언어와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연극 '로베르토 쥬코' 출연 배우들 ⓒ 국립극단

'로베르토 쥬코'는 국내에서는 2002년 7월, 극단 76단의 기국서 연출로 초연된 바 있다.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주인공 쥬코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은 국립극단 시즌단원이 맡아 최고의 앙상블을 선사한다.

공연 관계자는 "이번 공연은 유럽에서 활동하는 두 명의 연출과 함께 대사를 하나하나 읽어가며, 희곡에 담긴 문화적 배경, 감정의 강도, 콜테스만의 유머 등을 되살렸다"고 전했다. 원본이 가진 뉘앙스가 매우 명확해져 연극학도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도 '로베르토 쥬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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