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기사는 정문식 이사장님의 강연을 재구성해 쓴 글로, 실제 강연의 내용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문화뉴스] 지난 1일 홍익대 조형관에서는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이하 홍우주)'의 정문식 이사장의 강연이 펼쳐졌다. 해당 강연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서 예술가는 어떻게 배제되는가"를 주제로 삼았다.

올해 '홍대앞 거리미술전'에서 주목한 홍대앞 공간의 문제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빼놓고는 설명이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전면에 배치한 이번 강연은 홍대앞과 가장 밀접한 내용을 다룬 것이었다.

정문식 이사장이 재임하고 있는 단체, '홍우주' 또한 그러한 사항에 충실하게 부합한다. 정문식 이사장의 강연은 청년,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 위한 동반자로서의 '홍우주'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 시작됐다. '홍우주'는 지난 2014년 8월 27일, 홍대앞 문화예술 생태계의 보전과 지역 관련 법 제도에 대한 개입을 목표로 창립됐다. '홍우주'는 2주년을 맞이한 현재에도 홍대앞 문화예술 생태계의 대표적 협의체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홍우주'는 홍대앞 현안 이슈 공론화 및 개입을 통한 공공성 확보와 자체 사업 운영을 통한, '홍우주'의 운영 지속가능성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홍우주'가 홍대앞 문화예술 생태계 공공성 실현을 이루고, 자치권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홍우주'가 이야기하는 문화생태계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인해 파괴되기 이전 홍대앞의 문화 생태계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떻게 파괴됐을까?

홍대앞의 문화는 오히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현상에 가려져 제대로 보여지지 않은 건 아닌가. '젠트리피케이션' 앞, 그 이전의 홍대앞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정문식 이사장의 강연은 그러한 물음을 해소시킨다.

컬러TV를 보고 자란 세대
홍대앞을 만들다

정문식 이사장은 홍대앞에 독보적인 문화생태계가 형성된 연원을 1980년, 컬러 TV 방송이 시작된 데서부터 찾는다. 그 이전 세대, 흑백 화면이 나오는 TV 앞에 앉아 있던 시기의 젊은 세대는 군사정권의 냉엄함을 거치며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이루기 위한, 운동권 조직 안에서의 한 존재였다. 이들을 80년대 학번이라고 하면 컬러 TV 앞의 세대는 90년대 학번이다. 이들의 세계는 앞세대가 보았던, 단조로운 흑백의 세상이 아니었다. 색을 보고 자란 그들은 자신의 색을 찾기를 원했다.

그로부터 한국 사회에는 "나"의 씨앗이 심어지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개인적 성향을 드러내는 세대가 등장했던 것이다. 컬러 TV로 대변되는 경제성장과 군사정권 시대의 종막은 내가 거대담론의 일부로써만 존재하지 않는, 개인적인 나의 등장을 촉발시켰다. 검열이 철폐된,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컬러 TV 앞의 세대, 90년대 학번의 젊은 세대는 놀기 시작했다. 홍대앞 문화는 그 가운데 탄생했다.

90년대는 이른바 문화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던 시대였다. 문화 엘리트주의, 권위주의에서 탈피한 이후의 시대에서 문화의 진입장벽은 한없이 낮아졌다. 아주 재능 있는 이들의 전유물이었던 문화와 예술은 "평범한" 사람들의 것 또한 되었다. '크라잉넛'을 필두로 하는, 수많은 인디 음악 가수들의 노랫소리가 거리를 메웠다. 이들 인디 가수들은 이전 세대처럼 빼어나게 잘하지 못해도 괜찮았다. 그들의 노랫소리는 여전히 문화이며 예술이었다.

번듯하지 않아도 젊고 활기 넘치는 거리,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거리로는 차츰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들어섰다. 작업실에서 놀며 "예술하던" 사람들의 무리는 더 "잘" 놀기 위해 그들 스스로 술집도 만들고 라이브 클럽도 만들었다. 평범한 술집이었는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라이브 클럽이 된 사례도 허다했다. 단지 놀기 위해서 모여들었던 사람들, 그들이 놀다 보니 된 현재 홍대의 모습. 이처럼, 홍대앞 형성에 관한 이야기에는 전설 같은 데가 있다.

전설은 현재로 이어지지 못하고
과거와의 단절을 확인하게 할 뿐
홍대앞 예술가들, 그들에게 한때의 추억으로만 자리하고 있는 '전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정말로 전설일 뿐이다. 불과 30년도 지나지 않은 시기에 시작된 일인데 2010년대의 젊은 세대에게 그 시절의 홍대란 고전 낭만의 흔적처럼 멀고 낯설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가. 정문식 이사장은 하나의 구체적인 어휘로 상황을 설명한다. "단절"이 일어난 것이라고.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가 연속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강연은 홍대앞에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개입되는 지점을 지적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문식 이사장은 말한다. "홍대앞의 예술가들은 자본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젠트리피케이션'은 본질적으로 자본에 의해 발생되는 현상이다. 예컨대 홍대의 거리라고 했을 때 흔히 떠올리는 버스킹, 예쁜 디저트, 공방들 따위의 광경들이 모이고 모여 생태계라고 할 만한 문화를 이루었을 때, 자본은 "예쁘게" 일어난 공간을 놓치지 않고 그 소박한 생태계 속으로 파고든다.

   
 

자본이 도입시키는 약육강식의 제안이란 도저히 이겨낼 도리가 없어 보인다. 그들은 돈이 있다. 그래서 임대료가 오르고, 돈이 풀리기 시작하면, 기존의 작고 사소한 풍경들은 시름시름 저 멀리 내쫓기게 되지 않던가. 그것이 '젠트리피케이션'의 공식이지 않나.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의 전개 양상을 자본에 의한 일방적 추방으로 끝내버린다면 '젠트리피케이션’은 정말 대응할 수 없는 절대적인 흐름이 되고 만다.

정문식 이사장은 강연에서, 홍대앞 문화 생태계를 탄생시켰던 최초의 90년대 개인주의가, 2010년대에도 그대로 머물러 있었음을 지적한다. 홍대앞 문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었던 개인주의는 20년이 더 지난 2010년대, 공동체적 연대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표상되는 자본의 거대한 힘에 맞서 싸우려면, 홍대앞 문화 속 수많은 개인들은 연대해야 했다.

"설마 우리가 여기서 밀려날까?" 안일한 판단은 설마를 사실로 만들었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서 막상 예술가들은 배제됐다. 연대하지 못한, 흩어진 목소리는 힘이 되지 못했다. 놀면서 만들었던 땅에서, 홍대앞 문화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이제 그들이 가장 잘하는, "잘 노는" 것만으로는 홍대앞을 지킬 수 없었다.

리바이스, 나이키 등의 매장이 1년도 버티지 못하고 나갔던 자리로는 200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거대 자본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후 홍대 거리가 프렌차이즈 가게들로 뒤덮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렇다, 예술가들은 '연대'를 놓쳤다
연대를 놓친 자리에는 구멍이 생겨나고

그렇게 지금의 세대는 기억하지 못하는, 전설 같은 홍대의 모습을 안고서, 홍대앞 문화 생태계를 노닐던 예술가들은 다른 공간으로의 이주를 시작했다. 정문식 이사장은 말한다. "하지만, 자본은 어디를 가든 무섭게 따라왔다"고. 예술가들이 옮겨간 곳은 곧 자본의 손에 점거되기를 반복했다. 자본의 추적을 피해 떠나고 떠났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물며 예전과는 달라진, 잘못된 홍대앞을 빠져나와도 예전 같은 진짜를 다시 한 번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90년대 학번들이 누렸던 삶의 자유로움은 IMF를 기점으로 이후 세대들과의 단절을 낳았다. 장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홍대와 다음 세대의 홍대는 달랐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홍대가 아닌 곳에서는 싹조차 틔울 수 없었다. 정문식 이사장은 혹자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되고 있는 현상이며 홍대앞을 지킬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문식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주지시킨다.

일본은 예술가 자신이 지방에 살아도, 도쿄까지 반드시 올라갈 이유는 없다. 지방씬(scene)이 잘 구축되어 있는 까닭이다. 한국은 다르다. 지방씬이 갓 태동하기 시작했던 90년대 후반, IMF의 그늘이 밀어닥쳤다. 지방씬은 미처 성장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서울도 사정은 같다. 서울에서도 홍대를 대체할 공간은 없다. 대체 불가능한 공간의 붕괴는 그 공간이 수행하고 있었던 역할이 뻥 뚫리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대체재를 찾지 못한 문화에는 공백이 생긴다. 그동안 형성되었던 문화적 여건이 다음 세대에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대체재가 없는 상황에서 문화적 공백이 생기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홍대앞 문화 생태계의 유지는 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자본이 진출한 홍대앞의 문화를 지켜나가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왜 대응하지 못했는가
예술가는 예술가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홍대앞은 왜 이렇게 상업화로 힘들어졌을까. 정문식 이사장은 예술가들에게 이러한 현상과 관련된 개념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노력을, 대응을 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예술가에게 오로지 예술만을 요구하는 예술 지상주의가 팽배해 있다. 현실적 여건,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현상에 현실적으로 발 맞춰 대응하기에, 예술가에게는 예술의 자유만이 보장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술 밖으로 나가 현실을 인식하는 예술가를, 사회는 못미덥게 본다. 예술가 자신도 스스로가 그러한 예술가의 규정에 충실한지 검열하지 않을 수 없다. 정문식 이사장은 그러한 예술 지상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종용한다. 예술가에게는 예술가의 정체성만 있는 게 아니다. 생활인이기도. 시민이며 노동자이고 같이 살아가는 존재다.

정문식 이사장은 홍대앞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비단 예술가들의 결집이라는 원인을 통해서만 발생된 사건은 아니었음을 지적한다. 몇 년 전, 저금리 상태가 지속되자 금리 인화와 규제 완화에 따른 담보대출을 통한 건물매입이 급증했다. 홍대앞 건물들은 그런 식으로 매입되고, 세가 놓였다. 빚을 내 홍대앞 건물을 산 건물주들은 이자를 어떻게 충당하기 위해 월세를 올렸다. 그렇게 홍대앞은, 홍대앞을 만들었던 기존의 가게들이 지세를 버티지 못하는 공간이 됐다.

정문식 이사장은 이렇듯 예술가의 현실은 정치, 경제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예술가가 사회 참여적 활동을 하라는 말과는 다르다. 삶을 살아가는 부분에서 삶과 예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과, 나는 예술가이므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 예술가는 예술가와 예술가가 존재하는 실제 삶을 계속 분리시켜왔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현실에 대응할 힘을 가지지 못한 예술은 지켜지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시, 연대가 필요하다
"우리는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에라도 연대의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홍대앞은 더러워졌다"…… 내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도망치지 마라

프랑스에는 '앵떼르미땅'이라는 이름의 예술인 복지법이 있다. 한국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예술인 복지법은 이를 본 딴 것을 한다. '앵떼르미땅'은 국가에 등록된 예술가가 일정 시간 이상 예술 활동을 하면, 그 나머지 시간에 대해서는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70년대 생성된 것인데, 이 제도를 만들기 위해 프랑스 예술가들은 여러 해 동안 투쟁을 이어갔다. 그 결과 그들은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을 가지게 됐다.

정문식 이사장은 이러한 연대의 힘이 홍대앞에서도, 한국 문화예술에서도 이룰 수 있기를 원한다. 정문식 이사장은 '젠트리피케이션'과 홍대앞 문화의 지속을 위한 키워드가 연대에 있다고 믿는다. '홍우주'의 그러한 생각에서 비롯됐다. 정문식 이사장은 예술에 대한 지향만을 생각하던 지난날에서, 연대로의 전환이 중요해졌음을 강조한다.

예술가로서 살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유목민의 삶을 본 따 만들어진 '노마디즘'은 예술가의 양식으로서 작동한다. 한 곳에 매여 있지 말 것. 홍대앞을 살아 숨쉬게 했던, 그리고 홍대앞에서 살아갔던 이들은 홍대앞의 변화 이후 홍대를 떠나는 것을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했다. 정문식 이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홍대앞은 더럽다." 예술가들은 순수한 예술가들의 터전이 아니게 된, 쇠락한 홍대앞의 생태계에서 기꺼이 떠나가고자 했다.

그들은 망원동, 이태원 등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정문식 이사장은 지역적 기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정문식 이사장은 내가 창작하며 살아가는 이 지역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고, 그를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데 필요한 수단을 연대로 제시하고 있다. 순수한 예술로의 탐색은 결국 도피와 다르지 않다. 영구하게 순수한 예술적 공간이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홍대앞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한 논의는 결국 현상 자체에 대한 대처에만 한정된 것이 아닌, 홍대앞의 예술가인 자신이 어떤 삶의 양식을 가질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홍대앞 거리미술전'의 포럼으로 마련된 정문식 이사장의 강연은 그러한 부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었다. 정문식 이사장은 홍대앞의 전성기를 누렸던 세대 중 한 사람으로서, 후진들에게도 자신이 겪었던 것과 같은 행복한 기억을 이어줄 수 있기를 원한다.

정문식 이사장이 누렸던 홍대의 전성기는 삶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력이 허용되는 시대에 자리했다. 시대는, 이탈하는 삶을 종용했다. 흔하게 사는 인생은 우스웠다. 당대의 고용 안정성은 사회적 분위기의 자유로움을 이끌었다. 그때도 지금도, 예술이 일종의 객기에 바탕을 둔다는 사실은 같을 것이다. 그저 하는 것.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객기를 부리다가는 조금만 미끄러져도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고 마는, 다음 기회가 없는 시대다.

그래서, 홍대앞이 여전히 행복한 공간일 수 있다면
그래서, 홍대앞을 여전히 행복한 공간이게 하기 위해

그러나 홍대앞의 영화가 전설로만 머무르지 않는다면, 단절된 기억이 아닌 현재로 물려질 수 있다면, 홍대앞의 예술가로서 경험했던 행복한 시간들은 후대에도 이어질 수 있다. 이를 통해 홍대앞은 여전히 행복한 기억의 공간으로 남겨질 수 있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거쳐 간 누군가에게는 좋은 기억이 있는, 유지되기를 바라는 공간이, 이제 현재의 시간을 걸어갈 누군가에게는 좋은 기억을 만들어갈 진행형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강연은 홍대앞의 예술가인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논의이기도 한 동시에, 행복할 수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내가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는 삶, 정말 이기적으로, 내가 정말 좋은 게 무엇이며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삶. 정문식 이사장은 그러한 삶에 대한 고민 곁으로, '나'에서 확장되는 '함께', 연대의 말 역시 전한다. 나뿐만 아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삶.

정문식 이사장은 그러한 삶에 대한 고민을 위축시키는, 사회에서 주입하는 불안에 대한 답을 다음과 같은 말로 돌려주며 강연을 마무리한다. 정문식 이사장은 체 게바라의 말을 인용한다.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네가 계속 페달을 밟는 한 너는 넘어질 염려가 없다." 그러므로, 페달을 밟고 있는 당신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문화뉴스 김미례 기자 prune05@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