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망 와 레훌레레의 '우주의 또 다른 막간 궤도'.

[문화뉴스] 일본 시인이자 철학자인 다니카와 슌타로는 1952년 발간한 시집 '20억 광년의 고독'에서 화성인의 활동을 가리키는 말로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Neriri Kiruru Harara)를 명명했다.

 
팽창하는 공간, 초시간의 고독과 마주해 우주 생명체를 호명한 다니카와 시인의 상상력은 제1차·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당시 '여진'이 열어젖힌 외계 속으로 연대의 신호를 쏘아 올렸다. 정확하게 화성인이라는 다른 타자를 향해 연대의 신호를 준 것이다. 상상 속 화성인의 말을 제목으로 정한 가운데, 다양한 세대의 문화권의 작가들이 전쟁과 테러, 재해, 빈곤 등 전 지구적인 재난과 불안정성과 마주해 상상하고 제안한 미래상이 펼쳐진다.
 
9월 1일부터 11월 20일까지 81일간 서울시립미술관(SeMA) 전관인 서소문본관, 남서울생활미술관, 북서울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를 연다. 올해로 9회를 맞이한 '미디어시티서울'은 백지숙 예술감독의 말처럼 "반도이자 분단으로 단절되어 있다는 의미의 섬인 남한에서 편집해보는 어떤, 세계의, 미래상"이 기획 의도다.
 
31일 오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이를 알리는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서울시립미술관 김홍희 관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 많은 비엔날레가 세워졌다. 비서구권에서 열린다는 장점이 있는데, 우리 미술관이 수행하는 비엔날레는 미디어에 초점을 두는 것이 다른 비엔날레와 구분된다"고 입을 열었다.
 
   
▲ 서울시립미술관 김홍희 관장이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
 
김 관장은 "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점점 확장되고, 예술감독의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미디어아트를 경험했다. 올해는 특히 '미디어시티서울'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아보려 한다. 서울이 미디어적 특성인 첨단 기술로 점철되고 있다. 이것이 미래 사회에 대한 우려로 연결되면서, 가치적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홍희 관장은 "백지숙 예술감독도 이러한 견지에서 예술언어로 미래를 점쳐보고,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화성인의 언어로 축약된 전시회를 기획한 것 같다. 여러 작품이 비엔날레에 출품됐는데, 감독의 아이디어와 주제의식을 충족시키리라 본다. 비엔날레를 직영하는 미술관 으로서, 이번 비엔날레는 과거와는 다른 특성을 보여주려 한다"고 선언했다.
 
김 관장은 "참여 작가 가운데 젊은 작가, 여성 작가, 비서구권 작가가 많이 포함되면서 미래적 대안의 시각을 보여줬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번 비엔날레는 서소문본관을 비롯해 남서울생활미술관, 북서울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등 미술관 전체에서 이뤄진다. 미술관의 탈중심화를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백지숙 예술감독은 기획 노트를 통해 "처음 비엔날레가 시작했을 당시엔 미디어가 주는 장밋빛 미래의 예상과 기대를 보여준 것 같다. 하지만 올해 한 치 앞 시계도 분간하기 어려워진 이곳에서 요청하는 미래는 재난의 파고가 한층 높아진 이후 절박해진 공간 감각과 관련이 있다"며 "전면화된 불안정성과 유동성, 우발성은 역사에 대한 안목과 사상의 시야를 급속히 근시화하고, 윤리와 심성의 지평마저 협애화한다"고 이야기했다.
 
   
▲ 백지숙 예술감독이 프레젠테이션을 살펴보고 있다.
 
이어 백 예술감독은 "우리는 원치 않는 상황으로부터 한편으론 공포와 불안에 엄습 당하고, 다른 한편으론 변덕과 혐오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이 전시를 준비하는 1년 사이에 초대한 작가가 머무르는 세계 도시에서 여러 번, 자주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테러, 재난, 난민 이슈 등이 이메일을 통해 전해졌다. 이러한 소식을 걱정하는 것에도 이들과 연결됐다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곤 했다"고 회상했다.
 
백 감독은 "때문에, 파국으로 치닫는 '대홍수'가 세계 거주민들을 오갈 곳 없는 지대로 긴박하게 내모는 순간에, 비로소 가능해지는 역설적 계시가 드러남을 우리는 간절히 고대한다. 몇 차례 종말론을 치른 예술이 스스로 과거를 해체하며 장애의 시간을 견디게 할 뿐 아니라, 시야를 쪼개고 지평을 찢어, 사이사이에 미래의 형성이 드러나게끔 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미디어시티서울' 2016은 이제는 어떤 외부도 상정할 수 없게 된 인류세의 도래를 틈타, '구성적 미래'에 관한 탐사를 선보인다. 예술가들은 익숙한 모어(母語)를 통해 외계어를 상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창안한 언어를 이계(異界)로 전파하고자 한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예술가들은 테크놀로지로 복각한 고대인의 노래를 관람객의 귀에 들려주고, 알 수 없는 글을 남긴 사상가의 일기를 상상의 눈으로 독해하며, 미지 언어를 신체만으로 통역하다.
 
기성 언어를 해체하고 재조립해 작동하는 여러 허구적 전체 뜻을 매개하면서 작가들은 우리가 어떤 해명의 층위에서 소통하며 궁극적으로 알아채게 되는 지점들이 어디인지 직접 시연한다. 이렇게 주어진 가시 세계를 넘어, 다차원의 시공간을 열어젖힐 수 있는 다양한 이행 형식들이 비엔날레를 통해 형성된다.
 
   
▲ 태국 아티스트 크리스틴 선 킴이 '기술을 요하는 게임 2.0'을 시연하고 있다.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에선 현재 포스트 인터넷 환경에서 이미 상용화된 드론, VR(가상현실), 구글어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3D 프린팅, 게임과 인터랙티브 미디어 등의 테크놀로지들이 동원된다. 여기서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단순히 기술도구나 재료일 뿐 아니라, 감각을 변형시키는 활동이면서 변화하는 환경을 해석하는 적극적인 관계 맺기로 이해된다.
 
백지숙 예술감독은 "작가들은 새로운 정치 경제학적 구조 속에서 이를 항시적인 사회문화적 실천으로 짜 맞춤해간다. 이렇게 제각기 창안한 언어를 공유재화 하려는 작가적 충동의 결과로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는 '가능태의 리얼리즘(Realism of the Possible)'을 살아있는 작품들로 제시하려 한다"고 전했다.
 
올해 비엔날레는 국내외 24개국 61명(팀)이 참여한다. 뉴미디어와 다양한 실험으로 확장된 30점의 신작과 젊은 작가, 여성 작가, 제3세계 작가의 작품을 포함한 76점의 조각, 회화,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작품이 출품된다. 지역별로 유럽이 9개국 13작가로 가장 높으며, 아시아 5개국 28작가, 남미 3개국 5작가, 북미 2개국 8작가, 아프리카 2개국 4작가, 오세아니아 1개국 1작가가 참여한다.
 
이 중 서소문본관 1층엔 남아프리카 공화국 작가 케망 와 레훌레레의 '우주의 또 다른 막간 궤도'가 전시되어 있다. 작가가 8일간 분필로 그려 완성한 칠판 벽화다. 작가가 분필을 사용하며 끝없이 수정하는 역사를 표현한다. 미래는 과거나 현재에 존재하기도 하며, 또 그 반대이기도 한 시점을 표현한다.
 
   
▲ 케망 와 레훌레레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케망 와 레훌레레는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관심이 있어 하는 역사는 기록된 것과 기록되지 않은 것 모두다. 실제로 접근하는 방법에서 나는 다양한 소재와 매체를 사용한다. 분필을 사용하기도 하고, 공연과 비디오를 매체로 사용하기도 한다. 여러 행동과 개입을 하는데, 이러한 것은 미술관 밖이나 관객이 전혀 없는 곳에서도 이뤄진다. 내 작품의 원동력은 역사의 또 다른 관점을 발견하고 싶은 호기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레훌레레는 "이러한 예술을 하면서 실제 역사의 사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몇 년 전, 한 벽화 작품이 주목을 받아 공연 겸 감의로 이뤄졌고, 이것이 정치적으로 개입되면서 남아공 역사적 사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됐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레훌레레는 "과거 1965년 뉴욕에서 사망한 네트 나카사(Nat Nakasa)가 있다. 그는 네덜란드, 미국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벽화를 그렸는데, 당시 남아공은 정치적 격동기였다. 남아공 정부에선 나카사가 하버드에서 공부하려고 했지만,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고 협박했다. 결국, 나카사는 학생비자를 받아 1년 동안 하버드에서 공부했지만, 비자 연장을 하지 못해 무국적자가 되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 됐다. 후에 그의 사망을 둘러싸고 음모론이 있었다. 결국, 50년 만에 내가 그린 벽화로 인해 유해가 올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비엔날레 전후로 남서울생활미술관에선 임시학습공동체 '더 빌리지', 북서울미술관 '불확실한 학교' 등 다양한 연계행사가 전시와 함께 열린다. 이번 비엔날레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