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영화를 잘 선택해서일까, 아니면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가 워낙 좋은 작품들만 선정해 놓아서일까? 이번 BIFF에서 접한 영화들은 묘하게 하나로 이어졌다.

제18회에서 접한 영화들은 각 영화별로 매력이 분명했고, 또 그 매력들이 중복되지 않아서 즐거움을 느꼈다. 그런데 올 BIFF에서 접한 영화들을 영화별로 매력이 다르기는 했지만 모아놓고 생각하니 그 매력들이 중복되면서 통일감이 느껴져서 즐거웠다.

 

 
 

▶ [웜우드] 키아 로취 터너감독의 좀비영화로 오스트레일리아 영화다.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이상 바이러스로 인해 주인공 베리와 베리의 여동생이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린 영화이다. 구성은 '괴물(봉준호 감독)'과 매우 흡사하다. 좀비가 되는 원인은 알 수 없으나, 굳이 좀비와 인간을 대상으로 알 수 없는 실험을 하는 과학자와 단체의 등장은 '괴물'에서의 국가 당국과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예상치 못했던 스토리들이 등장하며, 전반적으로 영화가 재미있어진다. 구성자체에 100점 만점을 줄 수는 없지만, 좀비 영화를 풀어가는 방법이 신선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내용이지만, 이러한 내용이 좀비 영화에 결합하였다는 것이 신선하다. 좀비들이 뿜어내는 메탄가스를 차 연료로 쓴다는 발상,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좀비를 다루는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 좀비들의 지배자가 되는 주인공의 여동생, 그리고 필요한 상황에서 좀비를 불러내는 여동생의 능력과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좀비가 불쌍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전형적 좀비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기대에 못 미치겠지만, 영화를 풀어가는 과정이 신선하여 감독의 재기 발랄함에 웃음을 짓게 하는 영화.

 

 

 

▶ [빈관] 신 유쿤 감독의 중국 독립영화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초기작을 연상시킨다는 평을 받고 있는 영화. 중국의 한 마을에서 벌어진 죽음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첫 장면이 독립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영화의 스토리가 흘러가는 동안.. 대체 그 장면은 무엇일까.. 를 고민하게 되는 영화이다. 그러나 그 하나의 죽음과 얽힌 마을 사람들 한명 한명의 이야기들이 차례로 소개되면서 영화는 그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그리고 그 한명 한명의 이야기들이 소개되는 구성이 '아, 그러면 저사람이 죽인 건가?'하는 궁금증을 해소하면서, '어떻게 된 거지?'라는 궁금증을 증폭시킬 수 있도록 매우 잘 되어있다.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켜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놓아서는 안 되는 영화이다. 긴장감을 풀고 있다가 다음 이야기에서 다시 이야기가 꼬여버려 머리를 한참 굴려야 하는 수가 생기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분명 슬픈 일이고 무거운 일이다. 그리고 영화에서도 그 죽음과 죽음을 둘러 싼 일들을 매우 무겁게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면서 궁금증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피식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하고, 또 쓴 웃음도 짓게 된다. 결국 한 사람의 죽음이 마을 사람 모두의 걱정을 해소시킨다는 측면에서 이 죽음은 옳은 죽음일까? 혹은 바람직한 죽음일까? 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그와 얽힌 현실의 비리와 현실의 욕망을 매우 심도 있게 그려내는 동시에 그 구성을 통해 관객들의 집중력을 놓치지 않게 만드는 영화. 역시 감독의 재기 발랄함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 [철원기행] 김대환 감독의 작품으로 BIFF 뉴커런츠 수상작이다.
기대하지 않고 보았으나 우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에 한번 놀라고, 작품에서 보여지는 현실성에 공감하게 되는 작품. 신경질적이고 현실적인 성격의 어머니와 덤덤하고 과묵한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닮아있는 큰 아들, 철 없지만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는 둘째 아들, 자신의 목적은 뚜렷하지만 분명 정이 많은 며느리가 그려내는 가족 갈등 드라마라고 요약해보고 싶다. 아버지의 은퇴 날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이혼을 선언하고, 이 어색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지만 폭설로 철원에 모두 남아야 하는 가족들의 당황스러운 상황이 영화의 시작이다. 결국 이 상황은 가족만이 지닐 수 있는 미움과 결속으로 해소되는 것 같다. 물론 감독은 영화 끝까지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다만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가족들간의 묘한 행동을 통해 결말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영화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에서 눈물이 흐르고, 아버지는 왜 과묵해지고 답답해졌는가 어머니는 왜 신경질적인가에 대해서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러한 갈등 조차 가족이기에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감독의 능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 역할을 한 이영란의 연기는 정말 최고라고 평하고 싶다. 그녀의 주름마저 신경질적으로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아버지가 생각났고, 또 그러한 답답함을 참아가며 열정적으로 살아온 어머니가 생각났고, 그들의 모습을 저도 모르게 닮아버린 모든 세상의 아들과 딸들이 생각났다. 이러한 미묘한 가족의 심리들을 대사보다는 행동에 담아낸 감독의 능력에도 감탄하게 되는 영화.

 

 

 

▶ [사랑은 마시고 노래하며] 알랭 레네 감독의 유작으로 이번 BIFF에서 본 영화 중에 단연 최고라고 꼽고 싶다.
한 사람의 죽음을 이렇게도 유쾌하고 의미있게 그려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철학과 의미를 내포하면서도 줄곧 웃음을 준 영화. 영화의 구성은 연극의 형태를 주로 차용해왔으나 영화 장면의 변환과 개별 인물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장면에 있어서 다큐멘터리의 느낌과 팝아트적 느낌을 지니는 것도 매우 흥미로웠다. 영화의 구성이나 표현기법도 매우 흥미로웠고, 영화에 내포된 여러가지 의미들도 매우 흥미로웠던 영화. 조르주의 죽음은 주인공들에게 갈등의 시초이면서 동시의 갈등의 해결을 내포하고 있다. 젊음, 열정, 성숙, 안정 등 이 모든 것이 지니는 가치와 행복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면, 조르주의 죽음으로 인해 행복해 지는 주인공들을 보며, 죽음이라는 것이 지니는 가치 역시 한번 더 되새겨볼 수 있는 영화. 영화를 보면서 조르주를 찾아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누군가는 알랭 레네의 유작인만큼 조르주가 알랭 레네 자신은 아닐지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 작품이다. 거장이기에 영화에 심도 있고, 진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거장임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진지한 이야기를 재기 발랄하게 풀어가고 있다. 그래서 거장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유쾌한 영화!

결국, 감독들의 '재기 발랄함'이 올해 BIFF에서 느꼈던 매력이다. 모든 작품에서 웃음을 놓을 수 없었다. 실소이건, 유쾌한 웃음이건, 쓴웃음이건, 모든 작품에서 관객들은 웃고 있었다. 그만큼 관객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신선하게 풀어나가는 작품들이었다는 것이다. 내년이면, BIFF가 20회를 맞이한다. 19회까지 BIFF는 해마다 다른 매력의 작품들을 통일성과 개별성을 중심으로 선정해왔다. 그리고 그 작품들의 다양성과 작품성은 해마다 나아지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19회에서 느낀 즐거움이 20회에는 어떻게 더 증폭될까 기대된다..☞[2편에서 계속] 

 

[글] 아띠에떠 해랑 artietor@mhns.co.kr

대중문화칼럼 팀블로그 [제로]의 필자. 서울대에서 소비자정보유통을 연구하고 현재 '운동을 좋아하는 연기자 지망생의 여의도 입성기'를 새로이 쓰고 있다. 언제 또 다른 종목으로 여의도에 입성하게 될는지. 여전히 나의 미래가 궁금한 인간. 나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여자, 말 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여자'.*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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