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레네의 유작 '사랑은 마시고 노래하며' BiFF가 선사한 선물

   
 

[문화뉴스] 죽음만큼 무겁고 진지한 사건이 있을까? 죽음을 생각하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진지하고 무거운 태도로 죽음을 대할 것이다. 그런데 이 죽음은 우리의 삶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삶의 끝이 죽음이라고 할 수도 있고, 나와 주변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삶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즉,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의 선위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죽음이 무겁다면 삶도 무겁고, 죽음이 즐겁다면 삶도 즐거울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했는지 아닌지는 명확하게 모르겠지만 죽음을 통해 삶을 유쾌하게 그려낸 감독이 있다. 2014년 제 20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의 마지막 날 작품으로 축제의 마무리라는 측면에서 이 작품을 마지막 날 소개한 BIFF의 안목에 매우 감탄했다. 프랑스 영화계의 거장 알랭 레네의 유작 '사랑은 마시고 노래하며'다.

알랭 레네 감독의 유작 '사랑은 마시고 노래하며'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죽음을 통해 깨닫게 되는 삶의 의미를 매우 유쾌하게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영화이지만 연극의 형식을 빌려온 이 영화는 초지일관 유쾌하다. 영화는 '조르주 라일리'의 시한부 인생 선고와 함께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문제는 조르주의 죽음이 전해지는 과정마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조르주의 예정된 죽음을 분명 슬퍼하는데 배우들은 그 과정에서 웃을 수밖에 없다. 조르주의 죽음이 등장인물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매우 유쾌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조르주'는 마성의 남자이다. 그렇지만 단 한번도 그가 모습을 직접 드러낸 적은 없다. '조르주'가 죽음을 앞두고 타마라(캐롤라인 시홀), 캐서린(사빈느 아제마), 그리고 모니카(상드린느 키베르나)는 조르주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남편들은 아내의 감정에 당혹스러워하고, 또 힘들어한다. 조르주에 대한 세 여자의 사랑이 점점 경쟁 양상을 띠는데, 문제는 조르주는 언제나 세 여자를 똑같이 대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행을 함께하자는 이야기도 모두에게 똑같이 한다. 사실 현실에서 생각해보면 조르주는 나쁜 남자이다. 실컷 욕을 해줘도 모자랄 인물이다.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의 여자를 상대하고 있고, 심지어 그들 모두 유부녀들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아.. 조르주 나쁜 놈…'이라는 말을 웃음과 함께 내뱉게 된다. 아주 심각하고 진지하게 그를 욕하지는 못한다. 아마도 감독의 힘일 것이다.

조르주가 그의 바람기에 당위성을 얻게 되는 것은 세 여자의 경쟁심리가 매우 유쾌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르주의 바람기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세 여자가 조르주와 사랑에 빠진 이유는 그저 세 여자가 일방적으로 조르주에게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캐서린의 대사에서 알 수 있다. 캐서린은 조르주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멈춰. 그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가지. 그는 늘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쳐. 그런 느낌은 조르주와 함께할 때를 빼고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어.' 조르주는 이 영화에서 젊음과 열정의 상징이다.

   
 

하지만, 결국 그녀들은 현재의 남편들에게 돌아온다. 역시 캐서린이 남편에게 던지는 대사에서 조르주의 역할을 알 수 있다. '당신은 단 한 번도 젊은이였던 적이 없어요. 그게 당신을 사랑한 이유에요.' 젊은 시절 조르주를 사랑했고, 현재 조르주에게 빠져든 이유는 그의 열정과 언제나 젊은 마음과 태도였다. 그 열정과 젊음은 한 순간 빠져들게 하는 매력일 수는 있지만 영원히 머물게 할 수 있는 은근하고 지속적인 사랑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것이다. 결국 조르주의 죽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젊음에서 나이 듦, 젊음의 소멸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조르주의 죽음이 단지 젊음의 소멸이 단지 죽음이 아니라 성숙이 주는 안정감과 또 다른 행복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조르주의 죽음은 매우 무거운 소재이고, 조르주의 열정이 부부들에게 갈등을 가지고 오지만, 조르주는 죽음을 통해 세 커플에게 젊음과 열정의 소중함, 그리고 성숙이 주는 안정감과 행복을 깨닫게 한다. 조르주는 그런 존재이다.

조르주는 젊음이자 열정이고, 동시에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 조르주는 세 여인과 약속한 여행을 세 여인이 아닌 타미라의 딸 틸리(알바 가이아 크라게데 벨루기)와 떠난다. 틸리의 부모인 타미라와 잭(미셀 빌레모)은 기함을 토하지만…그리고 관객들도 실소를 금하지는 못하지만…이 역시 매우 유쾌하게 그려진다. 대체 조르주의 매력은 그 끝이 어디기에… 세 여자로 모자라 그의 딸까지도 20살이나 많은 아저씨의 매력에 빠진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그 장면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조르주의 젊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틸리에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사실 조르주와 틸리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르주는 정말 자신의 열정과 젊음을 틸리에게 전해주고 가고 싶었을 것이다. 즉,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세 부부가 현실과 성숙의 행복을 깨닫는다고 해서 젊음과 열정이 지닌 가치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틸리를 통해 남겨놓고 싶었던 것 같다. 감독은 젊음과 열정, 성숙과 안정은 언제나 삶에서 공존하고, 이 모든 것들이 지니는 가치가 분명하며,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조르주와 틸리를 통해서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알랭 레네의 유작은 이토록 진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유쾌했다. 진지한 이야기를 관객들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알랭 레네의 작품 중에는 이러한 성향의 작품들이 꽤 있다고 한다. 진지한 소재들을 편안하게 받아들여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 위해 알랭 레네의 작품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싶어졌다. 알랭 레네 감독은 죽음을 통해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선물을 관객들에게 선사해줬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알랭 레네 감독을 잘 모르던 나에게 BIFF가 준 진짜 선물이었다..[3편에서 계속] 

 

[글] 아띠에떠 해랑 artietor@mhns.co.kr

대중문화칼럼 팀블로그 [제로]의 필자. 서울대에서 소비자정보유통을 연구하고 현재 '운동을 좋아하는 연기자 지망생의 여의도 입성기'를 새로이 쓰고 있다. 언제 또 다른 종목으로 여의도에 입성하게 될는지. 여전히 나의 미래가 궁금한 인간. 나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여자, 말 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여자'.*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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