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앤서니 브라운' 展 리뷰

[문화뉴스]

 

   
Willy and the Cloud, 400x220 watercolour on paper, 2016

"그림책은 나이가 들었다고 접어야 할 책이 아니라, 나이를 불문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글자가 빼곡히 적힌 책을 읽는 어른들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어른들의 서재에서 '나는 언제 커서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며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마치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흉내를 내며 책장을 넘기던 시절. 그러나 동경하던 빼곡한 글자들의 세계에 와본 지금, 나는 내가 이 숱한 글자들의 나열 속에서 본질의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코끼리, 297x228, watercolour on paper, 1974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은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다. 그는 기발한 상상력과 이색적인 그림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림책 작가 중 한 명이며, 국내 학부모들에게는 최고의 사랑을 받고 있는 어린이 그림책 작가라 말할 수 있다. 지난 6월부터 다음 달 2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는 앤서니 브라운의 200여점의 원화와 국내외 작가들이 협업한 조형물과 영상작업을 만나 볼 수 있다.

실제로 기자가 다녀간 8월 중순, 많은 어린이들과 부모들이 자신이 읽었던 앤서니 브라운의 책들을 떠올리며 전시를 즐겁게 감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전시에는 그의 대표작 '고릴라', '동물원' 등에 삽입된 그림들 뿐 아니라, 그에게 영감을 줬던 미술관, 그가 관심을 가졌던 환상과 마법의 세계, 친구와 가족의 의미, 미출간작, 어렸을 적 형과 즐겨했던 셰이프 게임까지, 다양한 파트로 나뉘어져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Willy’s Pictures 1999 ⓒ Anthony Browne

앤서니 브라운이 동심과 맞닿아, 어른들의 예술에 유쾌한 시선을 담아낸 작품은 바로 '미술관에 간 윌리(Willy's Pictures, 1999)'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프리다 칼로의 '원숭이와 함께 있는 자화상',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등 세계의 명화들을 침팬지의 시각으로 패러디 한 그림책이다. 유명한 원작들을 앤서니 브라운 특유의 귀엽고 따뜻한 그림체로 옮겨다 놓았다.

앤서니 브라운이 인터뷰를 하거나 글을 쓸 때마다 항상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셰이프 게임(Shape Game)'이다. 누군가 종이 위에 아무렇게나 그려진 모양 하나를 그리면, 다음 사람이 그 모양을 마음대로 이어 그려 원하는 그림을 완성하는 놀이다. 앤서니 브라운은 어릴 적 자신보다 한 살 더 많은 형과 함께 이 놀이를 즐겨 했다고 한다.

그는 이 게임을 그림으로도 설명해놓았는데 '마술 연필을 가진 꼬마곰(The Little Bear Book, 1987)'이 바로 그것이다. 꼬마곰이 필요에 따라 마술 연필로 그림을 그리면서 각 상황에 대처하는 내용이다.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익살스러운 그림들을 그려내는 꼬마곰은 마치 앤서니 브라운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킨 듯하다.

 

   
Gorilla 1975 ⓒ Anthony Browne

앤서니 브라운 가족을 다룬 책들도 여러 권 그렸다. 실제로 우리가 겪고 있거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간 그림책들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았던 오늘날의 '가족'의 이야기를, 앤서니 브라운만의 깊이 있는 시선으로 그림책에 담아낸 것이다.

한 집에 살지만 대화나 소통이 부족한 가족, 준비도 없이 아빠가 되어 어떻게 하면 가족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을지 잘 알지 못하는 남자, 아빠의 사랑에 목마른 아이들, 집안일과 회사일을 모두 해내느라 안팎으로 허리가 휘는 힘든 엄마.

또한 그는 '우리 친구하자'를 통해 "우리는 왜 서로 더욱 가까워지지 못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기도 한다. 늘 친구를 필요로 하고 친구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 하지만, 정작 서로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서툰 우리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말이다.

작가는 "만약 숲 속 나무로 위장한 거인의 삐져나온 발과 유모차 안에 누워있는 강아지를 보고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면, 그 미소는 우리가 친구를 안아줄 따스함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전시는 여름방학을 맞이해 다채로운 체험교육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었다. 어린이들의 자발적 참여는 물론 어른들의 잠자고 있던 동심을 일으킬 '행복한 도서관', 뮤지컬의 명가 KCMI와 공동제작한 창의력을 길러주는 '셰이프 게임' 체험 공연, 작품을 쉽게 이해하고 행복한 미술관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해피 도슨트', 고릴라와 침팬지 캐릭터를 나만의 캐릭터로 만드는 '아트토이 그리기' 등이 구성돼 있다.

섬세하고 따듯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 앤서니 브라운. 그의 그림책을 보며, 반드시 많은 글귀가 적힌 책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삶의 방향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나는 내가 진짜로 믿는 책을 만들고자 끊임없이 애를 써왔다"고 말하는 작가처럼, 우리는 그림책을 통해서 우리의 실제 모습, 우리의 가치관과 신념 등을 확인하고 표현할 수 있다. 어린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세상을 밝게 비추고자 하는 그의 그림책은 비단 어린이들만의 보물은 아닐 것이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아트센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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