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배우가 너무 되고 싶었고, 행복하게 큰 틀에서 하고 있다. 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 서서 또 다른 인생을 표현하고, 연기하는 것이 가장 신난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1주일에 1~2번 꾸준히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 박철민 배우. "관객들과 웃음을 만들어내는 일을 많이 해,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박철민은 최근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김의교'를 연기하고 있다.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다양한 작품에서 '심(心)스틸러'로 활약 중인 박철민이 직접 밝힌 다섯 인생캐릭터를 소개한다.
 
   
▲ 영화 '목포는 항구다'의 한 장면.
 
1. 영화 '목포는 항구다' (2004년/'가오리' 役)
ㄴ "쉭쉭 이것은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여"라고 말하는 부분은 내 본능 같은 애드립이었다. 한 줄짜리 지문이었다. 나는 '가오리'를 맡았는데, 권투를 하는 역할이었다. 김지훈 감독님에게 한 페이지 대사를 만들어서 보여줬다. 3분의 1 정도로 줄여오면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밤을 새워가며 3분의 1로 예쁘게 줄여서 만들었다. 
 
본능이었다. 내가 일부러 재밌게 한 게 아니라, 어떻게 가장 '가오리'스럽고 역동적일까 해서 '쉭쉭'을 넣게 됐다. 감독도 오케이 한 것이었는데, '목포는 항구다'에 조재현, 차인표는 기억하지 못해도 이 대사와 '가오리' 캐릭터는 기억한다. 개그맨들도 유행어로 쓰기도 했다. 지금도 지나가면 "쉭쉭 해보세요"라고 20대들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교실에서도 나오는 전국적 유행어인데, 나라는 캐릭터를 가장 강하게 각인시킨 애드립이었다.
 
   
▲ 연극 '늘근도둑이야기'의 포스터.
 
2.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2003년~/'덜 늘근도둑' 役)
ㄴ 2003년부터 꾸준히 출연하고 있는 공연이다. 1주일에 1~2번밖에 하지 않지만, 드라마 촬영하면서 지치거나, 힘들거나, 집에 안 좋은 일이 있거나, 친구와 싸우거나, 날씨가 흐리거나, 연기도 잘 안 풀리고, 촬영장에서 온종일 기다리다가 대사 하나 못 찍고 오거나, 전날에 술을 많이 마시거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허리가 아프고 몸살이 날 때 등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인 면을 일주일에 한 번씩 공연하면서 다 날려버린다.
 
내가 신나니 관객분들이 신나고, 관객분들이 신나니 나도 신이 난다. 유기적이며, 커다란 웃음 속에서 작품이 끝나니 그 주에 있던 답답한 스트레스를 싹 푼다. 온갖 부정적인 것을 1시간 30분 동안 관객과 사랑으로 나누며, 동시에 돈을 벌면서 스트레스, 슬픔을 날리는데 나보다 대한민국에서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한 장면. ⓒ KBS
 
3.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2004년~2005년/'김완' 役)
ㄴ 단편 드라마에 출연했다가, 장편으로 104부작에 출연을 하게 됐다. '목포는 항구다'가 거의 200만 관객이 봤는데, 드라마는 10%만 봐도 400만이 한 시간 동안 보게 된다. 그런데 '불멸의 이순신'은 25~30% 정도의 시청률이 나왔으니, 1,200만 시청자가 본 것이다. 그걸 100회를 했으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봤겠는가.
 
전라도가 고향이어서 사투리를 많이 썼는데, 철이 없는 장수, 재밌는 장수, 정 있는 장수, 애드립 많은 장수로 사랑받았다. 전국적으로 내 이름을 시청자들에게 알리게 된 작품이다. 저렇게 특이한 배우가 있고, 독특한 배우가 있다고 알려서 '불멸의 이순신'을 뽑고 싶다.
 
   
▲ 드라마 '뉴 하트'에서 키스신을 촬영한 박철민 배우. ⓒ MBC
 
4. 드라마 '뉴 하트' (2007년~2008년/'배대로' 役)
ㄴ "뒤질랜드" 대사가 인상 깊을 텐데, 역시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던 작품이다. 본의 아니게 인생의 키스신도 신다은 씨와 엘리베이터에서 하게 됐다. 결함이 있는 '배대로'와 '김미미'의 사랑 이야기가 있었다. 이 키스신이 안방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미미'가 먼저 달려든 이 키스신은 어마어마했다. 인터넷에 온종일 실시간 검색어로 '김미미 신다은', '박철민 배대로', '신다은 박철민'이 가득찼다.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4시간 정도 찍었는데, 거의 엘리베이터에서 키스하고 살았다. 카메라가 밖에 있고, 문이 열리면 키스를 하는 건데 문이 열리기 10초 전부터 먼저 하고 있다. 그리곤 10초 후에 문이 열리는데, 자연스레 했다. 그런 에피소드를 겪으며, 못난 배우를 전국적으로 사랑을 받는 조연이자 감초 배우로 각인시켜준 작품이었다.
 
   
▲ 영화 '약장수'의 한 장면.
 
5. 영화 '약장수' (2015년/'철중' 役)
ㄴ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같이 개봉해 깨졌던 '약장수'다. '혈의 누'에서도 악역을 했었다. 그땐 단순하게 절대악이었는데, '약장수'의 악역 '철중'은 공감을 많이 해주실 정도로 제일 설득력 있었다. 저런 악은 먹고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능하고 이해가 간다는 것이었다. 김인권이 연기한 '일범'도 저렇게 될 것이고, 사회가 만든 것이라는 설득력을 줬다.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잘못산다면 저렇게 된다는 설득이 신났던 영화다. 
 
내가 저런 눈빛이 있지, 표정이 있지, 악랄함이 있다고 발견한 것이 행복했다. 오버하고 과장하는 배우, 코믹 연기만 하는 배우로만 아는데 절제도 많이 했다. 그런 맛을 깊이 있게 느꼈다. 내 말투가 아닌 것 같다고 느끼게 해준 작품이어서 소중했다. 색다른 경험이었고, 저런 역할도 많이 해야겠다 싶었다. 나인데 나같지 않은 캐릭터였다.
 
사실 나는 기존 이미지에서 뛰쳐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중이 거리감을 받고 어색할 수 있었는데, '약장수'를 통해서 너무 다른 이면을 봤고 이색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봤다. 사탕을 먹으면서, 돈으로 때리는 장면이 있는데 '늘근도둑이야기'보다 훨씬 성취감이 있었다. 나한테 저런 거지 같은 표정이, 더러운 표정이, 소름 끼치게끔 하는 이미지와 느낌이 있다는 자체가 어떤 캐릭터의 성취감보다 컸다. 스스로 자랑스럽다는 칭찬을 오랜만에 했었다. 정체되고, 많이 방황할 때, 그런 에너지를 준 작품이었다.
 
   
▲ 영화 '스카우트'의 한 장면.
'아차상' 영화 '스카우트' (2007년/'서곤태' 役)
ㄴ 임창정, 엄지원 주연의 영화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앞두고 '세영'(엄지원)을 해바라기처럼 좋아하는 건달 역할이다. 독특한 캐릭터였는데, '비광'이란 시도 낭독했다. 흥행엔 참패했지만, 같은 해 출연한 '화려한 휴가'보다 훨씬 깊은 감동을 준 영화였다. 광주 민주화운동의 슬픈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쁜 이야기로 깊이 전해준 것 같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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