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선미무용극단NU 페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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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옥무용단 수궁풍류
▲ 이경옥무용단 수궁풍류
▲ 오재원프로젝트 3번 역셀렉트
▲ 아트프로젝트보라 배꼽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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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케이댄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리케이댄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데시그나레 무브먼트 깨어나다

[문화뉴스]] 현대무용은 어렵다. 특히 무용에 관심이 없는 사람, 무용을 잘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현대무용은 어렵기 때문에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현대무용은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의 의미와 표현을 생각할 수 있게끔 만든다. 즉, 같은 작품을 통해 다양한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현대무용이라고 생각한다. 현대무용 작품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대무용 공연을 찾아가 보고 싶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제17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Seoul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이하 시댄스, 국제무용협회 주최)의 공연 후즈넥스트(Who's Next?)에서 만난 작품들은 현대무용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나의 개념을 다시 한 번 흔들어 놓았다.

현대무용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대무용이 어떤 것이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없지만, 처음 접한 현대무용은 인간의 신체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였다. 처음 현대무용을 접했던 것도 시댄스의 공연이었고, 다양한 공연 중에 '왕디'의 공연이 가장 인상 깊었다. 안무가 왕디는 단지 그의 몸과 음악, 그리고 조명만으로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 냈다. 어떤 줄거리가 내재하여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단지 사람의 몸 하나만으로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는 아주 오랫동안 무용공연을 접하지 못했었다. 공연을 보러 가는 일이 쉽지 않았던 시간이기도 했고, 공연 중에서도 무용공연은 공연 자체가 많지 않을뿐더러 홍보도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5년 만에 접하게 된 공연이 후즈넥스트였다. 후즈넥스트는 나에게 한마디로 어려움이자 연구대상이었다. 공연 프로그램 책자를 읽지 않으면 작품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음악은 작품 전체를 아우르지 않았다. 음악이 없는 사이사이 배우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지만 음악이 없는 그 사이 배우들이 대사를 하지 않았을 뿐 필자는 이 작품이 연극인지, 행위예술인지, 무용인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필자는 무용은 스토리나 주제의식이 관객에게 의도한 대로 전달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일반적으로 춤이라고 인식되는 동작이나 무대 구성이 명확해야 하며, 그러한 구성과 동작은 음악과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점이 무용을 연극과 행위예술과 구분 지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공연이 혼란스러웠던 것도 아니었고, 또 혼란스러웠다고 해서 감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품의 의도를 꽤 친절하게 전해주는 작품도 있었고, 작품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필자 스스로 느끼고 깨닫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후즈넥스트의 작품들은 모두 감동적이었다. 현대무용을 자주 접하지 못하는 일반적인 대중으로서 그리고 가끔 접하는 현대무용에서 감동을 얻는 대중으로서 현대무용의 현재의 모습과 미래의 모습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이었다. 또 많은 작품에서 영상이 함께 사용되고 있어서 매우 신선했다. 그래서 더욱 더 장르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우연한 기회로 후즈넥스트를 접하기 몇 주 전 현대무용을 전공한 친구를 알게 되었다. 그 친구에게 혹시 무용공연 소식이 있으면, 티켓은 바라지 않지만, 정보만이라도 공유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 친구는 매우 반가워하며 무용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이 공연을 보러 온다는 말이 너무 반갑다고 했다. 그녀는 현대무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너무 적다는 것과 그에 대응하지 못한 채 현대무용 공연에 대한 소극적인 홍보를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현대무용의 흐름과는 상관없는 생활을 해서일까? 현대무용은 필자에게 조금 더 어려워졌고, 필자와 몇 발자국은 더 멀어진 느낌이었다. 아주 일반적인 대중의 관점에서 현대무용의 발전은 대중에게는 조금은 더 불친절해졌다고 할까? 물론 그 안에서 현대무용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조금만 더 친절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필자에게 현대무용의 매력을 처음 알려준 공연도 시댄스였고, 개념을 흔들어 놓은 공연도 시댄스였다. 현대무용이 대중들에게 어려워짐에도 불구하고 시댄스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후즈넥스트가 아닌 다른 작품들도 함께 보았다면 현대무용은 어렵다는 필자의 생각은 또 달라졌을 수도 있다. 시댄스는 무용의 발전과 더불어 대중과의 소통통로로서 매우 훌륭한 축제라고 생각한다. 만약 무용인들이 아주 일반적인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시댄스는 그 소통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음번 시댄스 개최 시에는 더 많은 작품을 관람할 수 있기를 바라며, 무용과 대중과의 소통 통로로서의 시댄스의 역할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해 본다.

 

[글] 아띠에떠 해랑 artietor@mhns.co.kr

대중문화칼럼 팀블로그 [제로]의 필자. 서울대에서 소비자정보유통을 연구하고 현재 '운동을 좋아하는 연기자 지망생의 여의도 입성기'를 새로이 쓰고 있다. 언제 또 다른 종목으로 여의도에 입성하게 될는지. 여전히 나의 미래가 궁금한 인간. 나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여자, 말 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여자'.*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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