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숨겨두었던 비상금과 조금씩 모아온 용돈을 모두 털어 일본을 가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과 같이 애니메이션관련 산업이 가장 활발한 곳으로, 국내에서 피규어나 프라모델을 구입하는 것보다 싼값에 질 좋은 물건을 많이 구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작정 일본행을 택했다.

   
▲ From Japan to the World. 나는 지금 일본에 와있다.

▶ 이렇게까지 하려고 시작한 것은 아닌데.

일본의 많은 매니아들과 교류도 하고 많은 정보를 얻어 돌아오겠다는 의지 하나만을 가지고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런 시나리오라면 얼마나 멋있어 보이겠는가. 무엇인가에 열정을 갖고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짐을 챙겨 떠나는 방랑자적 삶을 꿈꿔본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만을 남긴 채 목표가 얼만큼인지, 기한이 언제까지 인지 누구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발길 닿는 곳에 짐을 풀고 돌아올 때쯤 되어 석양을 등지고 걸어오는 그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감동적일 것만 같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현실은 이상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우연히 일본으로의 출장 일정이 잡혔고, 3박 4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혹시나 매니아들의 천국인 아키아바라에 잠시라도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틀 후. 나는 지금 일본에 와있다. 물론 일 때문에 왔기에 바로 당장 피규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갈 수는 없었지만, 왠지 모를 기대감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같이 동행한 실장님 역시 나와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하루 정도는 매니아들의 성지에 가보자는 얘기를 했었다.

역시나 길거리에도 편의점에도 만화캐릭터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인형뽑기 같은 기계들로 꽉 찬 가게들도 많았다. 중간에 시간이 잠깐 남아 기계에 돈을 넣고 한번 해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애타며 돈을 날리는 것보다 시원하게 한방에 쓰자며 다음 일정-물론 업무-을 위해 발길을 돌렸다.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하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어느 건물 앞에서 본능적으로 발길을 멈추었다. 역시나 그곳에는 피규어를 파는 가게가 있었고 나는 매의 눈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 역시나 길거리에도 편의점에도 만화캐릭터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인형뽑기 같은 기계들로 꽉 찬 가게들도 많았다.

사실 내부의 모습은 한국에서 보는 프라모델이나 피규어를 파는 가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종류가 훨씬 많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이 굉장한 장점이다. 사실 일본인들에겐 똑같은 매장이겠지만 같은 제품이라 해도 한국에서 구매하려면 세금 등이 붙으며 가격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오르기에 현지에서 직접 구입하는 그 느낌은 무언가 굉장히 이득을 보는 기분이다. 순식간에 내 손에는 두 개의 상자가 쥐이어져 있었고 순식간에 계산까지 끝마쳤다.

한국에서 한상자 살 비용으로 두 상자를 구매했더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옴과 동시에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부인에게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지 약간 고민이 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아주 좋은 곳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 취미생활의 간만 보고 오다.

왠지 전자제품을 사려면 용산에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처럼 일본에서 피규어나 프라모델을 사려면 아키하바라에 가야한다고 많은 사람이 얘기를 한다. 가격은 저렴함과 동시에 아주 많고 다양한 상품을 구경 혹은 구입할 수 있는 그런 곳이란다.

아주 작은 기대로 요번 일본 출장의 일정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이곳에 다녀오려고 했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일정은 매우 정신없이 돌아가며 아키하바라는 커녕 그쪽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도 못 탔다.

   
▲ 아쉬운 대로 일정 중에 우연히 "원피스 전문 매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차라리 예상이라도 했거나 일정에 있었다면 이리 기쁘지나 않았을 텐데 우연히 만나니 어릴 적 친구를 우연히 명동 한복판에서 마주친 것처럼 반가웠다.

아쉬운 대로 일정 중에 우연히 "원피스 전문 매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차라리 예상이라도 했거나 일정에 있었다면 이리 기쁘지나 않았을 텐데 우연히 만나니 어릴 적 친구를 우연히 명동 한복판에서 마주친 것처럼 반가웠다. 그곳에서 내가 어떤 모습을 했는지 굳이 설명하진 않겠다. 잠시 화재를 돌려 예전에 일요일에 방영된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린 나이에 다소 어려운 주제와 세계관의 만화였는데 참으로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잘 만들어진 만화영화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단기간의 시리즈물로 끝났다는 것인데,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과 비교한다면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 역시 많은 만화가 쏟아져 나왔다 많은 만화가 사라져 갈 테지만, 잘 알려진 "원피스"처럼 15년째 TV에서 방영되고 있고 그에 관련된 문화 사업이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한국을 예로 들면 예전에 아기공룡 둘리가 그나마 성공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식의 차이인지 문화의 차이 때문인지 한국에서 만화나 장난감을 좋아한다고 하면 나이가 서른이 넘어 아직도 그런 것을 좋아하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다시 돌아와 원피스 전문 매장에서 나는 평소 갖고 싶었던 제품을 하나 구입했다.

물론 욕심으로는 더 많은 것들을 갖고 싶었지만, 용돈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그 정도로 만족해야만 했다. 다음에 언제가 기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제가 다시 온다면 그때는 내가 사고 싶은 것 들을 더 많이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돌아섰다. 나의 몇 번째 취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피규어라는 취미를 시작한 뒤로 나름 이렇게 글도 쓰게 되었고, 운 좋게도 일본에까지 오고 나니 피규어와 애니메이션에 점점 애착이 가기 시작했다.

   
▲ 왠지 전자제품을 사려면 용산에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처럼 일본에서 피규어나 프라모델을 사려면 아키하바라에 가야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한다. 아키하바라의 모습.

부인이 언젠가 "결혼 전에는 피규어 모으는 거 안했었잖아?" 라고 질문을 던졌다. 당장 대답할만한 것이 없었는데, 사실 지금도 이렇다 할 대답은 할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요즘 이게 제일 재밌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 책장 선반에는 아직 진열되지 못한 배 두 척이 기다리고 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뜯어서 조립해 선반 위에 올려두고 싶기도 하다. 피규어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입을 모아 이 취미를 시작하고 인내심이 많이 길러졌단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나는 지금처럼 천천히 취미를 즐기련다.

[글] 아띠에터 김민식 artietor@mhns.co.kr

어린왕자를 좋아하는 30살 유부남이자 소싯적 한 춤(!)한 이력의 소유자. 홍대역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디자이너다.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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