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젊은연출가전 참가작 공연예술제작소 비상의 홍석진 작 김정근 연출의 이랑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홍석진은 <무림파혈전> <오 마이 수퍼맨> <살인풍경> <달빛 십리길> <어느날 우리는 갑자기> 그 외의 다수 작품을 발표공연하고, 제9회 옥랑희곡상, 2012년, 거창국제연극제 희곡상과 금상을 수상한 발전적인 앞날이 예측되는 작가다.

연극 <이랑>은 "남이를 사랑하는 소녀"라는 제목으로 서울 성수아트홀에서 공연을 했다. 남이는 남이장군을 지칭한다. 남이 장군 [南怡 將軍]의본관은 의령으로 조선의 개국공신인 남재(南在)의 5대손이다. 아버지는 남빈(南份), 어머니는 남양 홍씨(南陽 洪氏)이다.

남이는 13세 되던 해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세조 때에 좌의정을 지낸 권람(權擥)의 딸과 결혼하여 남구을금(南求乙金)이라는 딸을 낳았으나 일찍 사별했고, 고성 이씨(固城 李氏)와 다시 혼인했다. 그러나 고부간에 갈등이 심하여 1468년(세조 14) 왕에게 아내와의 이혼을 허락 받았다.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왕위에 오른 세조는 남이와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 등 젊은 종친(宗親)들을 중용하여 원로대신들을 견제하려 했다.

남이는 세조가 1460년(세조 6)에 무인들을 등용하기 위해 실시한 경진무거(庚辰武擧)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며, 1466년(세조 12)에 실시된 발영시(拔英試)에도 급제하였다. 1467년(세조 13) 김용달(金用達)과 함께 포천(抱川), 영평(永平) 일대 도적떼의 토벌을 지휘했고, 그해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이준이 도총사(都摠使)가 되어 이끈 토벌군에 군관으로 참여했다. 진북장군(鎭北將軍) 강순(康純)의 휘하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하여 북청(北靑)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그 일로 행 부호군(行 副護軍)이 되었으며 당상관으로 임명되었다.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후에는 행 호군(行 護軍)이 되어 종성(鍾城)에 주둔하며 온성(穩城), 경원(慶原), 경흥(慶興) 등의 고을을 다스렸으며, 군공을 인정받아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으로 포상되었다.

   
 

1467년 중추부 동지사(中樞府 同知事)가 되었다. 이어 명의 요동군(遼東軍)이 남만주 일대에 거주하는 건주여진을 토벌하기 위해 조선에 파병을 요청해오자 강순, 어유소(魚有沼)와 함께 윤필상(尹弼商)이 이끄는 북벌군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그리고 그해 음력 12월 27세의 나이로 공조판서가 되었으며, 왕궁의 호위를 담당하는 겸사복장의 지위를 겸하였다.1468년(세조 14) 음력 5월에 서현정(序賢亭)에서 열린 연회에서 술에 취해 세조에게 이준만을 편애한다고 실언하였다가 의금부의 감옥에 갇혔다가 다음날 풀려났으며 겸사복장의 지위에서 파직되었다.

그해 7월 세조가 이준을 20대의 나이에 영의정으로 임명하면서 남이도 공조판서와 오위도총부도총관의 지위를 겸하게 했으며 8월에는 병조판서로 삼았지만 한계희(韓繼禧) 등 대신들의 반대로 9월에 병조판서의 자리에서 물러나 다시 겸사복장이 되었으며, 조부와 마찬가지로 의산군(宜山君)으로 봉해졌다.그러나 1468년(예종 1) 10월 병조참지(兵曹參知) 유자광(柳子光)의 고변으로 역모의 혐의를 받았고, 그해 음력 10월 27일에 강순, 변영수(卞永壽), 변자의(卞自義), 문효량(文孝良) 등과 함께 저자에서 거열형으로 처형되었다. 그의 어머니도 다음날 거열형으로 처형되었으며, 딸은 한명회(韓明澮)의 노비가 되었으나 이듬해 외조부인 권람의 공이 참작되어 사면되었다. 이 사건을 '남이의 옥(獄)'이라고 한다.남이는 1818년(순조 18) 음력 3월 10일에 우의정남공철(南公轍)의 청에 따라 강순과 함께 사면되어 관작이 복구되었으며, 1910년(순종 3)에는 '충무'의 시호가 추증되었다.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남이의 묘소로 전해지는 남이장군묘가 있고,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의 남이섬에도 그의 가묘와 추모비가 있다.

남이 장군의 북정가 (北征歌)

백두산석 마도진 -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사라지고 白頭山石 磨刀盡두만강수 음마무-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고 豆滿江水 飮馬無 남아이십 미평국 - 남자 이십세에 나라를 평안케 하지 못하니男兒二十 未平國 후세수칭 대장부-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르겠는가유자광이 남이 장군을 모함할 때 3번째 줄에 평(平)을 얻을 득(得자)로 바꾸어서"20세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으로 해석됨으로써 결국 반역죄로 사형을 당한다.

 

<이랑>은 남이 장군을 사랑한 여인의 이름이다.

연극은 도입에 일직차사 월직차사 두 남녀 저승사자의 등장에서 시작된다.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이승을 떠도는 잡귀들을 잡아가기 위해 차사 두 명이 등장한다. 무대 하수 쪽에는 고수가 자리를 잡고 극의 진행에 따라 북을 두드리며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소년 귀신과 그의 가족이 등장하면서 극은 희극적으로 진행되면서 아름다운 처녀 이랑의 내력이 소개가 되고, 이랑이 남이 장군을 만나면서 사랑의 감정이 꽃망울처럼 피어오르고, 남이 장군의 무과 장원을 기원하지만 안타깝게도 죽어 처녀귀신이 되는 과정이 펼쳐진다. 남이 장군 역시 무과에 장원을 하고, 침략군을 물리치는 등 전공을 세우고, 판서자리에 오르지만, 유자광의 모함으로 죽음을 당한다. 귀신이 된 남이 장군과 이랑이 서로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함께 저승으로 향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무대는 배경에 백색의 천을 늘어뜨리고, 그 앞에 팔자(八字) 형태로 단을 세자(三尺) 높이로 무대좌우로 벌려 만들어 놓았다. 북소리로 극적분위기 상승을 주도하고, 활과 몽둥이 등 소품과 화살이 날아가는 시위소리는 음향효과로 처리한다. 전통의상을 착용하고, 저승사자 2인은 흑색복장을 하고 출연한다.

박현진, 윤일식, 정충구, 김경숙, 김홍근, 이지영, 황정윤, 김어진, 김수민, 양윤혁 둥출연진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송지수의 타악 연주는 갈채를 받는다.

조연출 박현주, 움직임지도 천창훈, 무대디자인 임민, 조명디자인 박원광, 의상디자인 김정향, 분장디자인 정숙희, 기획제작피디 이지연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공연예술제작소 비상의 홍석진 작, 김정근 연출의 <이랑>을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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