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주체가 되는 예술의 장, '제19회 서울 프린지페스티벌' 막을 내리다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

[문화뉴스] 독립예술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 '제19회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지난 30일 막을 내렸다.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서,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능한 이 축제에서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다채로운 색깔을 뽐내며 진심이 담긴 이야기들을 '예술'로 표현하고 있었다.

지난 23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폭염을 뚫고 진행된 이 축제에서는,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작업한 몇몇의 예술가들이 있었다. '이 시대의 여성을 이야기하는' 흥미진진과 지성은, 그리고 시베리안탠저린 등이다. 이들은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소라넷' 등으로 점화된 대한민국 사회 내 여성 문제를 소재를 작품에 녹여내며, 여성으로서의 삶과 여성 예술가들의 현실을 관객들에게 낱낱이 표현하고자 했다. 이중 흥미로웠던 작품은 흥미진진의 '엄마, 예술가'다.

 

   
흥미진진(장은진, 황혜진)의 '엄마, 예술가' 

엄마와 예술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이름. 예술가이면서 엄마일 수 있는 법은 과연 가능할까?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한국 최초의 여성 유화가이자 문학가였던 나혜석의 일생을 살펴본다면, 당시의 한국은 여성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양립하기가 쉽지 않은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탄생 120년 이후, 한국의 여성 예술가들은 얼마나 다른 삶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을까?

흥미진진 팀은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무대는 꿈도 꾸지 못한 채, 아이 젖을 먹이고 뽀로로 댄스를 추고 빨래, 설거지 등의 집안일에 치여 '예술가'였던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들이 보여주는 '엄마 시간표'에는 '엄마'가 없었다. 살림과 육아로 점철된 그들의 일상이 시간표를 통해 시각화되며 엄마가 아닌 관객들은 그들의 고단함을 공감하게 됐다.

아울러 그들은 떨리는 음성으로 "대학 동기였던 남편은 여전히 공연하느라 바쁘다……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생애 가장 외로운 시간이었다"라며 예술에서 소외돼버린 자신의 일상을 고백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아이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닌 일상이 특별해지기도 했다"며 엄마로서의 행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엄마인 자신들이 어떻게 이 공연을 준비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토대로 하는 이 공연은 매우 따뜻하고 특별했다. 사회를 통찰하고 자신이란 존재를 되뇌어보는 '예술가'의 시선으로 '엄마'라는 존재를 소재로 삼았지만,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고발적 형식 대신 아이를 사랑하며 예술을 꿈꾸는 본인들의 소박한 바람을 이번 공연으로써 일부 성취시켰다는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이야기는 끝맺을 수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이야기다"라며 자신들의 공연에 대해 어떠한 갈무리도 피하고 있었다. "반드시 좋은 결말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며 자신들의 고민을 해결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진행의 상태로 남겨둔 것이다.

 

   
 

"더 멋지고 근사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자"고 당당히 말하는 흥미진진 팀은 예리한 시선이나 기막힌 연출, 흠잡을 데 없는 구성 등으로 중무장한 '주류의 공연'이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이러한 점은 '비주류들의 주변부 이야기'가 가능한 프린지페스티벌의 취지에 적절히 부합하는 것이었다. 대중과 자본, 그리고 전문가들의 권위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예술가들 자체가 '주체'가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프린지페스티벌이기 때문이다.

연극·무용·음악·영상 등 장르 불문 46팀 500여 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해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예술의 다양성을 존중한 '제19회 서울 프린지페스티벌'은 이렇게 독립예술가들을 응원하는 자리로서 제 역할을 다하며 막을 내렸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서울 프린지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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