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 퀸: 애니메이션에서 게임, 코믹스, 그리고 영화까지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 이호양 ctiger661@mhns.co.kr 습작가 겸 대중문화소비자이자 작가.
[문화뉴스] '수어사이드 스쿼드' 개봉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이다. 아마도 개봉 전, 이 영화에 대해 가장 논란이 되는 요소 중 하나는 좋은 쪽(캐릭터성)으로건 나쁜 쪽(대사 번역)으로건 '할리 퀸'이 아닐까 한다. 나는 주로 세 가지 작품에서 그녀를 접했다.
 
아래에서는 지난번에 언급한 '할리 퀸'의 탄생 과정([문화파일] '수어사이드 스쿼드' 3차예고편…"청컨대 '자막 없음' 옵션을 추가해 주시기를 바라나이다")은 생략하고, 이 세 가지 작품의 관점에서 내가 본 할리 퀸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겠다. 그 세 가지는 '팀버스'의 '배트맨 디 애니메이티드 시리즈', 게임 '아캄' 시리즈, 그리고 최근의 '할리 퀸' 코믹스이다.
 
   
▲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등장하는 '할리 퀸'(마고 로비).

팀버스(Timmverse): '배트맨 디 애니메이티드 시리즈', '할리와 아이비' 에피소드 등
안타깝게도 최근 그가 참여한 애니메이션 '킬링 조크'(2016년)에 대해 스토리상 혹평이 쏟아지고는 있지만, 그 외에는 브루스 팀은 작가로서나, 프로듀서로서나 대개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특히 90년대 이후 방영된, 그의 그림체에 기반하고 그가 제작에 참여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리즈 및 관련 코믹스는 원래 'DC 애니메이티드 유니버스(DCAU)'라 불려야 하지만 팬들에게는 그의 이름을 따 '팀버스(Timmverse)'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릴 정도이다.
 
이 '팀버스' 애니메이션에서 '할리 퀸'은 처음 출연했으며, 성장했고, 인기 캐릭터로 거듭났다. 특히 그녀가 이 시리즈에서 소위 '여성 악당 캐릭터'로 활약한 중요한 전례들이 있는데 바로 '배트맨 디 애니메이티드 시리즈(배트맨 TAS)', '할리와 아이비', '할리의 휴일', '배트맨 더 뉴 어드벤쳐(배트맨 NBA)', '걸즈 나이트 아웃' 등의 에피소드가 그것이다.
 
   
▲ '할리와 아이비'
'할리와 아이비' 에피소드는 그녀가 '조커'에게 적극적으로 반항하며, 동료 여성 악당인 '포이즌 아이비'와 동업하여 여성 악당 듀오로서 명성을 얻는 데에 주력한다. 특히 '조커'가 그녀와, 그녀가 여태껏 모은 금전을 갈취하기 위해 침입했을 때에는 그에게 적극적으로 반항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할리의 휴일'에서는 거의 조커에 대한 언급이 없이 단독으로 출연하는데, 여기서 그녀는 '아캄 수용소'에서 출소한 후 다시 '정상적인' 삶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그녀만의 독특한 도덕률로 사람들을 도우려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걸즈 나이트 아웃'은 '할리 퀸' 외에도 '포이즌 아이비', '라이브와이어'와 같은 여성 악당들, 그리고 '배트걸,' '수퍼걸' 등 여성 영웅들만이 활약하는 에피소드이다. 여기서는 '할리'는 다른 악당들에게 약간 '덜 떨어지는' 캐릭터로 인식되는데, 이것이 사실 팀버스가 '할리'를 다뤄 왔던 기본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후술하겠지만 이런 태도는 그녀가 코믹스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개선되어 왔다. 
 
이 외에도 후속편 '저스티스 리그' 애니메이션, '와일드 카드'에서는 조커가 그녀를 배신했다고 생각하자 그에게 덤비다가 패배하기도 한다.
 
요약하면, 팀버스에서의 '할리 퀸'은 자신만의 개성과 특징, 그리고 관점 - 도덕관, 세계관, 가치, 기타 등등 - 을 가진 캐릭터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 때까지는 그녀는 일종의 '코믹한' 캐릭터이자 조커로 인해 탄생한, 조커의 부차적인 캐릭터였다. 강했지만, 동시에 '조커' 외의 캐릭터에 대해서만 그랬다. 이것은 여성 캐릭터 에피소드를 '특별한 것' 취급한 팀버스 전체의 문제에도 기인한다 할 것이다.
 
   
▲ '할리 퀸의 복수' DLC
'아캄' 3부작 시리즈: '아캄 시티', '할리 퀸의 복수', '아캄 나이트', '할리 퀸 스토리 팩' 
'아캄 시티', '할리 퀸의 복수' DLC(Downloadable contents)에서 '할리'는 여전히 '조커'를 잊지 못하는 캐릭터인 동시에, 그 외에는 그 누구보다도 강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주요 줄거리는 '팀 드레이크(로빈)'가 '배트맨' 및 경찰들을 납치해간 그녀를 물리치고 인질들을 구하는 내용인데, 줄거리보다는 그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장식물들, 혹은 대화가 그녀의 성질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녀에게 수작을 거는 부하에 대한 반응, 벽에 걸린 '조커' 추모 멘트 등이 그것이다.
 
부하들은 틈만 나면 반항하려고 하거나, 그녀를 여자로 보지만("Turkey man"의 독립 모의, "Friendly action") '할리 퀸'은 조커를 제외하면 남자를 원하지 않고, 어떤 남자도 그녀에게 - 말로 뒷담화만 하지 - 실제로는 반항하지 못한다. 다만 조커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그녀의(조커에 의해 무너진) 초기 캐릭터성을 반영한다 할 것이다. 결국 배트맨과 로빈에 의해 제압당하지만, 그녀는 왜 자신이 조커만큼 강력한(스토리 내적으로도, 성능으로도) 보스인지 이 스토리를 통해 충실히 어필했다.
 
'아캄 나이트', '할리 퀸 스토리 팩' DLC에서는 이러한 성격은 또 다시 달라진다. 우선 옷은 그대로이지만 얼굴 화장은 거의 맨얼굴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이것이 그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지, 혹은 여성성을 버린 것인지, 아니면 그냥 전작에 대해 화장이 과하다는 피드백을 반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조커'에 대한 애정에 대해서도 혼돈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 '할리 퀸 스토리 팩'
여전히 "그('조커')는 한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남자였어", "내 푸딩('조커'의 애칭)에 대해 무슨 말을 한 거지?"와 같은 멘트를 날리기는 한다. 그러나 그녀의 전투 시야는 갈수록 붉어지고, 환각이 점점 자주 떠오른다. 각종 문장으로 구성된 환각 중에는 "그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어('배트맨'으로 추정)"와 같은 말과 "더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거야", "우리(미치기 전의 '할린 퀸젤'과 미친 후의 '할리 퀸'으로 추정)는 변할 수 없어"와 같은 말들이 혼재되어 있다.
 
다른 악당, 영웅, 혹은 경찰과의 관계에서 그녀의 변화는 더 명확하다. 그녀는 이제 '조커'에 대한 추모 동기로 움직이는 대신 다른 악당과 스스로 거래, 협력하는 하나의 악당으로 행동한다. 또한 친구인 '포이즌 아이비'에 대해서만 최소한의 존중을 보일 뿐, '펭귄'이나 '스케어크로우' 등 동료 악당에 대해서도 그녀는 오히려 계략과 배신, 협박을 통해 우위를 선점한다. 스토리 최종 보스인 '나이트윙'에 대해서도 "배트나이트(Batnight)"라고 부르는 등 그가 '배트맨'에 기원을 둔 '사이드킥' 출신이라는 점을 - 의식했는지는 모르지만 - 전투 내내 실컷 조롱한다. 경찰들에 대한 태도는 말할 것도 없다.
 
   
▲ 리런치 버전에 등장한 '할리 퀸'
리런치 이후 코믹스: '할리 퀸'
리런치(Relaunch, 소위 "뉴52(New 52)"라 하여 2011년도 DC 코믹스 히어로 세계관의 전반적인 설정 변경을 위한 이벤트) 이후 '할리 퀸'은 '조커'와의 관계를(적어도 내적으로는) 끝낸 것으로 보인다. '배트맨: 가족의 죽음' 스토리라인 등에서는 여전히 '조커'에게 조종당하는 역할이었지만, 마침내 '할리 퀸' #25에서 그녀는 "우리는 함께 있어야 한다", "내가 없이 너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며 그녀를 조롱하던 '조커'를 꺾고, '조커' 없이 그녀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인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를 살려 두고 떠나며 말한다. "'배트맨'이 왜 널 안 죽였는지 알겠어…. 네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거든."
 
이 장면은 그녀가 더는 '악당 사이드킥(이 호칭에는 논란이 있다)'이 아닌, 주체적인 판단이 가능한 한 명의 악당으로 성장했음을 보여 준다. 기존의 '조커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나 강한 악당 캐릭터'에서 '조커를 제외하면'이라는 단서를 뗀 - 혹은 '조커'를 죽이지 않음으로써 그보다 우월함을 증명한 - 캐릭터로 거듭난 것이다.
 
그녀의 새 애인으로는 이번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도 같이 나오는 '데드샷'이 주로 언급된다. 그러나 '조커'에게 집착하거나 그를 추종했던 것과 달리 그녀와 '데드샷'의 관계는 대등한 동료('수어사이드 스쿼드' 등 빌런 집단)로서의 느낌이 강하다. 예컨대 '할리 퀸' #21에서 갈등이 발생하자 그녀는 '데드샷'과 격렬하게, 그리고 조금도 밀리지 않거나 우위를 점하며 싸우는 모습을 보여 준다.
 
여기서는 코믹스를 길게 언급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그 이유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나타난 '슈퍼맨'의 성격 등으로 추측할 때, 아마도 '수어사이드 스쿼드' 역시 이와 같은 리런치 후의 코믹스 설정이 영화의 주요 기반이 될 것으로 추측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말한 것들에서 미리 편견을 갖는 대신 영화를 직접 보고 판단하기 바란다 - 내 말은, 한글 자막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말이지만.
 
   
▲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데드 샷'(왼쪽, 윌 스미스)와 함께 있는 '할리 퀸'(오른쪽, 마고 로비)
마치며
'할리 퀸'에게 있어 결국 - '아캄 시리즈' 속 수많은 부하들의 조롱과 달리 - 성별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한 명의 '독립된 악당'일 뿐이다. 특히 그녀의 행태를 사회적 도덕률과 이성에 의해 판단하기 전 그녀의 정신적 상태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모 심리학 교수의 발언대로 정신증 경험자 본인은 특별히 비도덕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없듯이, 그녀의 무너진 정신세계는 결코 일반적인 이성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녀는 어느 편 - 악당이건, 영웅이건, 정의건 혼돈이건 - 을 대변하는 대신 자신의 정신세계를 대변하고, 그것에 따라 남을 판단하거나 부를 것이다 - 독자의 감상과는 별개로.
 
정신적 상태에 대해 부연하자면, 미학 내지 심리학에서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그녀가 각종 영웅, 혹은 악당들을 부를 때 자신만의 이름을 붙여 부른다는 사실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그녀의 절친 '포이즌 아이비'는 '레드(red, 머리카락이 붉은 색이기 때문으로 추정)', '펭귄'은 '새 남자(bird man)', '배트맨'은 'B-맨(B-man)', '조커'는 '푸딩(puddin')' 내지 'J-맨(J-man)'과 같은 별명으로 주로 불린다.
 
이런 태도는 미학적으로는 그 이름에 의한 성질을 부여하는 것이고, 심리학적으로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평가, 재단(내지는 폄하)하는 것이다(혹시나 하지만 나는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 평범한 졸업생일 뿐이므로 이 문장을 수업 내지 보고서에 활용하는 사람은 없기를 바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녀와 조커의 관계조차 일반적인(심리학적으로는, 소위 2표준편차 이내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결국 '할리 퀸'은 어느 점에서 보아도 누구도 아닌 '할리 퀸' 자신일 뿐이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이 점을 충실히 그려내는지 또한 지켜볼 주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사족: 개인적인 걱정거리
단, 리런치 이후 변경된 '할리 퀸'에 대해서는 최근 DC히어로 세계관이 바로 그 리런치에 의해 많은 캐릭터에 대해 새로운 성격을 부여하거나 새로운 인연을 맺어 주는 경향이 강했음을 살필 필요가 있다.
 
예컨대 성격의 경우, 리런치 이후 '클락 켄트(슈퍼맨)'는 '로이스 레인', '지미 올슨'과 같은 중요한 '인간 친구'들과 그닥 친하지 않고, 의기소침하게 혼자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을 때마저 있다. 관계에 대해서는 수십 년간 연인이던 '배리 앨런(2대 플래시)'-'아이리스 웨스트' 사이에는 '패티 스피벗'이라는 새로운 여성이 등장했으며, '올리버 퀸(그린 애로우)'-'다이나 랜스(블랙 카나리)'는 안면조차 없고, 절친한 친구이던 '할 조던(그린 랜턴)'-'올리버 퀸' 역시 서로를 모르는 사이로 2011년을 맞이했다.
 
이 '뉴52'의 설정은 최근 중대한 위기를 맞이했다. DC 코믹스 측에서 2016년 리버스(Rebirth, 리런치만큼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세부 설정 변경을 하는 이벤트)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DC 유니버스: 리버스 #1'에서는 해당 이슈 주인공 '월리 웨스트(3대 플래시)'가 '우리 모두 10여 년의 시간과 중요한 관계를 잃었다'는 식으로 뉴52의 기본적 성격을 축약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다른 연관된(tie-in) 이슈들에서 이들 중 일부를 과거로 회귀시키는 움직임을 보인다. 
 
왜 굳이 과거로의 회귀를 더욱 걱정해야 하는가? 지난 수십 년간 DC 코믹스는 만화 내외적 보수성, 여성 캐릭터의 부차성과 같은 성질을 자주 드러냈다. 최근에도 이는 - 안타깝게도 - 전부 변하지는 않았다. 그 증거로 넓게는 90년대 이후로도 부수적 위치에 머물던 각종 여성 캐릭터들, 여지껏 해명되지 않은 일부 작가들의 각종 성희롱 의혹이 있다. 더 구체적으로 나아가면 2016년 앨런 무어의 '킬링 조크' 애니메이션화 과정에서 제작진 일부의 부적절한 발언, '배트걸'의 역할(리런치 이후와 전혀 다른)과 아무 의미 없는 정사 장면 등이 있다.
 
여러 문제로 인해, 향후 '할리 퀸' 캐릭터가 어떠한 성격으로 귀결될지에 대해서도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배트걸', '버즈 오브 프레이', '할리 퀸' 등 여성 캐릭터에 대해 수년에 걸쳐 부여한 주체성과 새로운 성격이 어느 날 일거에 회수당하지 않기를 - 내지는 적어도 앞으로 나올 스토리에 대해 최소한의 개연성이 부여되기를 -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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