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진짜 '피에로'가 존재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뮤지컬 '위키드'의 '피에로' 왕자, 고은성을 만났다. 

최고의 블록버스터 판타지 뮤지컬 '위키드'가 2016년 한국 재연을 맞이해 새로운 캐스트로 돌아왔다. 그 중 '엘파바'와 '글린다'의 사이를 갈라놓는 결정적인 역할이 되는 멋진 왕자 '피에로' 역에 '레미제라블'의 '앙졸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민우혁과 함께 대극장 작품이 처음이라는 '고은성'이 캐스팅돼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았다.

대구 공연서부터 두 달여가 지난 현재 성공적인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중심으로 떠오른 배우 고은성과 만났다. 인터뷰 중 노래를 불러가며 자기 생각을 설명하고, 소년 같아지고 싶다고 말하던 고은성은 어린 나이지만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가 아닌, 어른스러운 생각과 연기에 대한 제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잡힌 이미 진짜 배우였다.

※뮤지컬 '위키드'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전작이 '은밀하게 위대하게'였다. 그땐 여자 배우가 1명이었는데 '위키드'는 여자 배우 출연도 많고 극 자체도 여성 주인공을 위주로 진행된다. 소감이 어떤지(웃음).

ㄴ 소감은 더 밝다. 연습이 더 활기차다. 남자들이 있을 때의 활기참과 여자들이 있을 때의 활기참이 다른 느낌. 여자 배우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 작품은 처음인 것 같다.

'그리스'도 여자 배우가 나오긴 하지만 남자들끼리 모여서 따로 논다.

ㄴ 주로 남자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을 많이 했다. 이야기의 축도 남자들로 이뤄져 있고. '그리스', '여신님이 보고 계셔'도 여자는 여신님 뿐이고, '비스티 보이즈'는 심지어 남자들만 나온다(웃음). 거의 남자들만의 이야기를 주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위키드'는 여자들의 이야기란 느낌이다.

   
 

개막 전 인터뷰를 보니 대극장도 처음이라고 들었다. 어려운 점이 있는지.

ㄴ '그리스'나 '페임' 등도 대극장 작품이긴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꼽자면 '위키드'가 처음인 것 같다. 그렇지만 다른 부분에 대해 제가 어떤 핑계나 불만을 가지는 건 어리석은 일인 것 같다. 미술도 유화, 수채화, 조각이 있지만 다 미술이듯 연기도 연기 안에서 여러 가지 장르나 형식으로 인해 작품마다 달라진다. 그래서 작품마다 적응해야 하는 그런 단계고, '위키드'는 라이선스 작품이고 또 라이선스 중에서도 많이 정해진, 오리지날 스태프들이 와서 동선 같은 부분도 잡아주는 꽉 짜인 완벽한 공연이라 다른 작품에선 내가 뭔가 만들어간다면 이번 작품은 내가 이 안에 들어가야 하는 게 차이다.

극장의 크기 같은 것보다는 그런 작품 자체의 특성이 다른.

ㄴ 대극장, 소극장의 의미도 상관이 없고, 여자 배우가 있냐 없냐도 사실 형식적인 이야기다(웃음). 크게 다가오는 것은 그저 이 공연은 이 공연이고 저 공연은 저 공연인데 이번에는 이런 게 힘들었다. 라는 이야기다. 요즘 '위키드'를 하며 고민하고 생각하게 된 점은 처음 '위키드'에 들어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너무 완벽하게 짜여서 망치면 안 되니까. 하지만 또 내 개성을 너무 표현하기도, 표현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형식적이지만 자기소개와 배역 소개를 부탁한다.

ㄴ 저는 올해 27살. 고은성. 90년생이고 파릇파릇한, 젊음을 유지하는, 운동을 좋아하는, 뮤지컬을 하는 고은성이란 한 아이다. 청년인가(웃음). 소년이 좋다. 배역은 '피에로'라고 '엘파바'와 '글린다'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게 하는 인물이다. 그만큼 두 사람의 사랑을 받을만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 그걸 이해시키지 못하면 관객들이 "왜 쟤 때문에 둘이 싸우는 거야? 나 같으면 그냥 쟬 버리겠다"라고 말하게 될 테니까. 주요 이야기는 '엘파바'와 '글린다'가 끌고 가지만 극의 한 축이 돼서 극을 재밌게 만들어주려면 이 남자는 누가 봐도 "아 쟨 매력 있어서 저럴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하게 해야 하는 매력적인 남자다.

공연이 중반을 넘어갔는데 소감이 듣고 싶다.

ㄴ 대구가 어웨이였다면 아무래도 홈그라운드지 않나. 다들 여유가 생겼다. 집에서 출퇴근하고. 대구 때는 테크 기간도 길었지만, 서울에선 기존에 해놓은 게 있어서 짧았고 컨디션 조절할 시간도 있었다. 덕분에 너무 좋은 컨디션으로 다들 공연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공연이 잘 흘러가고 있고 좋은 느낌을 받는다. 스스로 컨디션도 좋고. 2회 공연하면 낮공 끝나고 피곤해야 정상인데 쌩쌩하다. 6층 체력단련실 가서 레플 다운 당겨도 될 정도다(웃음).

   
 

6층에 체력단련실이 있나.

ㄴ 그렇다. 가끔 가서 이용한다. '피에로'의 멋있는 모습을 계속 보여줘야 하니까. 근육으로 승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희끼리 하는 이야긴데 키아모코는 바닷가에 있다는 설정을 했다. 할 수 있는 게 운동이나 맛있는 음식 먹고 즐기는 일 정도인. 학교에서도 나 혼자 더운 지방에서 와서 반팔 입고 있고. 모든 일을 오즈 용어로 표현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오증어 덮밥(웃음). '모리블' 오기 전에 '글린다'와 파티씬에서 애드립 할 때도 있다. 매번 다른데 일단 꽃을 각인시켜준다. 뒤에서 '엘파바'가 꽃을 달고 오기 때문에 꽃에 관해 관심을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들이 그걸 보고 약간의 개연성을 가져간다. 대사는 '글린다'에게 관심을 가지고 예쁘다고 해준다. 아껴주고 사랑하는 것은 아니고. 키아모코 놀러 가지 않겠냐. 내가 우리 동네에 가진 성이 몇 개 있다. 엄마랑 아빠랑 사이가 나빠서 따로 살고 난 집사 손에 큰다는 둥(웃음). 오즈버거 먹고 오즈코스터 타면서 놀자고.

말하는 척만 하는 줄 알았다.

ㄴ 진짜 말한다. '피에로 티글라'지 않나. 그래서 아버지 성함 궁금하지 않냐고. 뭔데 하면 우리 족장님 성함은 '고기창 티글라'라고. 제 아버님 성함이 고기창이시다. 아버님께 인사드리러 가지 않겠냐고 묻고(웃음).

막 R석에 있다던가.

ㄴ 그건 현실을 넘어가는 이야기라 하지 않는다. 애드립이지만 공연 안에서만 한다.

드립에도 기준이 있다.

ㄴ '키아모코는 대단히 더운 곳이야. 나 봐. 까맣지? 여긴 춥다' 하고.

   
 

다른 인터뷰 보니까 자신을 '까만 피에로'라고 하더라.

ㄴ 구릿빛 '피에로 티글라'. 원작에 충실한 '피에로'라고 한다. 원작에선 키아모코 부족 족장의 아들이고 황갈색의 피부를 가졌다고 한다. 굳이 표현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원래 좀 까무잡잡한 편이고 원작이 그렇다고 하면 내가 굳이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없으니 그에 부합하려 한다(웃음).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캐릭터를 잘 표현하는 방법. '피에로'를 표현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지 않겠나. 진짜 완전 하얗고 푸른 눈에 샛노란 머리의 왕세자 같은 느낌일 수도 있는 건데, 제 방법은 좀 더 와일드한 느낌. 바닷가에서 서핑하다 밤 되면 흰 티셔츠를 입고 춤추는 그런 남자? 낮에는 운동하며 즐기고 밤에는 차려입고 나와서 구릿빛 피부에 여성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그리스 남성? 오즈가 어떤 곳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굳이 '피에로'가 백인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흑인도 '피에로'를 했었고.

   
 

이번 공연에서 팬들 반응이 무척 좋다. 특히 비주얼이 기대 이상의 호평이다. 프로필 사진이 잘못 나온 것 같다.

ㄴ 그런 말 굉장히 많이 듣는다. 꼭 써달라. 이천수, 김동현 선수 닮았다고 들었다. 싸움 잘하게 생겼다고(웃음).

민우혁 배우도 굉장히 잘생겼다. 처음 캐스팅 봤을 때 민우혁과 고은성. 어떤 느낌일까 했는데 둘이 상반된 느낌이라기보단 각자의 매력이 있는 느낌이다. 고은성 배우는 특히 무대 위에서 정말 잘생겨 보인다고.

ㄴ 저는 실상보다 무대 위가 낫다(웃음). 근데… 사진이 못 나오긴 했다. 안타까운 게 사진으로 더 많은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는데 그걸 놓쳤다는 게 첫 번째다. "얘 한번 봐보자 했다"가 "오 괜찮은데?" 이거지. 이천수 닮았단 말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깜짝 놀랐다. 수레에서 내렸는데 깜짝 놀랐다. 이런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다. 사진이 너무 별로로 나와서 아쉽다. 사진이 아쉬운 이유는 미국에서 한국 들어온 바로 다음 날 찍은 사진이다. 원래 더 오래 체류 예정이다가 프로필 사진 촬영 때문에 일정을 변경하고 들어온 거다. 근데 밤에 시차 적응도 안 되니까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비빔라면 두 개를 먹고 잤다. 아침에 갔더니 그런 모습이 나오더라. 제 잘못이다. 공복으로 갔어야 했는데.

   
▲ ⓒ클립서비스

비빔라면이 잘못한 거로 하자. 초반에 라이선스 작품 하다 이후엔 창작 뮤지컬 위주로 출연했다. 혹시 라이선스나 창작 뮤지컬이 작품 선정에 기준이 되는가.

ㄴ 그런 건 없고 저는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첫 느낌이라고 하지 않나. 그게 내가 잘할 수 있는 작품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 목표로 하는 배역이나 모습이 있는지.

ㄴ 이게… 다음 작품에서 한다. 말도 안 되는 역할인데 다중 인격자. '인터뷰'라는 작품인데 1인 5역이다. 그게 제게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자기 안에 그런 도전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ㄴ 그건 라이선스처럼 정해진 게 없고 내 안에 나올 수 있는 걸 가지고 던져놓는 상황이라 너무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원래 성격 자체가 다양하다. 재밌는 거 좋아하고 화도 잘 내고(웃음). 기쁠 때도 되게 기뻐하는 타입. 감정에 충실한 타입이다. 그런 역을 해보고 싶다 했는데 하게 됐다. 이걸 발판삼아 더 좋은 역을 나중에 하게 된다면 어떤 역이든지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겠지만 노래 때문에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 '미스사이공'의 '크리스'? 노래가 너무 좋아서 해보고 싶다. 예전엔 '지킬'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제가 잘할 수 있을 때 하고 싶다. 연령대에 맞는. 지금 잘할 수 있는 거랑 30대에 잘할 수 있는 거랑 다 따로 있을 테니 굳이 욕심내서 달려들고 싶지 않다. 한 발짝 물러나고 싶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가 못할 걸 좋아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못 노는 거다. 저는 잘 노는 편이다. 잘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하고 거기에서 재미를 찾는다. 스스로 만족하는 예술이 아니지 않나. 혼자 그림 그리고 좋아하는 게 아니고.

   
 

관객이 보는 게 중요하다.

ㄴ 그렇다면 잘 어울리고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 관객들도 그걸 보고 진짜같이 느끼지 않겠나. 나랑 상반되는 이미진데 내가 진짜 살도 빼고 뭐하고 해서 한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잘할 수 있는 거지 않나. 잘할 수 없는 역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예를 들면 제가 '보크'를 한다거나.

그런 면에선 자기 철학이 확실히 있다.

ㄴ 그렇다. 못할 걸 하지 말자는 쪽이다.

데뷔 때부터 가져오고 있는 마음가짐인지.

ㄴ 옛날에는 너무 멀리 있는 것에 매달렸다. 너무 어린 나이에 나이 많은 캐릭터를 하고 싶어 하고 연습했다. 어린 나이에 무거운 거 하고 싶어 하고. 근데 한 살 한 살 지나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놓치지 않나. 계속 미래를 보고 있기에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는데 그것만 보다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못하는 거다. 원래 노래 스타일도 전형적인 뮤지컬 스타일을 좋아했다. '팬텀 오브 오페라'나 '지킬앤하이드'. 그런 것만 연습했다. 지금도 그런 게 주류다. 시키면 더 잘한다. '저 별을 향하~~~~여~' 이런 느낌. 근데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가진 이미지가 그런 것이 안 맞으니까 오디션에서 계속 안 되더라. 학생이나 좀 더 파릇파릇하고 젊고 에너제틱한 역을 할 수 있는 제 이미지인 것 같은데. 옛날에는 락 되게 좋아했다. '본조비' 좋아하고. 그러다가 젊은 나이에 할 수 있는 역을 하면서 노래도 많이 최신 곡, 팝 많이 들었다. '위키드' 할 때도 최대한 뮤지컬다운 느낌을 없애려고 한다. 자꾸 나오긴 하지만 가요처럼, 아니 '위키드'만의 느낌을 내려고 한다. 왜냐면 외국에서 왔지 않나. 사람들은 동선의 흐름이나 캐릭터 자체가 오리지널을 따라가고 있다. 그런데 왜 노래는 한국적으로 불러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한국어로 진실하게 연기한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포인트를 놓쳐야 한달까. 갑자기 노래에 애드립이 들어가면 감정이 깨진다고 한다. 하지만 외국 배우는 한다. 그게 세련됨을 준다. 진실한 감정 안에서 기술적인 노래가 들어가면 세련됨을 준다. 진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련되게 하려면 가짜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그런 걸 찾고 싶어한다. 'As Long as You're Mine'이나 'Dancing through Life'는 잘못 부르면 되게 촌스러울 수 있는 노래다. 뮤지컬처럼 대놓고 부르면 진짜 뻔해질 수 있다. '춤을 추자아~~~~~' '먼지로 돌아갈 인생이잖 아아아~' '새로운 세상 열린듯이~ 이제서야 마음의 눈을 뜬거어 야아아~' 이러면 뻔한 노래가 된다. 그래서 저는 그런 포인트를 가지려고 하지만 최대한 원래의 느낌을 내려 한다.

'위키드'가 가진 느낌?

ㄴ 네. '위키드'가 가진 느낌. '엘파바'나 '글린다'는 이미 노래할 때 그런 걸 표현하고 있는데 '피에로'도 그 안에 같이 있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엘파바' 자체가 '마법사와 나야하아~' 이런 느낌 자체가 팝적이다. '마법사와 나~ 야~~~' 이런 뮤지컬다운 느낌보다 추구하는 것이 팝 스타일의 느낌이라서 같이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런 부분을 신경 쓰는 것 같다.

주로 쉬는 날엔 뭘 하시는지.

ㄴ 주로 운동을 한다.

보니까 질문을 할 필요가 없던 것 같다. 팔이…

ㄴ 기사에 써달라. '질문이 무색하게 어깨선과 드러난 핏줄이 돋보였다'.

   
 

팔 딱 갈라져 있는 거(웃음)

ㄴ '그는 어김없이 취미는 운동이라 답했고…' (웃음) '그 모습은 마치 키아모코의 그분과 같았다'.

아 그런데 정말 운동이 취미라고 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하겠다. 몸이 굉장히 좋다.

ㄴ 운동이랑 개 산책시키고. 개랑 노는 거 좋아한다. 겉으로 돌아다니는 것보다 안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워낙 직업 자체가 화려하다 보니 집에 오면 약간 외로워질 수 있다. 막 박수받다가 집에 와서 혼자 있으면 '내가 나인가? 나는 뭐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스스로 재밌는 것을 차자야 한다. 저는 운동이 재밌었고 관련된 것도 좋아한다. 음식 해먹고 영양식품 같은 거 미국에서 주문해서 택배 받는 시간, 택배를 뜯는 찰나의 소소한 행복(웃음).

   
 

보충제 파는 곳에서 택배 시키고.

ㄴ 딱 오늘 배송 왔다(웃음). 6개월에 한 번씩 쉐이크 통도 교체하고. 새로운 쉐이크 통 보며 거기 타질 보충제를 기리는 설렘. 보충제는 과한 거 먹지 않는다. 단백질은 계란이나 닭고기로. 주변 사람들이 놀란다. '너 이렇게 음식 다 먹어?' 하고. 다 먹는다. 밤마다 피자 치킨 다 먹고 음식 안 가린다. 주로 단백질 위주로 먹으려고 노력만 한다. 뭔가 따로 챙겨 먹는 것은 아니고 운동을 하려고 한다.

배우로서 좋은 취미겠다. 건강 관리도 되고.

ㄴ 제한 되는 것도 있다. 몸이 너무 좋아지다 보면 역할이. '근육이 너무 많다. 좀 빼라' 하고. '피에로'도 대구 때보다 지금 좀 더 몸이 육덕 져서 둔해 보인다는 여사님 말씀이 있다.

여사님?

ㄴ '모리블' 여사님(웃음). '근육이 너무 커진 거 같다. 살짝 슬림하게 빼라'고 하셔서 좀 빼려고 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집에 가면 운동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막 당기고 밀고. 유명한 피트니스 모델 운동법 동영상 찾아서 한쪽씩 열두 번, 반대쪽 열두 번, 최대한 어깨 뒤로 밀면서 하고(웃음). 나중에 할 거 없으면 본격적으로 배워서 해보고 싶을 정도로 관심이 많다.

   
▲ ⓒ클립서비스

다시 작품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면 '위키드'에 있어 '피에로'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꽉 짜인 이야기에 들어가는 캐릭터. 두 마녀 사이의 축이 되는 캐릭터라고 했다. '피에로'의 역할이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하는지 혹은 그 이상의 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게 있는지.

ㄴ 난해한 질문인데 그런 걸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걸 염두에 두는 것은 공연 전에 한다. 어떤 게 중요할까 생각하고. 그 방향성만 가지고 무대 위에 오를 때는 순간순간 상황에 귀를 기울이고 잘 보려고 한다. 어쨌든 선택은 무대 위에서 순간에 이루어진다. 내가 이런 캐릭터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놓치기 쉽다. 뭔가에 내가 집중하고 있다는 거니까. 집중은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외부에 있어야 한다. 외부에 민감해야 내가 더 올바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하고 있는데 내가 뭔가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무대 위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이상한 사람이 서 있게 된다. 이 사람은 이렇게 줬는데 '난 이걸 표현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이상한 사람이 된다. 왜냐면 그 모습을 관객들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이렇게 줬는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하는 거야?'하고. '읭?' 스럽다. 이런 부분이 없어지면 '저 캐릭터는 진짜 개성 있다. 매력 있다. 진짜 같다'. 이런 말이 나오려면 진짜 같아야 한다. 어떤 관객은 이렇게 평가할 수 있다. 어떤 배우를 보면 그 배우의 손동작, 표정, 목소리와 노래, 어떻게 대사를 하는지. 이런 것만 볼 수 있다.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라 그게 다는 아니다는 거다. 그건 그 배우만 보는 거니까. 우리는 '위키드'에서 '엘파바'와 '글린다'와 '피에로'를 공연하는 게 아니라 '위키드'를 공연하는 거다.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객들이 엿듣게 하고 엿보게 하려는 건데 관객에게 뭔가를 보여주려고 한다면 그건 가짜 세상이다. '이런 거 아니겠어?!'하고 관객석을 향해 외치면 그건 가짜다. 무대 위 캐릭터에게 '이런 거 아니겠어?!' 해줘야 누가 엿듣고 엿보고, 그게 진짜지 않겠나. 대사도 똑같고 행동도 같고 하더라도 보여줘야 한다고 의식해서 한다면 제 기준에선 진짜가 아닌 것 같다. 물론 조금 더 투박하고 기술적으로 날 것이 튀어나오더라도 진짠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관객이 그걸 보면서 진짜 이 안에서 보고 있다고 느껴야 한다. 오프닝 때 타임 드래곤이 돌면서 우린 오즈의 세계로 빠져든다고 하지 않나. 이거 자체가 관객들이 무대 위의 공연을 보러 왔다가 오즈의 세계로 빠져서 보게 되는 건데 오즈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뭔가 보라면서 주고 있다면 내가 그 세계로 빠져든 기분이 나지 않을 것 같다. 하나의 공연을 보고 있는 거지. 어디에 주안점을 두는지는 개인의 차이겠지만 내가 이 안에 있고 이들이 엿보고 엿들을 수 있게까지만 두자는 게 제 생각이다. 어떤 데 중점을 두고 연기를 하는지가 질문인데 이 인물이 주변 사람들을 움직일 힘을 가지고 있냐는 건데 이게 사실 대본 안에 다 있다. 쓸데없는 소리지만 창업에 성공한 사람에 대해 나오는 TV를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자꾸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다더라. 사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이제 없다. 대본이나 캐릭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디까지 새로울 것인지. 사람들은 이미 이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 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성공시키냐는 내가 이걸 왜 하는지 알아야 하고 내 안에서 완벽하게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칭찬하고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거지. 남들과 다른 새로움만 찾으려고 한다면 답이 없다는 거다. 헐리웃 영화를 봐도 새로운 것이 없다. 어디선가 본 캐릭터다. 인간관계라는 건 이집트 신화, 성경에서부터 지속한 뻔한 스토리다. 그런데 그 안에서 새로운 영화를 보며 감동을 하고 그 안의 관계에 대해 흥미를 느끼는 것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진짜를 구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위키드'도 신기한 이야기지만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 안에서 어떤 것이 이뤄지는지를 관객들이 보고 감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피에로'도 그 축에 서 있다. 두 여자가 '피에로'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니까 두 여자가 날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끔 하여야 한다. 우정을 잠시 져버리면서 사랑하게 할 충분한 이끌림과 매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공연에 들어가기 전에 만드는 부분은…

ㄴ 없다. 아예 그런 생각을 비우고 백지로 만든다. 뭔가 생각하게 되면 연출님의 생각과 다르게 되고 부딪히게 된다. '이게 왜 아니지? 이게 맞지 않나?'하고 생각하게 돼버린다. 뭐든 첫인상이란 게 있다 보니 그런 걸 가지고는 있지만 일단 연출님이 말하고 이런 것과 내 생각을 조합해서 연습을 한번 해보면 뭔가 만들어진다. '만들어 낸다'는 표현은 아니고, '만들어진다'.

비워놓고 들어가면 채워진다.

ㄴ 네. 저는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뭐든 생각할 때. 약간 성격이 변태 같아서(웃음). 모든 일이 이뤄졌을 때 혼자 집에서 어떤 생각을 하냐면 '왜 캐릭터란 게 존재할까? 캐릭터는 뭘까?' 하다가 남들이 생각하는 나 고은성은 뭘까?'란 생각으로 이어졌는데 남들이 기억하는 고은성은 다 다르다.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게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날 나쁘게 보고 어떤 사람은 날 귀엽게 본다. '왜 그럴까?' 했는데 상대에 따라 내가 달라지기 때문이더라. 내가 '이런 사람이다' 하고 생각하고 살까? 아니었다. '피에로'도 그런 캐릭터를 보인다는 것은 그 안에서 '글린다', '엘파바', 또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행동들이 나오냐가 내 성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에 예민하게 집중하는 게 차라리 캐릭터의 감을 잡기 쉽다. 내가 혼자 만들어내는 것보다. 혼자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런 배우인 것 같다. 모든 걸 좀 더 아껴두는. 그렇다고 연습실에서 연습하는데 이 사람이 이렇게 주고 저 사람이 저렇게 주고. 공연 들어가면 또 다르다. 정해놓은 액션이 있지만 이런 걸 받았을 때 다른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이걸 고은성으로서 생각한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피에로'로서 생각한다면 몇 가지로 좁혀진다. 거기서 내가 정답인 것 같은 것을 선택하는 거다. 그게 2시간 40분 동안 쌓이고 쌓이면 탑처럼 쌓인다. 이렇게 쌓인 탑이 언젠가 무너지면서 관객들에게 디테일이 쫙 쏟아지며 '이래서 아까 이랬구나' 하는 순간이 재밌는 것 같다. 그래서 순간순간에 욕심내지 않는다. 뒤에서 어떻게 쓰러트릴지 고민하지.

   
▲ ⓒ클립서비스

그냥 보면 쉬운 블록버스터 판타지 작품이지만 현실을 풍자하는 대사 같은 것도 많은 철학적 작품이다. '위키드'에서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면.

ㄴ 매우 많다. 'Defying Gravity' 시작할 때 '넌 어쩌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능력이 없을지도 몰라', '평생을 기다렸잖아'. '엘파바'가 '왜? 난 서쪽의 사악한 마녀니까!' 이런 대사들을 좋아한다. 멋진 말들도 있지만 저는 좀 더 현실적인 대사가 좋다. 뭔가를 하려고 했을 때 나에게 힘을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떨어진 날개를 가리키며 '너도 저렇게 될 거야. 그러지 마',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안 그럴 수 있어. 바깥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아니?' 근데 막상 바깥에 나가보면 험하지 않다. 벼랑 끝에서 죽을 것 같아서 손을 놓고 떨어져도 우리에겐 알고 보면 높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나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글린다'도 '엘파바'와 정말 친한 친구고 평생을 기다린 것을 알면서도 '네가 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자기를 의심하지 않고 믿는 '엘파바'. 오즈의 이야기지만 실생활과 겹쳐 보인다. '나도 고등학생 때 뮤지컬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저런 말을 들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금 이렇게 공연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도 들고. '서쪽의 사악한 마녀'도 '엘파바'가 진짜 사악해서 그리 말한 게 아니지 않나. 사람들이 자꾸 그녀를 그렇게 몰아간 거지. 내가 만약 중동 사람인데 평범한 학생이다. 하지만 중동인이란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나보고 테러리스트라고 매도한다면 그 끝에 정말 테러리스트처럼 변할 수도 있지 않나. 자꾸 사람들이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상대에게 끊임없이 강요하고 만들어 버리면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찾고 싶으면 서쪽 하늘로 오라고. 웃긴 말이지 않나.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말을 믿는다. '거봐 역시 맞지!' 하고.

   
▲ ⓒ클립서비스

그렇다면 좋아하는 넘버를 하나 꼽아달라.

ㄴ 다 너무 좋지만 'For Good' 정말 많이 들었다. 영어 버전도 포함해서. 가사도 좋고 멜로디, 심지어 반주까지 좋다.

더블 캐스트인 민우혁 배우는 어떤 사람인가.

ㄴ 우혁이 형도 운동 엄청 좋아한다. 연습실에서 헬스를 같이 할 정도로 운동에 관심도 많고 다 잘한다. 볼링도 잘 치고. 맨날 형한테 '도대체 못 하는 게 뭐냐고' 물어볼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다. 둘의 차이라면 형은 키가 크고 잘생겼다. 저는 일반적으로 잘생긴 느낌은 아닌 것 같다(웃음).

   
▲ ⓒ클립서비스

마지막으로 자신을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ㄴ 옛날에, 20대 초반 때부터 계속 보러 와 주시는 분도 계시고 중간중간 새로 보러 오시는 분도 계신다. 저는 팬들에게 다정다감하게 해주지 못하고 무심한 편이다. 그런데 그게 팬들과 오래 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팬들에게 너무 가깝게 잘해주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기 때문에 누군가는 실수하게 된다. 제가 잘해주든 못 해주든 누군가는 잘해주는 것에 기뻐하고 못해주는 것에 섭섭해할 수 있고. 이런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나를 무대 위에서 봐주고 좋아해 주고 나도 그것에 대해 고마워 해주는 게 키 포인트인 것 같다. 나를 좋아해 주는 만큼 만나서 보답해줘야 하고 이런 것도 아니고. 내가 보답할 수 있는 것은 이 사람들이 각자 직업이 있지 않나. 누군가는 학생이고. 제 팬 중 하나는 고등학생인데 졸업하고 취직한다고 저보고 면접 본다고 파이팅 동영상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찍어줬는데 정말 합격했더라. 이제 그 친구는 혼자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또 공연을 보러 올 거다. 다들 각자 귀한 시간과 돈을 내고 와주는 거다. 저는 두 시간, 세 시간이면 정말 재미있게 혼자 운동하면서 시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팬들은 왔다 갔다 하는 시간 포함하면 네다섯 시간을 투자해 나를 보러 오는 건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와서 웃으면서 어깨동무하고 사진 찍어주는 게 아니다. 공연을 망치고 그렇게 해주면 뭐하나. 비싼 돈 내고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인데 공연에서 잘해야지. 무대 위에서 고은성이란 사람이 연기하는 것을 알고 오지만 무대 위 인물로서 최대한 그 공연을 보고 감동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초점을 두고 잘하려고 노력한다. 팬들에게도 그런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고. 내가 나이 먹을수록 팬들도 같이 나이 먹는다.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무대 위에서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 형식적인 답일 수 있지만 이게 답인 것 같다.

배우 고은성이 출연하는 뮤지컬 '위키드'는 8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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