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역사 차용, 소설 같은 영화 형식, 감독의 스토리텔링과 독특한 세계관 등 '매력 가득'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문화뉴스 MHN 김대권 기자] 그리스 출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는 늘 예상을 뛰어넘는다.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스토리텔링과 독특한 세계관은 참신함을 넘어 기괴하게 비칠 정도다.

그의 전작 '더 랍스터'(2015)는 호텔에 입소한 독신자들이 짝을 찾는 데 실패하면 미리 지정한 동물로 변한다는 내용을, '킬링 디어'(2018)는 16살 소년이 놓은 덫으로 인해 한 가족이 서로를 죽여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상황을 그렸다. 다소 황당하고 불편한 이야기 뒤에 번뜩이는 사회 풍자와 인간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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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실험적인 전작들과 비교하면 '정통' 스타일에 가깝다. 18세기 영국 여왕 앤의 총애를 받기 위해 두 여자가 벌이는 팽팽한 신경전과 암투를 그린 시대극으로, 실제 역사를 차용해 스크린에 옮겼다.

영화는 마치 한 편의 소설 같다. 제1장 '흙에서 냄새가 나요'처럼 여러 장으로 구성돼 장마다 핵심 대사를 인용한 소제목이 달렸다. 잘 짜인 이야기 구조 속에 세 여인의 감정선이 밀도 높게 묘사돼 상당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란티모스 표' 풍자와 해학도 곳곳에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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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권력을 지녔지만,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심신이 쇠약한 여왕 앤(올리비아 콜맨). 그의 곁에는 오랜 친구이자 권력의 실세로 자리매김한 사라 제닝스(레이철 와이즈)가 있다.

어느 날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의 애비게일 힐(에마 스톤)이 사촌인 사라를 찾아와 일자리를 부탁하고, 하녀가 된다. 사라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애비게일은 차츰 여왕 곁에 독자적으로 다가가 총애를 받기 시작한다.

하녀가 제 자리를 넘보자 불안을 느낀 사라, 신분 상승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애비게일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질투를 유발하며 은근슬쩍 싸움을 붙이는 앤.

실제 전장 못지않은 불꽃 튀는 전투가 세 여인 사이에서 펼쳐진다. 물론 이들의 싸움을 정색하고 그리는 것은 아니다. 다소 과장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펼쳐낸다. 그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권력과 탐욕, 질투 등 인간성의 밑바닥과 마주하게 된다. 세태 풍자도 담겼다. 여왕은 국가 운명이 걸린 일을 그저 주변인의 말만 듣고 즉흥적으로 결정한다. 계속된 전쟁으로 국민이 굶주리는 가운데 귀족들은 왕실에서 연일 파티를 열며 흥청망청하고, 벌거벗은 채 토마토를 던지며 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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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세 여배우의 연기 앙상블이 뛰어나다. 세 배우 모두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돼 개성 강하면서도 매력 있는 인물로 완성했다.

특히 올리비아 콜맨은 절대 권력을 쥐고서도 불안과 외로움에 떠는 여왕의 내면과 외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인생 연기를 선보였다. 그 덕분에 제75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와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제72회 영국 아카데미시싱삭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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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 지적이면서도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사라 역의 레이철 와이즈, 여왕의 환심을 사려 발버둥 치는 애비 게일 역의 에마 스톤 연기에도 빈틈이 보지 않는다. 세 배우는 모두 오는 24일(현지시간) 열리는 제91회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각각 올랐다.

18세기 화려한 왕실 내부를 그대로 재연해낸 비주얼은 영화의 품격을 높인다. 매 장면이 마치 미술관에 걸려있는 명화를 보는 듯하다. 35㎜ 카메라와 여왕의 고립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안렌즈를 쓰는 촬영 기법도 색다른 느낌을 준다. 여성 캐릭터 중심 영화여서 남성 캐릭터들은 비중이 작게 나오는 편이다. 오는 21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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